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었다. (2)

첫사랑의 기적

by Dily딜리

얼마 전, 스무 살을 훌쩍 넘긴 제자를 만나 가볍게 술자리를 가졌다. 처음으로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반에서 가장 어른스러웠던 친구였다. 어릴 적 모습 그대로 예쁘게 자란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햇살 같았다. '쌤!'하고 부르는 목소리마저 그대로였다. 우리는 그동안의 공백이 무색하게 옛날로 돌아간 듯 대화를 나누었다. 놀랍게도 그녀가 기억하는 건 첫 수업이었다.


"쌤, 그때 좋아하는 영화가 '괴물'이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기억나?"

"네, 당연하죠! 그날 수업 주제가... 계시에 대해서였나?"

"대박이다. 맞아!"


사실 좋아하는 영화는 따로 있었지만, 아이들이 쉽게 맞출만한 영화를 골랐던 기억이 난다. 완성된 프로필을 보고 비로소 선생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이 수업의 포인트였다. 우리가 계시를 통해 하느님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수업 내용과 연관 짓기 위함이었다. 10년 전 일을, 그것도 같은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서투른 수업 내용을 아직도 기억하는 아이가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쌤은 항상 애들을 한 세 명쯤은 매달고 다녔던 것 같아요."

"맞아, 맞아. 그랬었지."

"애들 진짜 장난 많이 쳤죠. 선생님 옷 맨날 늘어나고."


푸하하. 그래, 맞아.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화내지 않는 만만한 선생님'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아이들은 내게 격의 없이 대하기를 좋아했다. 나 역시 아이들과 장난치는 게 즐거웠다. 옷이 늘어나건 말건 그들과 맞닿은 채 같은 숨을 쉬며 뛰어놀고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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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눈으로 바라본 그녀는 익숙한 듯 잔을 입에 대고 시원하게 맥주를 넘겼다. 첫사랑이 어른이 되어 나타났다. 주일학교에서 받은 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이후 학교에서, 사회에서 받은 사랑을 모두 싣고 달려와 앞에 앉아 있었다. 수업 시간에 누구보다 먼저 손을 들고 대답하던 초롱초롱한 두 눈은 이제 그동안 받은 모든 사랑을 나누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타오르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첫사랑에 빠진 지 1년이 다 되어갈 때쯤이었다. 곧 이 아이들을 졸업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면 눈물부터 흘리곤 했다. 그들은 날이 갈수록 어른스러워졌다. 한 살이라도 어린 동생들이 엇나가는 행동을 하면 불러세워 혼을 냈다. 특히 복사단에 가입되어 있는 남자아이들은 위계질서가 뚜렷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끊거나 버릇없이 행동하면 어김없이 6학년 형이 나타났다. 나지막히 내뱉은 "야." 한 마디에 장난꾸러기들은 곧바로 꾸벅 인사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들은 내가 진지한 수업을 하고자 하면 진지하게 임했고, 고심해서 만든 게임을 시작하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든든한 천군만마를 등에 업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1년 동안 애정이 쌓이고 쌓여 커다란 성을 이루었다. 졸업이라는 파도 한 번으로 휩쓸릴 수 없는 단단함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계속 흘렀고, 어느새 중고등부 겨울 피정 행사가 다가왔다.


매년 겨울이 되면 중고등부 학생들은 '피정'이라는 겨울 캠프를 떠난다. 그리고 그해 2월에 졸업을 앞둔 6학년도 함께 하게 된다. 미리 중고등부 선생님들의 얼굴도 익힐 겸,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나 역시 6학년의 담임으로서 아이들과 동행했다.


어른스러운 아이들도 중고등부에 들어가는 순간 가장 어린 막내가 된다. 다 함께 출발하기 위해 성당 앞마당에 모여있는데, 새까만 패딩을 입은 중고등학생 언니 오빠들 사이에 6학년이 알록달록한 패딩을 입고 서 있었다. 쫑알쫑알 떠드는 친구들도 우리 아이들뿐이었다. 초등부에서 가장 성숙한 친구들이었는데 어쩔 수 없는 어린이였구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귀엽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었는지, 중고등부 선생님들은 엄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새로운 분위기에 눈을 도로록 굴리는 아이들을 보니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혼내지 않아도 충분히 잘하는 아이들인데. 괜히 심통이 났지만 중고등부가 주관하는 행사인 이상 내가 월권할 수는 없었다. '이따가 몰래 가서 간식 챙겨줘야지.'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건 이후에 알게 되었다.


중고등부 피정에 따라가서 가장 먼저 충격받은 건 식사 때문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당연히 선생님이 아이들 사이에 한 명씩 끼어 앉아 있을 줄 알았는데, 중고등부는 그렇지 않았다. 학생은 학생끼리, 선생님은 선생님끼리 모여 앉아 식사했고, 아이들은 예의바르게 '식사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까지 했다. 초등부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날 주일학교에서 처음으로 평온한 식사를 마쳤다.


그해 겨울 피정은 태백산으로 겨울 산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함께 등산할 수 없었던 나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아이젠과 핫팩, 보온병 등을 꼼꼼히 챙겨 올려보냈다. 혹시나 강한 바람에 돌이라도 날아와 맞지는 않을지, 괜히 장난치다가 일행을 잃지는 않을지. 숙소에 남아 온갖 걱정과 함께 아이들을 기다렸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볼이 발그레해진 채 하산한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앞다투어 달려와 영웅담을 늘어놓았다.


"쌤, 태백산 정상에서 컵라면 먹어본 적 없죠?"

"분명히 뜨거운 물을 부었는데 컵라면이 안 익는다니까요?"

"보온병에 있던 물이 얼었어요!"

"선생님도 같이 갔으면 분명히 넘어졌을걸요?"


수다쟁이 아이들의 앞머리에 쌓인 눈을 톡톡 털어주고 빙그레 웃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들을 보내줘야 한다는 게 실감 났다. 6학년 아이들은 엄격한 중고등부 선생님들과 언니 오빠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완전히 녹아들었다. 내 도움 없이도 그들의 일부가 될 준비를 마쳤다. 아니, 사실 도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마음을 놓아야 하는 건 내 쪽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충분히 자랐고, 그들이 어울릴 곳을 찾았다.


그날 밤,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이라는 생각에 미련이 넘쳐 흘렀다. 결국 아이들이 잘 준비를 마쳤는지 점검하겠다는 핑계로 숙소 방문을 두드렸다. 저마다 짝사랑하는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하며 베개를 끌어안고 있는 여자 친구들과 달리, 남자아이들의 방은 열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쏟아져나왔다. 내복 바람으로 치열한 베개 싸움을 벌이고 있던 아이들은 내가 들어가자마자 "선생님, 변태!"를 외치며 등을 떠밀었다. 알겠다며 나가려는 나를 끌어앉히고는 주변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아이들은 불을 끄더니 하나도 무섭지 않은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벌벌 떨었다.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들이 귀여워 눈에 오래 담아두고 싶었다. 한 아이는 무섭다며 내 무릎을 베고 내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더니, "쌤이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라는 기절할 한마디를 했다. 아아,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어떻게 졸업시킬 수 있을까. 나는 초등부를 때려치우고 중고등부 교사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애써 꾹꾹 눌러 담았다.






마지막 날에는 피정을 마무리하는 미사가 진행되었다. 이 미사가 끝남과 동시에 아이들이 중고등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생각을 하자 미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복잡한 감정이었다. 어느새 아이들이 그만큼 자랐다는 것에 대한 기쁨도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떠나보내기 아쉬워 흘리는 눈물이기도 했다. 1년 동안 나는 그들에게 자랑스러운 선생님이었나, 기억에 남는 한 해를 보내게 해 주었나 하는 반성도 한 움큼이었다.


미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툭 치면 눈물이 쏟아져나올 것 같은 마음을 추스르고 자리에 앉았다. 저들끼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한 친구가 나를 보더니 놀렸다.


"쌤, 아직도 울어요?"

"나 이제 안 울거든."

"쌤, 손."


아이는 좌석 사이로 손을 내밀어 잡았다. '손이 왜 이렇게 차요.' 아이는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녹여주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몸도 마음도 훌쩍 커버린 6학년 아이는 이제 어엿한 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이 아이는 이제부터 내 손에서 벗어나 다른 선생님의 손으로, 또 다른 어른의 손으로 커 나가야 한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나를 이토록 사랑해 줬던 선생님이 있었지.'라는 한 마디 회상으로 충분하다. 이다음의 몫까지 차지하려는 건 내 욕심이었다. 온기 가득한 고사리손은 어른의 손을 위로해 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손을 통해 전해졌다.


버스 창문 밖에는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이후 마음을 많이 내려놓은 채 졸업식을 준비할 수 있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정성 담아 편지를 썼다. 졸업식 하루 전날까지 선물을 포장하며 씁쓸한 마음도 함께 정리했다. 앞으로의 날들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졸업장을 인쇄하고, 상장 케이스에 끼우며 모든 일을 마무리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맡은 학년, 처음으로 진하게 사랑한 아이들. 첫사랑의 끝은 지나치게 썼다. 결국 나는 졸업식 하루 전날 슬픔을 못이겨 술을 잔뜩 마셨다. 한 잔, 두 잔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갈수록 감정의 소용돌이가 더 커졌다. 내가 너무 어린 탓이었을까.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다음 날 술병에 걸려 아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날 나는 미숙하고 어리석은 스스로를 탓하며 온종일 울다 지쳐 잠에 들었다. 졸업식에 담임이 참석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보다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단단한 성벽이 얕은 파도 한 번에 휩쓸려 떠내려간 모래성이 되어버렸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그 일을 생각하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젓는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앞으로도 첫사랑을 떠올리면 행복한 기억과 미안한 기억을 동시에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온전히 나만의 잘못으로 점철된 일이기에.


그러므로 내 첫사랑은 차디찬 실패로 끝나는 것이 마땅하다.






"와, 진짜 추억이다. 그때 재밌었는데."


어른이 되어 나타난 아이는 얼마 남지 않은 맥주를 홀짝이며 말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맥주잔을 만지작거렸다. 졸업식을 기억하는지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아이는 옛날처럼 햇살 같은 웃음으로 웃어 보였다. 그녀의 미소에 원망이나 책망 따위는 없었다.


둘 사이에 놓인 맥주잔의 거리만큼, 우리는 각자의 세계로 떨어져 살아오다 마주 앉았다. 잔을 부딪칠 때마다 같은 추억을 공유했고, 하나의 추억거리를 꺼낼 때마다 그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은 커져만 갔다. 그런데 그녀의 말 한마디로 깨달았다. 졸업식 사건으로 모든 것이 얼룩졌으리라 생각하는 건 나의 오만이었다. 아이에게 주일학교의 추억은 나 하나만이 아닌 수많은 친구, 선생님들과의 인연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내가 마지막에 남긴 단 하루의 실수는 그것을 아주 조금 흐리게 만들 힘조차 없었다. 그녀에게 주일학교는 분명히 재밌었던 시간으로 남았다. '진짜 추억이다.' 그 한마디에 이르러서야 나는 출렁이는 맥주잔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 기억을 책임질 수 있다고 착각했다. 식사할 때는 옆에 앉아 지켜보고, 산에 오르다 다칠까 노심초사하고, 혹시나 잠에 들지 못할까 숙소 문을 두들겼다. 내가 보내야 비로소 보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손 편지를 쓰고 선물과 졸업장을 모두 준비해 놓고도 직접 배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하지만 그건 '나'라는 사람이 그들의 추억에 잔뜩 범벅되길 바라는 욕심이었다. 아이들에게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내게 아이들이 필요한 거였다. 그걸 구분하지 못하는 초보 교사의 실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10년 뒤 나타난 첫사랑은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 눈을 빛내며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이제 이 아이는 주일학교 교사가 되어 어릴 적 자신이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나누어주려고 한다. 제자가 어른이 되어 주일학교 교사가 되는 상상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벅찬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녀가 앞으로 가는 길에 혹시라도 나와 같은 미안함이 일렁인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증거가 내 눈앞에 있으니까.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첫사랑의 기적을 너로 하여금 보여주었으니까.


실패인 줄 알았던 첫사랑은 결국 또 다른 사랑을 낳는 기적이 되어 돌아왔다. 내 첫사랑의 기억을 아름답게 장식해준 너희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한다.











[주일학교 교사를 위한 TIP]


●중고등부 겨울 피정을 따라간 6학년 담임의 행동 지침


1. 겨울 피정 회의에 꼭 참석해서 전체 흐름을 미리 파악해 주세요.

2. 중고등부에서는 중고등부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미리 일러주세요.

3. 6학년 아이들이 중고등부 선생님을 우선적으로 따를 수 있도록 지도해 주세요.

4. 초등부에서처럼 모든 것을 도와주려 하지 말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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