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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주 Sep 16. 2020

영화 찍고 오겠습니다

빅데이터의 시대: 무엇을 검색해서 여기까지 오셨나요?

 말로만 영화감독이라고 하고 다니기 싫어서 영화를 찍으러 다녀오겠습니다. 온전한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약 4주간의 휴식기를 가질게요. 그리고 때마침 브런치에 쓴 글이 20개에 달했기 때문에 사담 겸 수필, 혹은 산문, 혹은 에세이를 적어볼까 합니다. 제목은, ‘빅데이터의 시대: 무엇을 검색해서 여기까지 오셨나요?’


1. 바야흐로 빅데이터의 시대다. 누구는 몰래 욕을 하기 위해 ‘서치 방지(이하 써방)’을 하곤 하지만 대부분은 온갖 키워드로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온갖 키워드를 때려 넣었을 때 어디까지 잡히는지 테스트를 해봐야겠다. 블로그 깨나 해본 독자라면 알겠지만 사람들이 어떤 키워드로 방문하는지 주인장은 볼 수 있게 되어있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누군가 ‘자위 사정’이라는 검색어로 내 브런치를 세 번이나 방문한 것이다. 한 단어라면 모를까, 두 단어를 연속해서 검색하는 사람이 하루에 세 명이나 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글 안에 저 단어를 쓴 적이 있었던가? 열심히 찾아보니 그 글에 정말 그런 내용이, 그것도 비슷한 위치에 붙어 있었다. (궁금하다면 내 브런치 글 중 '가장 처음 한 배신의 기억:영화 <우리들>'을 확인하시길) 우스운 해프닝이 아닐 수 없지만 그 작자는 이 글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자극적인 키워드를 찾던 양반이 지루하게 늘어뜨린 글을 세 번이나 클릭할 리 없지 않은가? 

 나 또한 컴퓨터가 특기요 검색이 취미인 사람이다. 인터넷에서 늘 원하던 답을 얻지는 못하지만, 기대 이상의 재밌는 자료를 찾을 때도 많다. 그렇게 얻은 수확이 ‘버네너’ 님이다. 5개 국어를 할 줄 알고, 프랑스에서 석사를 했으며, 열렬한 페미니스트에 쿨한 성격을 지닌 사람.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건 그 정도지만 그는 나의 이후 5년 계획을 바꾸어 놓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를 보고 프랑스 유학을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필자는 늘 생각한다. 구독자, 관객, 보는 이가 누가 될지는 몰라도 보여준다는 행위는 아주 중요하다고. 내가 보는 것이 곧 내가 생각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내가 보여주는 것이 곧 사람들을 움직이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걸 늘 의식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구는 이런 걸 누가 보겠냐고, 조회수나 나오냐고 핀잔하기도 한다. 글쎄,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우스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이미 이 글을 읽고 있으니까.


2.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 정말 우스운 계기를 통해서였다. 시나리오야 늘 쓰는 거고,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글을 내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영화로 찍을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친구와 예술에 대해 떠드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다 보니, 정말로 영화가 찍고 싶어 진 것이다. 말로만 '영화감독이 되겠다, ' '제 꿈은 영화감독이다'라고 말하고 다니는 자신에게 점점 자신이 없어지던 찰나였다. 왜, 실패 속에 자신을 너무 내버려 두는 것도 안 좋은 습관이라고 하지 않는가. 공모전도 떨어지고, 영화제에도 못 간다고 해서 영화를 찍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거다. 초현실적으로 들리겠지만 진심을 다해 말하자면, 나는 영화제에 못 가는 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다. 쇼펜하우어 수상록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예술가는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시대의 인정을 받고 잘 나가는 부류, 하나는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야 비로소 인정을 받는 부류이다. 둘 중 어디에 속할 거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인생은 운이요 도박이고, 상상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지는 법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나를 후자라고 생각해도 예측과는 반대로 전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확실한 건 둘 중 어느 부류에라도 속하게 될 거라는 나의 강한 확신뿐이다.

 이번 영화는 전적으로 꿈을 다루고 있다. 꿈에 나오는 인물과 이야기들을 처음엔 그저 '보고 싶은 사람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대상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꿈에 출연하는 건 감정들이었다. 이를테면 아주 어릴 적 엄마가 나를 두고 새벽예배를 가서 엄마에게 배신감이 들었고 무척 보고 싶었을 때 쌓인 감정 같은 것이다.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고 분출되지 못하면 그것은 대상을 쉼 없이 변경해가면서 제 모습을 자꾸만 드러낸다. 그러니 전 애인과 있었던 일은 전전 애인과 있었던 일과 섞이고 전전 애인에게 느끼는 감정을 전 애인의 모습에 투영하는 것이다. 꿈에서는 그 모든 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감정 역시 기억과 마찬가지로 가변 하는 것. 그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음... 사실 자신이 없다. 나는 추상적인 개념을 종합해 한 문장으로 설명하는데 능하지, 그걸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엔 능하지 못하다. 교수님들은 매번 나에게 말했다. 관념적인 대사를 쓰지 말고 구체적 상황을 나열하라고. 그게 그렇게 쉬우면 제가 안 이러고 있지 않겠어요?


3. 요즘은 커피에 빠졌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커피의 맛을 알지 못했고, 사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오히려 잠드는 사람에 속한다. (그거 아나? 비타민 D가 부족한 사람은 커피를 마시면 오히려 잠이 올 수도 있단다! 필자가 바로 산증인이다.) 뭘 먹든 늘 가성비를 따지고 주위 환경에 둔감한 편이기 때문에 냄새도 잘 맡지 못하니, 커피의 매력을 모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 향을 맡아 버릇하니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추구하는 사람이 꽤나 많은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다. 기분에 따라 차가운 걸 마시기도 하고 따뜻한 걸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침에는 꼭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한다는 사실이다. 알고 있는 바 과학적 이유는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함이다. 좀 더워도 아침을 따뜻하게 시작하는 게 한층 여유도 느껴지고 좋다. 최근에 마신 것 중에 가장 맛있었던 원두 두 개를 꼽자면 스타벅스의 하우스 블랜드(미디엄 로스트)와 테라로사의 브라질 제라이스다. 테라로사야 워낙 유명한 브랜드니까 그렇다 치지만 스타벅스의 발견은 정말 의외였다. 두 개를 보면 알겠지만 산미보다는 부드럽고 묵직한 맛을 선호하는 편이다. 좋은 원두가 있다면 부디 소개해주시길 바란다.


4. 예술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하다.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남는 시간이 정말 많은데, 나는 대체로 취미생활을 하는데 대부분을 쓰는 편이다. 취미라고 하기엔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일관성도 없지만... 작가들의 전기나 해설집에는 그들이 아뜰리에에 모여 세상과 예술에 대해 얘기하고 즐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왜 우리는 그런 장소가 없는 걸까? 지극히 유럽적인 방식인 걸까? 아니, 생각해보면 문인 모임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것 같다. 지역의 차이라기보다 시대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만남이 절실하다. 그들이 주는 자극과 유대감이 절실하다. 모임과 모임을 원하는 사람들은 점점 우스워지고, 거리감과는 반대로 만남은 가벼워진다. 아마도 그래서 카페가 이렇게 많아지지 않았나 싶다. 늘 아뜰리에 같은 공간과 예술가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걸 꿈꾼다. 자극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할 수 있길. 최근에 지인을 통해 한남동에 있는 한 카페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처음 만난 지인의 친구들 및 카페 손님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놀았다. 이 날을 통해 확신을 더했다. 사람들은 기존의 형태와는 다른,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소속감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5.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는 나로서는 서울에 가는데 큰 불만은 없지만 언제나 서울 위주로 흘러가는 대한민국의 현재에는 불만이 많다. 건축에 한창 관심이 많을 시절 한 전문가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도시에는 '포용성'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대도시, 메가 도시가 된 도시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대부분 일정량의 게이들과 일정량의 예술가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살 수 있을 만큼 포용성이 있는 도시여야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전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그럴 수 있는 도시가 단 하나, 서울 뿐이라는 게 명백하기에 아쉽고 화가 난다. 서울은 이미 밀집도 최상에 인구 포화 상태이다. 예술가들이 자리 잡고 살만한 제2의 도시가 절실하다. 그것이 이 나라의 예술적 성취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변화일 것이다. 아빠와 뉴스를 보면 매번 열변을 토하는 주제가 바로 '우리나라에 제2의 수도를 만들어야 한다’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연예인이라도 쥐똥만 하고 천편일률적인 모습의 아파트에 사는 이 닭장 같은 도시에서 왜 모두가 숨 막혀야 하는 거냐고 열변을 토하곤 한다.


6. 내가 열변을 토하는 주제가 하나 더 있다. 왜 완벽한 자동번역기는 나오지 않는 거냐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달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보니, 그것은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걸 분명히 깨닫는다. 단순히 단어를 단어로 치환하는 걸로는 완벽한 자동 번역을 만들 수 없다. 시대와 지역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동시대의 문화를 습득하여 '의역'해야 한다. 영화 리뷰를 쓰고 있다 보니 리뷰를 종종 영어로 옮길 때가 있는데,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거야 어려울 수 있다 치지만, 영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 멍청한 번역기가 되어 버리는 나 자신을 보고 있자면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러고 보면 원서를 번역해 책을 내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 얼마 전에 본 민음사 유튜브에 의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를 국내에서 처음 번역한 곳이 민음사인데, 불문학자 이재룡 교수가 수능 출제자로 감금 당해 있다가 심심해서 번역했다고 한다. 이 얘길 듣고는 정말, 정말, 정말 번역이 하고 싶어 졌다. 이렇게 멋진 이야기는 내 생애 두 번은 없을 것이다.


7.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재룡 교수의 이야기가 나온 곳은 요즘 내가 가장 재밌게 보고 있는 유튜브 민음사 채널이다. 특히 박혜진 편집자가 진행하는 '알려드림' 코너는 정말 재밌다. 최근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을 읽은 뒤 꽤나 감명을 받아 그에 대해 더 알고자 본 것이 시작이었는데, 박혜진 편집자 님이 정말 깔끔하게 설명을 잘하시고 감동까지 독식하시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뿐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데미안>, <자기만의 방>, <페스트> 등 불멸의 고전들을 재미있게 설명하기 때문에 1일 1 알려 드림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쌓인 동영상이 아직 많지 않다. 이렇게 열렬한 구독자가 있으니 부디 편성 편수를 좀 더 늘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8. 당신은 '벤타 블랙(Vantablack)'을 아는가? 이것은 지금까지 발견된 물질 중에 가장 어두운 색을 띠는 물질이다. 얼마나 어두운지, 사진으로 보면 비현실적으로 까맣고 입체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향후 마케팅 수단에 이용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벤타 블랙으로 만들어진 차가 도시를 활보한다면 어떨까? 필자는 아름다운 것에 대해 생각할 때 늘 '자연스러운 것'을 떠올리곤 하는데, 자연스러운 것이란 표현은 들여다 볼볼수록 애매한 느낌을 준다. 왜 자연스러운 건 아름다운가? 자연스럽다는 건 어떤 걸까? 이 작은 사유는 곧, 자연광의 영향을 많이 받고 주변 광량에 따라 색이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결론 내려졌다. 이를테면 우리 눈에 익숙한 자연물, 돌이라던지 풀 같은 것들은 주변 광량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태양광과 밀접한 관련을 이루고 있다. 그 말인즉슨 해가 뜨고 지는 시간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고, 공간성을 가진 사물과 시간성이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시의 경관을 관찰해보자. 왜 한국인들은 서울의 경관이 그리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는가? 자연광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사물과 색이 드물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색'을 활용한 간판이 도시 경관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마케팅에는 도움이 되지만 이들은 자연스럽게 변하기보다 색을 유지하여 최대한 눈에 띄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자연광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거기에 타협이란 절대 없는 인공조명까지 가미하면 도시의 경관은... 말할 수 없이 처참해진다. 다시 벤타 블랙으로 코팅된 자동차가 다니는 도시를 떠올려보자. 그 차가 도시 한복판에 다닐 때 얼마나 눈에 띌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모든 색을 빨아들일지를 상상해 본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과 성장에 매번 감탄과 경의를 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놓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9. 관심 있는 사람이 생기면 나무 위키부터 읽어 내리는 건 취미를 넘어서 광적인 어떤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무 위키는 정말이지, 집단 지성의 결정체이자, 말 그대로 정보의 바다이다. 인터넷의 최대의 강점이자 약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이트인 것이다. 언젠가 나무 위키에 관한, 혹은 빅데이터나 집단 지성에 관한 이야기를 써볼까 싶다. 그리고 이건 좀 비밀이지만 나도 나무 위키 작성자 중 한 명이다. 지금 글 쓰는 거 보면 알겠지만 나무 위키 가장 아래편에 '사담' 혹은 '트리비아'에 적히는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10. 언제부터인가 세상과 나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의 내가 아니었으면 하지 않았을 생각들, 입지 않았을 옷, 겪지 않았을 일들에 대해 말이다. 한편 내가 세상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타인과 세상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집단 지성의 일부이자 빅데이터의 한 부분으로서, 내가 아는 것과 생각했던 것들을 남김없이 뱉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게도 가끔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2008년, 혹은 2002년에 쓴 꽤 이전 글들이 잡히곤 한다. 그들은 블로그나 티스토리에 별생각 없이 자기 입장을 써두고 잊어버린 듯해 보였는데, 그것이 나에게 좀 특별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몰랐겠지만 그들의 일기장이, 중요하고 위대한 철학과 사유가 되어 나에게 가닿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저 생각을 하며, 아주 선명하게 존재했다. 이 선명한 존재감이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다른 창작자를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작 열댓 명이 보는 글이라도 글은 쓰일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나중에 유명해져서 이게 박물관을 통해 전시될지, 아니면 오늘도 어김없이 인터넷 세상을 헤엄치는 한 방랑자에게 가닿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뭐가 됐든 둘 다 영광스러운 일이다. 만약에 당신이 여기까지 읽었다면 삼삼한 인사를 건네고 싶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가웠다.


 4주 간의 휴식기 후 10월 중순에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문화생활을 즐기세요. 다시 만나면 좋겠습니다.


 '일상의 일과 예술가로서의 수상한 꿍꿍이'를 주제로 팟캐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매주 수요일 18시에 업로드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팟캐스트 혹은 네이버 오디오 클립으로 '수상한 수다'를 청취해보시길 바랍니다.

팟캐스트(모바일): https://apple.co/2Fv4Fs6

네이버 오디오 클립(모바일):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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