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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재 Jun 29. 2023

삼각형이 사각형을 품을 때

영화_엘리멘탈

모든 도형은 외각의 합이 360도다. 사각형을 생각해보고 삼각형을 생각해보라. 다만 각이 많아질수록 각각의 외각의 크기는 줄어든다. <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의 최영기 교수는 이것을 사람의 마음에 비유한다. 삶은 삼각형으로 시작한 마음의 뾰족한 부분을 사각형, 오각형, n각형으로 다듬는 과정이라고. 수없이 많은 각을 만들어 결국에는 원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슬픈 것은 원이 되어도 이론상으로 외각의 합은 360도로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음의 뾰족한 부분을 아무리 다듬어도 미세한 차원에서는 누군가를 찌르고 있다.     

이 외각의 합 법칙을 깰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이다. 도형에 구멍을 내는 것. 삼각형에 사각형 구멍이 나는 순간 외각의 합은 달라진다. 마음 비유에 연결시켜보자. 혼자서 마음을 다듬는데도 누군가를 찌르고 있다면, 밖으로 돋은 가시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엘리멘탈을 보면서 이 아름다운 비유가 떠오른 것은 두 이야기 모두 사랑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제껏 많은 사랑 영화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왔다. 비유하자면 사랑은 벽을 뛰어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벽은 외부의 조건과 같은 것이다. 빈부의 차이, 인종의 차이. 앞선 비유에 따르면 마음의 각을 다듬는 과정이다.     


그러나 엘리멘탈은 다르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말한다. 앰버는 스스로의 힘으로 ‘화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각을 늘려도 외각의 합이 360도인 다각형 혼자서는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다른 도형을 품어야 한다. 사각형과 삼각형이 서로를 품어야 한다. 다른 원소를 품어야 한다. 불과 물이 서로를 품어야 한다.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앰버는 웨이드와 손을 맞대는 순간 조용히 식는다.      


이것은 연인의 이야기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논리의 범위는 가족, 친구, 사회공동체로 확장된다. 그런 점에서 앰버와 아버지를 같은 불로 보는 것은 오해라고 생각한다. 앰버의 불과 아버지의 불은 물만큼 다른 혹은 그보다 더 다른 불이다. 그래서 웨이드와 앰버가 조심스레 손을 맞대는 에로틱한 장면은 앰버가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본질적으로 같다. 영화 흐름상 웨이드와 앰버의 장면이 더 중요하게 묘사되었으나 앰버에게 실제로 더 중요했던 것은 앰버와 아버지가 서로의 마음에 창을 내는 순간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랜 시간 서로를 ‘같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도형을 품고 있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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