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밤치기>
여자와 남자. 서로를 꼬시고 꼬셔지는 그 유구한 역사 가운데서 우리는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단순히 이성애자에 한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꼬시고 꼬셔질 수 있다.) 그것이 어떤 법칙화 되어 있는 상황이 우습지만, 그럼에도 상대가 정해지면 우리는 언제 반항했냐는 듯 법칙을 고수하곤 한다. 여기, 꼬시는 여자가 있다. 그는 작업을 핑계로 남자를 불러내고, 편안한 자리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술을 마시며, 시도 때도 없는 멘트를 날린다. 그는 법칙화 된 방법을 추구하기도, 한편 굉장히 벗어나기도 한다. 그의 작업이 얼마나 효과적인가, 혹은 얼마나 유용한가는 이 영화의 주제와 관련이 없다. 어차피 성공하면 100%, 실패하면 0% 아니던가.
영화 작업을 핑계로 배우이자 친한 오빠인 진혁을 불러낸 가영, 때때로 야릇한 질문을 던지지만 진혁은 꿈쩍하지 않는다.
세 줄 조차 필요하지 않은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보면 아는' 영화다. 독립영화다운 소탈함과 단순함, 허무함을 충실히 담고 있지만 절대 무겁지 않다. 나는 이 영화를 비롯한 정가영의 모든 영화를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다닌다. 보지 않는 사람과 겸상을 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정도. 정가영은 대한민국 그리고 현재에 살며 현재의 이야기를 충실히 담는 스토리텔러다. 영화는 거의 리얼타임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영화 속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주며, 말과 말 사이의 리듬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한 편 보면 의아하다. 두 편 보면 한 편만 더 보고 싶다. 세 편을 보면 중독이 되어 멈출 수 없다. 영화를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이 꼬시는 행위는 언제나 성공을 향해 달려가지만, 결말은 각각 다르다.
영화에서 이 꼬시는 행위가 특별히 좋은 점은, 특별히 따질 게 없다는 점에 있다. 가영은 진혁에게 '오빠 좀 섹시한 것 같아요' 등의 유혹적인 말을 뱉지만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 듯 보인다. 그가 뱉는 말은 그의 의도가 어땠든, 그가 얼마나 숙고했든 뱉은 즉시 휘발되어 버린다. 사실 술자리에서 뱉은 말은 술 깨면 의미 없는 말 아니던가. 주인공은 그 법칙을 충실히 준수하며 내일 곱씹을 필요 없는 말들로 현재의 그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밤치기>를 보는 관객들이 정처 없이 이들의 대화를 쫓게 되는 이유다.
이 영화가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멋을 가지는 것은 이 영화가 특별한 의식을 갖고 있지 않아서 정도로 일축할 수 있다. 이 영화에는 옳고 그름의 미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제랄 것도 없다. 사실 자기 고백 혹은 기록을 위해 영화를 찍었나 싶을 정도로 영화에서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뭐 여자가 이런 식으로도 꼬실 수 있다를 보여준다고 말하면, 그것만으로도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이렇게 여러 편에 나눠서 할 이유가 있냐고 묻는다면, 아마 없겠지. 작가 및 감독인 정가영이 '리틀 홍상수'라고 불리기엔 이 지점에서 명확한 차이가 생긴다. 의식과 성찰과 의미들만으로 이루어진 홍상수의 영화와, 그것이 애초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구는 정가영의 영화. '재미를 위해서'라고 불러도 좋다. 조금 더 멋들어진 말을 쓰자면, 정가영의 영화는 '카타르시스를 향하여'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카타르시스의 법칙은 의외로 간단해서,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심하게 겪을수록 더 강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는 게 전부다. 꼬시기 어려운 상대라 함은 아무래도 하찮은 유혹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사람, 혹은 이미 애인이 있는 사람이다. 정가영이 자신의 유희를 위해 꼬시기 어려운 상대를 꼬시는 일련의 과정들은 정가영이 영화를 찍는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그의 단편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는 조인성을 캐스팅하고 싶다는 이유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가, 우연히 조인성과 통화를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순전히 자랑질로 귀결되는 이 영화가 이토록 매력적인 건 정가영이 영화를 그저 유희로 대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연애 사업은 하면 할수록 단순해진다. 우리가 그걸 복잡하고 세상 제일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여기는 까닭은 그것에 몰두하고 의미를 창출하기 때문이 아닌가? 갖고 싶으면 그냥 갖고 싶은 거지, 그 장난감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따질 이유가 뭐가 있는가. 의미를 붙이면 죄책감을 덜 수는 있다. 죄책감이라는 게 꽤 뜬금없고 무거운 단어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공동체 안에 살아가는 이상 죄책감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가벼운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의 성적 욕망, 부모님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받고 싶은 욕망, 혹은 그냥 관심이 받고 싶은 욕망 등은 너무 비열하고 하찮아서 그걸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업신여김을 당할 것만 같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재밌는 영화를 보고 싶은 욕망마저도 '취향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며 폄하당하기 일쑤다. (이런 면에서 정가영의 영화는 꽤 적절한 취향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남들이 잘 모르고, 독립영화니까. ^^) 그걸 인정하기 시작하면 인생은 조금 더 쉬워진다. <밤치기>의 주인공이 남자와 자는 데는 실패하지만, 그의 영화가 즐기기에 충분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
비슷한 또래, 비슷한 시기에 영화를 찍는 입장에서 정가영이 이 평론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 지 자꾸 상상하게 된다. 아마 어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대단한 의미와 큰 그림을 위해 찍은 영화인데 단순 유희 영화로 평해버리니 말이다. 2월 마지막 주에 그의 새로운 영화가 개봉한다. 이번 영화를 통해 그가 그리고 있는 그림의 크기를 가늠해보고 싶다. 혹은 그가 이번엔 꼬셨을지를 확인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