여름의 주인

인천 계양구 계양산성박물관

by 바삭새우칩

일요일 아침, 장례식장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마음은 어수선했고, 아이들은 처가에 맡긴 채 아내와 단둘이 길을 나섰다. 검은 옷을 입고 나선 길엔 항상 말이 적어진다.

돌아오는 길에 장모님에게 전화가 왔다.


“계양산 근처 박물관으로 오게나.”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낯설게 들렸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몇 해 전부터 이 근처에 살고 계셨지만, 특별한 연고는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박물관까지 알고 계셨을까. 처가에서 살짝 거리도 있고 일부러 찾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장소인데. 항상 장모님은 의외이신 분이다.


박물관 근처에 들어서자 방역차가 눈에 띄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는 러브버그로 가득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날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일하는 부천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계양산 아래도 조용했다. 벌레들은 방역에 쫓긴 걸까, 아니면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숨은 걸까. 사라진 흔적조차 없다는 게 오히려 낯설었다.

박물관은 아담했고 조용했다. 성인 입장료가 따로 있고 인천시민 할인이 없어 조금은 불만이었지만, 마침 해설 시간이 맞아 들어갔다. 해설사분은 정성스럽게 이야기를 풀어주셨고, 아내와 첫째는 조용히 귀 기울였다. 반면 둘째는 전시보다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자연스레 둘째를 따라 옆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바로 옆 전시관 체험실 한편에 유물 항아리 조각 맞추기 코너가 있었다. 둘째는 몇 번 해본 경험이 있는지 익숙하게 손을 놀렸다. 장난기가 생겨 아이에게 시합을 제안했다. 원래는 슬쩍 져줄 생각이었다.


“준비, 시작!”


그런데 아이의 눈빛이 달랐다. 조각을 쥔 손이 바빴고, 눈은 집중으로 반짝였다. 나는 첫 조각부터 헤맸다. 하나, 둘 조각이 엇나가는 사이 아이는 절반을 완성해 버렸다. 이게 뭐라고, 괜히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결국 내가 졌다. 완패였다. 아이는 이겼다는 사실에 뿌듯한지 어깨가 하늘로 올라갈 듯했다.

조각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처음 컴퓨터와 게임기를 샀을 때, 부모님은 전자제품엔 영 소질이 없으셨다. 어떻게 켜는지도, 선은 어디에 꽂는지도 모르신 채 그냥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알아서 연결하고 익히며 놀았다. 그땐 그게 별일도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도 그때 조금 낯설고 어색했던 거겠지. 이제는 그 자리에 내가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나도 아이에게 "그건 아빠는 잘 몰라" 하게 될 날이 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관람을 마치고, 박물관 뒤 계단 앞에 섰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계양산성으로 이어진다 했다. 나무 그늘이 유혹했지만, 햇볕은 너무나도 뜨거웠다. “다음에 더 선선할 때 오자.”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차장으로 향하던 중, 풀숲에서 방아깨비 한 마리가 깡충 뛰어올랐다. 첫째가 얼른 달려가 손바닥으로 조심스레 받쳤다. 둘째였다면 아마 다리 몇 개는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그렇긴 한데, 내 아들이라 더 그런 걸까. 둘째 나이쯤의 나를 만났다면, 방아깨비는 이미 몸통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물었다.


“얘 이름이 뭐야?”


“방아깨비야. 아직 날개가 덜 나왔지? 곧 어른 방아깨비가 될 거야.”


“아빠, 얘 집으로 보내줄게.”


첫째는 그렇게 말하곤 방아깨비를 풀숲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잠시 멈춰 있던 방아깨비는 이내 초록빛 풀숲 사이로 사라졌다.


방아깨비는 어린 시절의 여름을 떠오르게 한다. 친구들과 풀밭을 헤집으며 방아깨비를 잡던 기억. 손에 올려놓고 웃으며 들여다보던 그 시간. 뒷다리를 잡히면 끄덕끄덕 거리던 재미있던 몸짓. 방아깨비는 예전부터 이 여름의 얼굴 같은 존재였다.


얼마 전 이 일대를 뒤덮었던 러브버그는 달랐다. 어느 날 갑자기 몰려와 모두를 놀라게 하고, 해충은 아니라지만 불쾌한 낯섦을 남겼다. 여름이면 자연스레 나타나야 할 익숙한 존재 대신 전혀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으니 어쩐지 어색했다. 그래서였을까. 방아깨비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괜히 안도했다. 무언가가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곤충들은 어딘가 순해 보인다. 날카로운 커다란 이빨도 없고, 무서울 정도로 화려한 색도 드물다.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잠자리, 매미. 성질부리는 법도 모르고, 조용히 있다가 겨울이 다가오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그런 곤충들과 함께한 여름이 익숙해서일까.


그러니 러브버그처럼 낯선 존재가 갑자기 몰려들면, 해를 끼치지 않아도 먼저 경계하게 된다. 너무 가까이 오고, 너무 낯설게 생겼고, 너무 많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여름의 손님일 수는 있어도, 오래 머무르진 못하는 것 같다. 그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느껴본 적 없는 무더위가 계속된다면, 아마 앞으로의 여름 풍경은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실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 같은 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전기차를 탄다고 해서 세상이 정말 나아질까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매년 이렇게 새로운 불청객의 종류가 늘어가는 걸 보면, 뭔가 분명히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러브버그 같은 존재들이 익숙한 여름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상상을 하니,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그런 여름을 마주하게 될까 싶어 괜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의 방아깨비는 여름이 제 모습을 되찾은 풍경 같았다. 낯선 계절의 흔적이 가라앉고, 익숙한 오후가 돌아온 느낌. 아이의 손끝에서 풀숲으로 사라지던 그 작은 생명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여름은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오는구나, 하고.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조용했다. 둘째는 잠들었고, 첫째는 방아깨비 이야기를 아내에게 조잘거렸다. 나는 운전석 창문을 조금 열고 바람을 맞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차창사이로 진짜여름의 공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이방인의 그림자는 물러가고, 다시 여름의 주인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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