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슈퍼맨이었고, 아이언맨이었다.

여름캠프 준비로 우리는 단단해진다.

by Dily딜리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여름캠프 준비가 시작된다. 주일학교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여름캠프는 아이들이 제일 기대하는 행사다. 또, 그런 아이들의 기대를 채워줄 선생님들이 가장 긴장하고 걱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캠프 준비는 아주 일찍 시작한다. 어느 성당은 새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 그러니까 눈이 미처 녹지도 않은 추운 겨울에 캠프장 답사를 떠난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침구나 식기류는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는지, 사사로운 것 하나까지 모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간다. 때로는 직접 느껴보려고 아예 캠프장에서 하루 숙박하기도 한다. 이 사전답사를 위해 직장인 교사들은 소중한 연차 휴가를 내어주기도 한다. 여러 가지 조건에 만족하면 날짜를 정하고 계약금을 지불한다. 이 과정은 마치 결혼을 앞두고 웨딩홀을 고르듯 신중하게, 또 기민하게 이루어진다.


아직 어렸던 내게는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주체적으로 진행한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계약금 몇 백만 원이 왔다 갔다 하고, 예산을 신청하고, 관광버스를 대절하고 무거운 짐을 옮길 용달차를 예약했다. 학부모님들께 보낼 공문을 작성하고 캠프 주제를 정해 현수막과 단체티 디자인을 하고... 모든 일이 새로웠다. 기껏해야 20대 초중반의 교사들이었다. 30대 직장인도 있었지만 직장에서도 흔히 접하지는 못할 일들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으레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선배 교사들이, 또 선배의 선배 교사들이 해왔던 것처럼.






캠프 장소가 정해지면 곧 있을 새 학기 준비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봄꽃이 막 지려고 할 때 즈음 기획안 회의가 시작된다. 신입 교사로 있을 때의 첫 여름캠프 회의 느낌은 ‘예민하고 까칠하다’였다.


아무래도 2박 3일간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야 하다 보니, 안전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작은 실수로도, 눈 깜짝할 새에도 다칠 수 있고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회의를 거듭하며 프로그램을 고치고 고쳤다. 수정된 기획안을 읽어 보면 위험 요소가 또 눈에 보였다. 그럼 다시 여러 의견이 오고 갔다. 너무 안전하게만 하다가 재미없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 아니냐, 차라리 앉혀 놓고 영화만 보여주지 그러냐. 의견 조율을 하다 보면 때로는 감정이 넘실대기도 한다. 선생님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기획 회의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물품을 구입하고, 살 수 없는 건 직접 만들고, 게임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그러다 보면 여름 내내 성당에 와 있다. 퇴근하고도 꾸역꾸역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성당에 모인다. 얼굴에 그늘이 잔뜩 내려앉은 채로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와 앉는다. 어떤 날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가위질만 하다가 집에 가기도 한다. 겨우 막차에 타고 집에 갈 때면 휙휙 지나쳐가는 가로수를 멍하니 바라만 본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쳐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쯤, 9일 기도가 시작된다.


9일 기도는 여름캠프가 시작되기 9일 전부터 시작되는 하나의 의식이다. 그 기간에는 눈물을 보이는 선생님들이 많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현재 내 삶의 많은 숙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봉사하는 마음으로 온 성당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걸로도 모자라 감정까지 뺏길 판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주객전도를 계속해야 할까.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성당에서 밥도 돈도 주지 않는데. 여름캠프 준비는 그런 생각이 들 만큼 힘겨운 여정이다. 9일 기도는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탈출구이자,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듭이었다.


말은 기도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걸 ‘나눔’이라고 불렀다. 그곳에서 나는 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조용히 꺼내 말한다. 자리에 있는 모두는 그 잔잔한 고백을 듣고, 모든 말을 마치면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어떤 사족도 붙이지 않고 누구도 말에 끼어들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들을 뿐이다. 이 작은 행위들은 가슴 한 구석을 갉아먹던 불안함을 조용히 사라지게 하는 힘이 있다. 내 이야기를, 무거운 짐을, 함께 나누어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여기 존재한다. 나와 마음이 같은 사람들이.


사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아무도 성당에 매일같이 나오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더 잘하고 싶기에, 지금의 고통이 나중에 기쁨으로 돌아올 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모였다.






그래서, 나는 ‘이 짓’을 왜 하는가?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성당에서의 봉사활동은 자아실현의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나를 믿어주는 아이들이 있는 한, 나는 뭐라도 된 것만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슈퍼맨이었고, 아이언맨이었다. 아이들 사진으로 멋진 이벤트를 준비하고 싶어 밤새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공부했다. 그렇게 만든 서툰 패러디 영상을 보여줬을 때, 그들이 깔깔거리면서 한 번만 더 보여달라고 조르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했다.


조금 더 재밌는 교리 수업을 하고 싶었던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성당에 앉아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여러 게임을 참고해서 그럴듯한 설명서를 제작하고, 하드보드지 몇 장을 버려가며 결국 완성했다. 그다음 수업에서 아이들이 흥분한 얼굴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성탄제에서 보여줄 교사 공연을 위해 아이돌 댄스를 몇 날 며칠 연습한 적도 있다. 좁은 방 안에서 팔을 휘젓다 멍이 들기도 했다. 하도 많이 연습해서 노래가 시작되면 자동으로 팔다리가 움직였다. 그렇게 성탄제 마지막 순서의 막이 열리면, 아이들은 진짜 아이돌이라도 본 양 무대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조명 때문에 아이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손에 든 야광팔찌를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그들의 눈이 보석처럼 빛이 났다는 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림을 잘 그리고, 누군가는 노래를 잘했다. 또 누군가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데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은 사회 초년생들이 모여 매주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그것들은 눈덩이처럼 불어 우리 모두의, 그리고 개인의 삶에 계단을 한 칸씩 놓아주었다. 그게 기적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름캠프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불확실함'에 대한 걱정이었다. 아이들이 이걸 좋아해 줄까? 위험하진 않을까? 소외되는 아이가 있지는 않을까?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때문에 다른 교사가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걱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부족한 건 하느님이 채워줄 거야.'라며 선배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도록 온 힘을 쏟아내서 준비했다. 그렇게 간 캠프는 늘 성공적이었다. 아이들은 캠프가 끝나고 성당에 도착하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엄마에게 달려갔다. 매년 여름캠프를 기대해 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재밌을 거라 믿어주는 아이들 덕분에 우리는 단단해졌다. 이후로 어떤 행사를 준비하더라도 괜한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우리도 함께 자랐다.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고, 실연의 아픔이나 가족의 부재를 겪고, 낭떠러지 앞에 위태롭게 서있는 그런 순간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김없이 모였다. 그건 현실에서 도망친다기보다는 다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계단을 쌓고, 때로는 서로의 등을 밀어주기도 하면서, 취업에 성공하고, 결혼을 하고, 행복한 삶을 향해 발을 내밀었다.


아이들을 웃게 해주는 것.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행복을 심어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지만, 결국 그것으로 각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게 된 것이다. 스스로를 돌보기도 벅찼던 우리의 눈이 텅 비어갈 때에, 오히려 아이들에게 줬던 사랑이 되돌아와 나를 채워주었다. 그래서일 거다. 우리가 '이 봉사'를 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빛내준 보답으로 다시 내가 빛날 수 있었으니까.


1년 중 가장 큰 행사, 여름캠프라는 가장 긴 시련을 거쳐 우리는 자랐다. 함께 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당신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모든 이야기를 듣고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슈퍼맨과 아이언맨이 될 수 있었다.







[주일학교 교사를 위한 TIP]


●여름캠프 답사 시 빠트리기 쉬운 체크리스트 항목들


1. 각 건물 이동 소요 시간

: 식당에서 숙소, 숙소에서 강당 등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경우 이동 소요 시간을 체크한다. 신이 난 아이들을 줄 세워 이동하다 보면 다음 프로그램 시작까지 시간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동 시간 ±20분 정도로 계산하도록 한다.


2. 미사 준비

: 미사하게 될 공간(예: 강당)에서 신부님께서 대기할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는지 체크한다(제의실). 따로 공간이 없는 경우 미리 말씀드리고, 상황에 따라 다른 공간에 제의 등을 배치한다.


3. 숙소 근처 식수대, 정수기 여부

: 낯선 곳에서 자다 보니, 아이들은 밤에 자주 깨서 밖으로 나온다. 보통의 핑계는 '목이 말라서'이다. 숙소 내에 생수와 종이컵을 비치하거나 복도에 간이 정수기를 설치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4. 식당 내 기도 부착 여부

: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캠프장이 아닌 이상 식사 전, 식사 후 기도를 적은 종이가 필요하다. 식당을 단독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식당 벽에 종이 부착도 가능한지 사전에 문의해야 한다.


5. 안전 점검

: 공간마다 소화기 위치나 비상 대피로 등을 꼭 익혀둔다. 안전이 최고다.




여름캠프 답사에 필요한 체크리스트 항목을 파일로 공유드립니다.

주일학교 선생님들께서 많은 도움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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