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익... 스태프입니다. 오버.

무대 뒤의 영웅들

by Dily딜리

시장에서 5천 원에 파는 얼룩무늬 냉장고 바지와 여름 캠프 단체 티셔츠.

빨간 목장갑과 손목에 끼운 박스 테이프.

주머니에 대충 찔러 넣은 커터 칼, 유성 매직, 무전기.

양손에 든 파란색 이삿짐 박스.


행사를 준비하는 스태프의 기본 복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흰 수건을 목에 걸거나 스포츠용 헤어밴드를 착용하기도 한다. 완벽히 실용성만을 만족하는 것이 포인트다. 이들은 흔히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서 있거나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다. 잠깐의 틈이 날 때마다 선풍기 앞에서 상의를 쥐고 흔들어 땀을 식히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다.


주일학교 교사가 되면 처음 한두 해 정도는 행사에서 아이들과 붙어있을 수 있는 역할을 준다. 그래서 신입 교사들은 조 담임이나 프로그램 진행자가 되어 아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한다. 특별히 그러라는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선배 교사들 나름의 배려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사랑을 주고받았으니 그 기쁨을 후배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래서 '고인물'이 된 교사들은 보통 스태프 역할을 했다.






나 역시 3년 차 교사가 되면서 스태프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아이들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이 최전방이라면 스태프는 지원 부대였다. 프로그램에 필요한 물품을 동선에 맞게 배치하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빠르게 철수하고 정리한다. 방송이나 음향 장비를 설치하기도 한다. 기계라곤 컴퓨터나 핸드폰 말고 만져본 적도 없었지만, 스태프가 되는 순간 수십 개의 버튼이 달린 조명 장비를 조작해야 했다. 조작 방법을 익히고 어느새 익숙하게 암전과 컬러 조명을 교체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면 느새 뿌듯함이 느껴진다. 유능한 엔지니어가 된 느낌. 스태프는 그런 매력이 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직접 호흡할 수 없다는 사실에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물품 박스와 먼지들이 가득한 창고 안이었다.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채 행사가 끝나면 괜스레 힘이 쭉 빠졌다. 후배 교사들처럼 아이들 가운데에 앉아 같은 표정으로 웃고, 사진을 찍고, 끝말잇기도 하고 싶었다. 특히 활동사진에 내 얼굴이 몇 장 없는 것을 보고 나면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외치고 싶기도 했다.


"쌤은 왜 조 담임 안 해요? 같은 조 하고 싶은데."


어느 날 구석에서 짐을 옮기고 있는 내게 한 친구가 달려와 말했다. 이미 자신의 조 담임 선생님과 한바탕 뛰어놀아 볼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아이의 말이 귀에 여러 번 메아리쳤다. 올해 처음 온 아이에게 나는 그저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일꾼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괜한 서운함이 밀물처럼 조금씩 밀려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아이가 고맙기도 했다.


그러나 곧 창고 밖의 선생님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신입 선생님들은 옛날의 내가 그랬듯이 온몸으로 어린이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앞으로 저 선생님 중 몇은 스태프가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또 한 친구가 달려와 오늘과 같은 말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좋은 선생님이 그 친구의 추억을 만들어줄 터였다. 그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시간이 흘러 각자의 위치가 변하고, '새로운 선생님'과 '새로운 아이들'이 '새로운 행복'을 경험한다. 그건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는 것처럼 아주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그걸 알고 나니 먼지 가득한 창고에서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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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리듯 말을 건네준 아이 덕분에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 아이는 눈앞에 있는 다른 선생님과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속에 내가 없음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함께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두 눈에 추억을 겹쳐 흐뭇한 미소로 바라본다. 내가 웃었던 만큼 그들도 웃었으면 한다. 조금의 지체도 없이 자연스럽게, 오래도록 행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게 나의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스태프를 소외시킨 건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행사를 만드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위치에서 같은 목표를 갖고 있는 이상,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다.


어린이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욕심은 잠시 접어두고 대신 갖가지 장비와 어울렸다. 아이들을 보던 시선은 물품 목록으로 향하고, 그들의 마음을 읽는 대신 큐시트를 읽어야 한다. 끝말잇기 놀이를 하며 "기찻길 쿵쿵따"를 말하는 대신 무전기에 대고 "강당에 의자 네 개 부탁합니다. 오버."를 말해야 한다. 그 모든 일을 할 때 바탕이 되는 건 아이들이 즐거워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직접 놀아주지 않고도 충분히 그들의 입에서 '까르르' 소리가 나오게 해줄 수 있다. 내가 손대는 일들이 모두 어린이들의 기쁨으로 변하는 모습. 그걸 알아채는 게 바로 스태프만이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행복이었다.






다음 해에 나는 스탭장이 되었다. 스태프 전체를 통솔하는 역할을 두고 '스탭장'이라고 부른다. 사실 몇 안 되는 교사 중에 스태프를 선정하면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조 담임'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때로는 선배 교사나 다른 주일학교에서 봉사자 몇 명을 섭외하기도 하고, 가톨릭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학생들에게 스태프 역할을 부탁하는 때도 있다.


주일학교 소속이 아닌 사람에게 회의 때마다 시간 맞춰 나와달라고 말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스탭장이 필요하다. 스탭장은 모든 기획 회의에 참석해서 내용을 꼼꼼하게 숙지하고 큐시트를 작성한다. 그렇게 완성된 큐시트는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스태프들을 한데 모아 발표하는 게 좋다. 특히 손발이 맞아야 하는 부분에서 무엇 하나라도 삐끗하면 엉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다음 순서에서 빔프로젝터 작동 부탁드립니다. 오버."

"네, 리모컨 위치 확인 부탁드립니다. 오버."

"네? 리모컨 선생님한테 없나요?"

"없는데요."


이런 아찔한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리모컨을 누가 가지고 있을 것인지부터 혹시 찾지 못했을 때 수동으로 작동하는 방법까지 정해두어야 한다. 모든 지시 사항을 꼼꼼하게 적고, 정확하게 공유해야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다.


하지만 다 같이 모여서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부분만 개인적으로 전달하거나 맡은 역할의 큰 덩어리만 알려준다.


"선생님은 프로그램 시작 전과 후에 모든 장비의 전원과 전선 관리를 부탁드려요."

"선생님은 세팅 담당이에요.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박스에 물품을 정리해서 포장해 주세요."

"선생님은 응급 상자를 챙겨 다니다가 다친 친구가 있으면 돌봐주세요."

"학사님은(신학생을 학사님이라고 부른다.) 현수막이나 각종 부착물을 설치하는 역할만 해주시면 돼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스러웠다. 스탭장이 되면 괜히 미안해지는 일이 많다. 이것저것 부탁할 일이 천지에 널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스탭장은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 큰 역할을 맡지 않고 중앙에서 대기하는 일이 많다. 혼자 실내에 남아 바깥에서 고생하는 스태프들을 보고 있자면 차라리 그들 대신 온몸으로 뛰어다니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한다. 혹시 일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서운할까 봐, 일부러 심각한 표정으로 큐시트를 몇 번이고 읽는 척한 적도 있다. 통솔력도 카리스마도 없는 내게는 그들을 잘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내내 짐이 되어 쫓아다녔다.


머릿속으로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려 본다. 혹시 동선이 꼬이거나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일이 치중되지는 않을지 점검한다. 행사의 준비 기간부터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나는 긴장의 연속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오죽하면 매달 하는 생리마저 미뤄질 정도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큰 목적을 잊고 수단에 그렇게도 매달렸다. 부족한 내 능력이 드러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때때로 계획과 다르게 일이 틀어지면 예민함을 내비칠 때도 있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음을 간과하고 나만큼 온 힘을 쏟아내지 않는 것에 서운해하기도 했다. 그런 스스로를 발견할 때마다 자신감이 떨어져 갔다. 스탭장을 하기엔 내가 너무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감사하게도 그때 함께 했던 스태프들은 이런 고충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조금의 원망이나 투덜거림도 없이, 오히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주었다. 그럴 때면 쥐구멍에 들어가 숨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구석에 숨은 나를 기어코 끄집어내어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민경 쌤, 잘하고 있어요. 걱정 마."

"완전히 스탭장이 적성이네!"






5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의 고민이 생각보다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아이들만 재밌게 놀아준다면 그깟 큐시트 한 귀퉁이 정도는 흘려보내도 괜찮다. '그땐 왜 그런 걸 몰랐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몰랐기 때문에 더욱 진심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진심이 닿아 함께 스태프로 일했던 사람들과 지금까지 인연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함께 고생했던 기억은 행사가 끝나자 좋은 추억으로 변했다. 함께 잔을 부딪치며 서로에게 고생했다고, 즐거웠다고 토닥여주었다.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행복은 이번엔 없었지만, 가슴 한구석에 어렴풋이 전우애가 생겨났다. 우리는 온몸에 먼지와 땀을 뒤집어쓰면서도, 흙바닥에 대충 앉아 아이들이 남긴 간식을 먹으면서도 그것대로 행복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대 뒤의 영웅이었다.


마냥 아이들이 좋아서 시작했던 봉사다. 성당에 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 예뻐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 내 봉사의 전부였다. 스태프로 일한 뒤에는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됐다. 아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것 역시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다. 아이들이 그 사실을 몰라도 괜찮다. 사진에 내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내 곁에는 내가 하는 일을 지켜봐 주고 있는 다른 스태프들이 있으니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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