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었다. (1)

잊지 못할 6학년

by Dily딜리

비 오는 날 우산을 펴고 집 밖을 나설 때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주일학교 친구들이 단체로 소풍을 떠나던 날, 우산살 끝에서 빗방울이 하나씩 미끄러져 내리던 아침이었다.


다행히 소풍 장소에 도착하자 비가 그쳤다. 내가 속한 초등부 아이들은 각자 접은 우산을 거꾸로 쥐고 칼싸움을 하며 뛰어다녔다. '앞을 보고 다녀야지.'라고 말해도 오랜만의 나들이에 신이 난 탓인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뒤에서 다 지켜본 중고등부의 한 교사는 뒤풀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네가 애들보고 갑자기 '야!'라고 소리치길래, 드디어 혼꾸멍을 내주는구나 싶었어."

"혼낸 거 맞는데? 나 그때 엄청나게 화나 보이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 그렇게 버럭 하더니 세상에서 제일 착한 목소리로 '이제 그만할까?'라고 했잖아."


그 말을 듣고 한참이나 배를 잡고 웃었다. 동갑 친구인 그 교사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이내 같이 웃으며 건배했다. 중고등부로 올라오면 그 친구들 얄짤없어. 우리가 다 교육 시킬 거야. 그녀는 안주를 집어 먹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6학년 첫 수업의 기억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것에 맞게 대해주는 게 필요한 법이니까.






유치부 보조교사로서의 1년을 마치고, 처음으로 정담임 교사가 되어 임명받은 학년은 6학년이었다. 갑자기 최고 학년을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그 아이들에게 손장난이나 색칠 놀이 같은 것은 통하지 않을 터였다. 긴장 반, 설렘 반. 6학년 교실에서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선배 교사에게 들었던 여러 가지 조언을 떠올리며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친구들, 안녕!"


열댓 명의 아이가 앉아 있음에도, 들려온 대답 소리는 한두 사람의 것이었다. 시간이 잠깐 멈춘 듯한 공백. 등에 서늘한 땀이 번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수업을 이어 나갔다. 첫날이니만큼 자기소개와 이름 외우기 게임을 진행했다. 그리고 곧 그 선택을 후회했다.


실수는 크게 두 가지였다. 대부분의 6학년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 주일학교에 다녔기에 서로 이미 너무나도 잘 아는 사이였다. 그들의 이름을 외워야 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결국 게임의 방식을 바꿔 선생님의 프로필을 맞추기로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선생님의 나이나 좋아하는 가수 등을 맞추기 위해 앞다투어 손을 들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금세 떠들썩해진 아이들을 보며 처음의 긴장감이 사르르 풀려나갔다.


첫인사에 아이들이 조용했던 이유는 말투가 너무 '어린아이'에 맞춰졌다는 데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니 그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열세 살이었고, 그 나이 나름의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고 살았다. 가령 어른이 무거운 물건을 들어주려고 할 때 '제가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거나. 6학년은 충분히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를 간과한 것이 내 두 번째 실수였다. 아이들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선배 교사의 수업을 흉내 내려 했던 태도. 유치부의 경험에만 의지해서는 그들의 마음에 닿을 수 없었다.


이후 수업부터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였다. 전년도 담임이었던 또 다른 선배 교사가 남긴 편지가 많은 도움이 됐다. 애정이 꾹꾹 눌러 담긴 두 장의 편지는 아이들의 특징과 성격이 적혀있었다. 어떤 친구가 리더십이 있는지, 특별한 가족관계에 대해서,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엽기적인 그녀> 영화 대사가 떠오르는 선배의 자필 편지에는 1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쌓인 정과 사랑이 가득했다. 덕분에 돌발 상황에서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아버지와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때때로 반항적인 말투로 선생님들을 당황스럽게 하길 좋아했다.


"얘들아, 오늘 나눠준 가정통신문은 집에 가서 엄마 꼭 보여드려야 해!"

"저 엄마 없는데요?"

"그래? 그럼 할머니 보여드려!"


빈틈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간 대화에 황당했는지 아이는 입을 다물고 나를 노려봤다. 짧은 순간 아이와 눈을 맞추고 '그런 행동은 그만 해.'라고 신호를 주었다. 걱정되는 건 아이의 반항심보다 스스로 입을 상처였다. 일부러 남들에게 불쾌한 행동을 하고, 딱해 보이거나 미움받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어서일까. 그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주변에 잔뜩 뻗친 가시는 결국 자신을 상처입힐 것이다. 그걸 그 아이가 알았으면 싶다가도, 결국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그 친구가 어떤 생각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적어도 주일학교에서는 네가 어떻든 나에겐 다 똑같은 제자일 뿐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학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자신은 없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그것으로 내게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이후 조금씩 수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친구들에게 시비거는 행동도 줄어들고, 먼저 와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하는 밝은 모습도 보여줬다. 아이의 수다에 나도 기분이 한껏 좋아져, 내 학생이 성당에 온 시간만큼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했다.


부족한 선생님이지만 그런 내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이들은 하나둘씩 내게 마음을 열어 보였다. 아이들과 친해지고 보니 전임 선생님이 왜 이렇게 이 아이들을 예뻐했는지, 손으로 쓴 편지를 두 장이나 써서 주셨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서로 돕고 다독이며 다른 학년 학생들에게 멋진 본보기가 되어 주었다. 수업에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이 있다면 자기들끼리 눈치를 주고받으며 그 친구에게 기회를 더 주기도 했다. 본인도 아이면서 더 작은 아이를 귀여워하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놀아주곤 했다. 그런 우리 6학년 친구들의 눈은 언제나 빛이 났다.






물론 모든 순간 바람직한 태도만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은 흥분한 아이들이 걷잡을 수 없이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진땀을 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이 두 개의 무리로 나뉘어 다투고 있었다. 한쪽은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하라고'를 외치는 무리, 다른 한쪽은 '그렇게 말하는 너희가 더 시끄럽다고'를 외치는 무리.


용호상박의 소음 속에서 똑같이 목이 터지도록 '조용'을 외치려고 하다가, 이내 침묵을 선택하고 아이들이 조용해지길 기다렸다. 조금씩 눈치를 챈 친구들이 제 옆자리 친구의 허리를 쿡쿡 찔러대기 시작했다.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 나서야,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다 떠들었니?'라고 말했다. 바로 그 순간, 한 친구가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교실은 이제 다른 의미로 정적이 흘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뛰쳐나간 친구를 찾으러 갔다. 그 아이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내가 따라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이름을 부르자마자 아이가 뒤돌아 말했다.


"쌤, 화 좀 내세요."


예상 밖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큰 일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이 되면서도, 이 친구에게 그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가늠이 되지 않아 난감했다. 그러면서도 내 편이 되어주려는 고마운 마음이 귀여워 입술을 비집고 웃음이 나왔다.


"화를 안 내니까 애들이 쌤을 만만하게 생각하잖아요."

"미안해. 내가 잘 몰랐어. 그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구나?"


함께 계단에 걸터앉아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내게 조언하고 싶어 했다. 좋아하는 명언을 알려주며 선생님이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열세 살 어린이가 걱정할 정도로 만만한 선생님. 어쩌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떤 친구는 지금처럼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할 것이다. 볼이 퉁퉁 부은 채로 앉아 바닥에 신발 뒤꿈치를 찍어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알았어. 그럼, 다음 주부터는 우리 반에 새 규칙을 만들어보자. 같이 돌아갈까?"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런데 난 너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화가 안 나.' 속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삼키고 교실에 돌아왔다. 정말로 아이들에게 화가 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위험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할 때에는 걱정되는 마음으로 꾸지람할 때도 있지만, 말을 듣지 않아도 화가 나기보다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들을 믿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기 때문에. 나의 노력, 다른 누군가의 노력, 자신의 노력으로 사랑이 가득한 어른이 될 거라고 믿기 때문에.


아이는 아까의 행동이 친구들에게 부끄러웠는지 조금 있다가 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교실 문을 여니 아이들은 시끄럽지 않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새삼 주일학교 교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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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것 없이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해 본 적이 있을까. 예쁜 짓을 해서 더 좋아하게 된 건지, 좋아하다 보니 더 예뻐 보이는 건지. 나는 잔뜩 사랑에 빠지고야 말았다. 그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남고 싶어졌다. 초등부에서의 마지막 1년이 그들의 인생에서 더 없이 반짝일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첫사랑. 내게 6학년은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첫사랑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다음 화에 계속)









[주일학교 교사를 위한 TIP]


● 아이스 브레이킹 : 선생님 프로필 맞추기 (3~6학년 적용)

1. 칠판에 프로필 항목을 적는다. 항목은 구체적이고 다양할수록 좋다.

예시) 이름, 세례명, 나이, 띠, 좋아하는 가수, 음식, 색깔, 계절 등

2. 아이들을 빨간색 팀, 파란색 팀으로 나눠 대결 구도를 이룬다.

3. '정답'을 먼저 외친 팀부터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 (정답에 근접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교사 재량으로 힌트를 줄 수 있다.)

4. 정답을 맞히면, 팀별로 빨간색 보드마카와 파란색 보드마카로 구분하여 정답을 적어준다.

5. 모든 프로필이 완성되면 빨간색 팀, 파란색 팀이 각각 몇 개를 맞췄는지 개수를 세고, 우승 팀을 발표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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