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건 무엇일까?
'선생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어머님, 정말 죄송해요.'
우리는 손을 맞잡았다. 이미 몇 차례 눈물을 닦느라 축축해진 내 손을 단단히 잡고, 어머님은 붉어진 눈으로 날 바라봤다. 뭐가 죄송해요. 선생님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만날 날이 오겠죠. 갈라진 목소리로 우리는 몇 번이나 인사를 나누었다.
2021년 2월의 마지막 날.
명동 성당의 주일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다. 코로나 감염병으로 성당 운영 전반이 크게 위축된 것이 화근이었다. 갑작스러운 해산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마지막 미사를 준비해야 했다. 바쁘게 돌린 안내 문자를 받고 충격받은 몇 학부모님들의 답장이 돌아왔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에 마치 내가 상처를 드린 것처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거리두기 지침으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어린이들이 성당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동자들은 여전히 장난기가 가득했다. 부모님들은 아직 어린아이에게 차마 마지막이라는 말을 전하지 못했나 보다. 그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니 속이 저릿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한껏 높인 목소리로 아이들을 반겼다. 보고 싶었다며 불쑥 나를 끌어안는 한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못 본 사이 키가 조금 자란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이 아이의 소식을 계속 들을 수 있을까? 품에 쏙 들어온 꼬맹이를 괜히 억지로 떼어낸다. 자리에 앉자. 이제 곧 시작할 거야.
한차례 소란이 가시고, 마지막 미사가 시작됐다.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다가도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동네 성당이라면 오며 가며 자주 마주칠 법도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대부분 각자의 사정으로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다. 오늘을 끝으로 영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이 기억은 뭉뚱그려지겠지. 그런 생각에 이르자 눈앞이 뿌옇게 번져갔다.
보이지 않는 악보에 시선만 대충 둔 채 건반 위 손가락에 의지를 맡겼다. 수도 없이 연주해서 외워버린 성가 반주는 내 손끝에서 피어나 이리저리 가로질렀고,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어우러져 성전의 천장을 뚫을 듯 가득 채워 나갔다. 선생님들과 부모님들, 학생들이 다 함께 입을 모아 부르는 노래가 마치 하나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이 광경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겠구나.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그대로 놓아두고, 그런 생각을 했다.
미사가 끝나고도 성당 앞은 한참이나 북적거렸다. 한 사람이라도 놓칠세라 서로가 서로에게 악수를 나눈다. 연락처를 주고받고, 사진을 찍고, 포옹한다. 누구 하나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아까 품에 안겨 왔던 아이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달려온다. 우리는 할 말을 고르지 못한 채 그저 부둥켜안고 울 뿐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주일학교를 지키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나중에 다시 보자는 확실한 약속도 하지 못해 미안해. 마음속 외침이 전해지길 바라며 사과를 거듭했다. 차라리 누군가 탓할 수라도 있었다면. 화살은 갈 곳을 잃고 내 가슴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어떤 아이는 서럽게 울며, 어떤 아이는 말똥한 눈으로 무슨 영문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일학교는 마무리되었다.
"...주일학교는 마무리되었다."
커서가 백 번쯤 깜빡였으려나. 옛날 기억을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는지 정신이 몽롱하다. 가슴팍엔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서너 개. 컴퓨터 화면의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훌쩍 넘었다. 창밖은 고요하고 어둡다. 가끔 지나다니는 오토바이 소리만이 지금이 '현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새벽 감성에 취해서 너무 처절하게 썼나. 아무리 그래도 4년이 지났는데.'
담담하게 쓰기 시작한 글은 어느새 그리움에 얼룩져 축 늘어져 있었다. 애써 외면했던 기억을 끄집어낸 탓일까. 오랜만에 터져 나온 미련이 기어코 온 방 안의 공기까지 삼켜버린 듯했다. 몇 시간 동안 키보드 위에 놓아둔 손목을 우둑우둑 꺾으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글을 쓰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줄곧 이 이야기를 생각해 왔다.
지긋이 손등을 누르던 어머님의 뜨거운 손바닥, 두 뺨을 타고 내려와 마스크를 적시던 눈물의 감촉. 상실의 흔적은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성당과 관련된 물건이나 사진들은 깊숙한 구석에 가둔 지 오래다. 시위가 당겨진 화살은 저 위 어딘가 '보이지 않는 그분'을 향해 날아갔다. 6년 동안 봉사한 결과가 이런 거라면, 그보다 더 큰 방황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그래서 보란 듯이 저 위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냉담자가 됐다.
마지막 미사는 이제 아득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듯하다. 평일에는 회사에 출퇴근하고, 맛있는 밥을 먹으러 다니고, 주말은 데이트나 여행을 다니는 데 썼다. 이제 성당에 가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도 없다. 그저 가끔, 아주 가끔. '그땐 그랬지.'하는 마음으로 똑같은 기억을 몇 번이고 되새김질했다. 그때의 내 모습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것 같아서. 그 빛이 꺼지지 않도록 숨을 불어넣고 또 불어넣었다.
불씨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건, 횡단보도에서 마주친 한 초등학생 때문이었다. 길 건너 책가방을 메고 서 있는 얼굴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이와 닮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와 안길 것만 같았다. 가로수에 괜한 발길질을 하는 학생을 보며 초조하게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저 아이도 나를 알아볼까? 이쪽을 한 번만 돌아봐 준다면. 곧 녹색 불이 켜지고, 많은 발걸음이 교차하며 지나가는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곧 아무렇지 않게 부서져 흩어졌다. 당연하게도 내 바람은 틀렸다. 기억 속 그 아이는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쯤이 되었을 테니까.
그 친구가 맞다고 한들 나는 뭘 하고 싶었던 걸까. 내 시간은 여전히 2021년에 묶여 있었다. 희미하게 변색된 줄 알았던 기억은 4년 전의 모습 그대로 뽀얀 먼지만 쌓여있을 뿐이었다. 책가방을 멘 아이의 모습으로. 언젠가 불이 지펴질 날을 기다리면서. 그래. 이제 인정해야겠다. 사실 나는 아까 말한 것처럼 '아주 가끔', '똑같은 기억'을 회상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수많은 기억들'을 몇백 번이고 곱씹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땐 그랬어.'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천장에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제 이백 번은 깜빡거렸을 커서가 다음 선택을 기다린다. 한숨이 나왔다. 말하고 싶었던 건 이런 음울하고 질척거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키보드 자판을 눌렀다.
Ctrl+A.
세상에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빛나고 아름다웠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런 이야기다.
Delete.
'성당이 밥 먹여주냐?' '돈도 안 주는 봉사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해?'라는 말을 6년 동안 들었다. 그때마다 단순히 '애들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5년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유독 기억이 점점 선명해지는 장면. 피아노 선율에 따라 한 가닥씩 얹어지던 목소리. 어른과 아이 모두 한마음으로 부르짖던 노랫말. 천장을 뚫고 나갈 듯했던 그 웅장한 포효가 자꾸 떠올랐다.
질문의 답을 알았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Ctrl+Z.
나는 주일학교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