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명동? 사랑하는 선생님!
2014년 봄, 설레는 마음과 함께 주일학교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아직 교사로서의 경험이 없으므로 내가 맡은 자리는 병아리 같은 유치부의 보조교사였다. 다섯 살부터 일곱 살까지의 꼬마 아이들은 첫날부터 삐약삐약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처음 보는 선생님이 낯설지도 않은지, 아이들은 미사 시간에도 내 손가락이나 명찰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며 계속해서 말을 건다. 그러면 나는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 '쉬이' 소리를 내면서도 한참이나 아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기를 반복하고야 마는 것이다.
통통한 양 볼, 볼록 나온 배, 보송한 냄새와 앙증맞은 신발.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사랑스럽다. 왜 교사로 임명되고 첫해에 유치부를 내어주는지 알만했다. 이 작은 천사들을 보고 누가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치부 담당 교사는 아이들의 그림자가 된 듯 따라다닌다. 누가 화장실을 가고 싶은지, 바지에 물이 묻진 않았는지, 간식 봉지를 뒤집어엎진 않았는지.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온 신경을 쏟는다. 가끔 교실로 이동하는 동안 스티커를 손등에 붙이는 데 정신이 팔린 아이가 선생님과 친구들을 놓치기도 한다. 그럴 땐 보조교사인 내가 얼른 뒤따라가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친구들 따라가자'라고 재촉하는 식이다. 물론 그런다고 아이가 걸음을 서두르지는 않지만.
뒤처진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교실에 들어선다. 겨우 책상 위로 빼꼼 나온 얼굴들이 저마다 선생님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것은 대화라기 보다는 한쪽의 일방적인 소리 공세에 가깝다. 한 번에 와르르 쏟아지는 그들의 말은 '어, 어, 어.'가 들어가기 때문에 귀 기울여 잘 들어야 한다.
"선생님, 어― 있잖아요. 어― 저가요. 이거, 어― 만들었다요?"
그리고 마침내 말이 끝나면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웃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와, 정말? (손뼉을 치며) 너무 잘 만들었다!
아이들과 수업을 시작하기 전, 유치부 정담임을 맡고 있는 선배 선생님은 꼭 작은 놀이를 시작했다. 그것은 이제 곧 수업을 시작할 테니 준비하라는 일종의 신호였다. 유독 효과가 좋은 건 아이들을 한 번에 집중시킬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사랑하는 명동?"
"사랑하는 선생님!"
마치 노란 병아리들이 한꺼번에 삐약거리듯, 높은 '라' 음의 목소리들이 교실 사방에 와르르 부딪히며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아이들의 눈은 쏟아지는 햇살처럼 반짝이며 선생님을 향했다. 바른 자세로 앉아 선생님의 다음 할 말을 기다리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잠시의 정적이 지나면 선생님은 그제야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약속을 잘 지킨 어린이들에게 '잘했어요'라고 한마디 칭찬을 건네면 비로소 수업이 시작되었다.
늘 같은 방식만 쓰면 싱겁다며, 선생님은 가끔 다른 놀이를 하곤 했다. 손가락에 엄마, 아빠, 동생,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을 붙여 노래하거나, 어떤 날은 박수를 한 번, 두 번, 세 번... 점점 늘렸다 줄이며 리듬을 맞췄다. 아이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치며 어느새 선생님에게 온전히 집중했다.
베테랑 선생님 덕에 유치부 수업은 순탄했다. 아동 놀이치료사를 본업으로 삼고 있는 분이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감정을 꿰뚫듯 읽어내면서도, 절묘하게 거기에 매몰되지 않았다. 가령 원하는 색깔의 색연필을 찾지 못해 우는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친구가 색연필이 없어서 속상했구나? 괜찮아. 지금은 다른 색을 쓰고, 이따가 옆 친구한테 빌려달라고 하면 돼."
그 순간, 내가 그동안 당연하게 붙들고 있던 고정관념의 매듭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아이가 웃을 때까지 달래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선배의 방법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아이의 감정을 제대로 짚어주고,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간단한 길을 하나 알려주는 것. 그것만으로 아이는 멎지 않을 것 같던 울음을 그치고 이내 집중했다. 수업이 끝나갈 즈음엔 다른 친구들과 서로 웃으며 떠들기까지 했다.
수업이 끝난 뒤, 나는 흥분해 엄지를 세워 보였다. 그러면 선배는 늘 부끄럽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될 수 있냐는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부족한 건 하느님이 다 채워주실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을 이해하게 된 건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선배 선생님은 퇴임으로 더 이상 없었지만, 그녀의 흔적은 오랫동안 남았다. '사랑하는 명동' 약속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주일학교 전체에 퍼져 나갔다. 선생님의 노력과 사랑 덕에 눈물이 많던 아이는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그 선생님 한 명에 의해 채워진 사랑이 아니었다.
단체 행사를 하면 고학년생들이 먼저 다가가 아이의 손을 잡아주거나 업어준다. 학부모님들도 유치부 어린이들을 보면 예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모르는 어르신들 조차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고 아이들에게 까꿍놀이를 한다. 어른들은 한 명 한 명에게 사랑의 물을 넘치도록 부어주었다. 그것으로 깊은 뿌리를 내린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새로운 유치부에게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다시 나누어주었다.
연차가 쌓여 고학년을 주로 맡게 된 뒤에도 나는 종종 유치부와 마주하게 되었다. 꼭 선배 선생님처럼 대응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이가 울고 떼를 쓴다면 안아주거나, 옆 친구에게 "색연필 좀 빌려줄래?"라고 묻는 것으로도 상황은 곧잘 해결되었다. 때로 내가 시선을 놓치는 바람에 베테랑 선생님처럼 상황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워주었다. 그럴 때마다 선배의 부끄러운 미소를 떠올린다. 부족한 건 하느님이, 또 다른 누군가가, 언제 어디서든 채워줄 수 있는 거였다.
결국 주일학교의 역할은 그런 게 아닐까. 오늘 한 아이에게 사랑을 심어주는 것. 그 아이가 내일은 더 큰 사랑을 품은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아이의 마음을 돌보게 되는 것. 중요한 건 어린 날의 마음에 부정적인 기억이 가라앉지 않게 하는 거다. 먼 훗날,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행복했다'는 감정 하나만으로 얼굴에 미소를 띄울 수 있도록.
[주일학교 교사를 위한 TIP]
1.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펼쳐 L자 모양을 만든다.
2. 왼손의 엄지 끝과 오른손의 검지 끝을 붙인다.
(이렇게 하면 왼손은 손등이, 오른손은 손바닥이 보이는 형태가 된다)
3. 2번을 유지한 채로 왼손의 검지 끝과 오른손의 엄지 끝을 붙인다.
4. 2번에서 붙였던 왼손 엄지와 오른손 검지를 떼어준다.
5. 계단을 오르듯 2~4번을 반복한다.
6. "거미가 거미줄을 올라갑니다"라는 노랫말을 붙여 따라 부르게 한다.
※고학년의 경우, 난이도를 높여 점점 빠르게 거미줄을 올라갈 수 있다. 단, 선생님의 숙련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