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사랑의 기적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여 살리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예수님의 기적.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흔하게 듣는 이야기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는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들었다. 가톨릭 집안에서 나고 자랐기에 엄마에게도, 성당 유치원 선생님께도 들었다. 어릴 때는 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의 손끝에서 마법이 흘러나와 음식이 무한대로 불어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둘리의 초능력처럼.
사실 종교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정말로 예수님의 손에서 물리적으로 기적이 일어났다고 믿는 게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해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고,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다른 해석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이 갖고 있던 식량을 가지고 나와 나누었다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결국 하나의 큰 기적을 이루었다는 해석이다.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려면 그편이 좀 더 납득하기 쉽기도 하다. 종교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기에.
가진 것이 부족하고 보잘것없더라도 흔쾌히 나누려는 사람,
아까워서 숨기려고 했지만 결국 나보다 부족한 이에게 연민을 느껴 베푸는 사람,
분위기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내놓은 사람.
이유야 어찌됐든 그들은 마음이 동했고 식량을 나누었다. 나눔의 경험은 분명 그들 안에 무언가를 남겼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기적을 일으켰다.
기적은 우리 주변에서도 가끔 일어난다. 예를 들면 내가 맡았던 첫영성체 반 아이들처럼.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 어린이들이 기적을 행한 그날이 떠오른다.
가톨릭의 미사를 구경해 본 사람은 신자들이 줄지어 앞으로 나가 무언가를 받아먹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건 ‘성체(聖體)’ 즉, 예수님의 몸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자 교육을 받고 세례받은 사람들만이 먹을 수 있다. 그 먹는 행위를 '영성체', 또는 '성체를 영한다'고 표현하며, 성체를 처음으로 영하는 것을 '첫영성체'라고 부른다. 어느 성당이든 매년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사이의 어린이들이 첫영성체를 위해 예비 신자 교육을 받는다.
새 학기 첫날에 본 아이들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책상 위에 올라가서 위험한 장난을 하는 친구, 괴성을 지르는 친구, 심지어는 옷을 까뒤집어 자기 배를 보이는 친구까지. 그들을 본 나의 첫인상은 '쉽지 않다'였다. 여태껏 본 아이들 중에 가장 힘들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애를 많이 썼다. 유치부는 그저 귀엽고, 6학년은 의젓한 맛이 있다면 첫영성체 반은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미사가 끝나면 다 같이 점심을 먹는데, 넓은 공간에 외부인들까지 있다 보니 많은 주변 소음이 생긴다. 소음을 뚫고 목청을 올려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면 식사 전 기도를 한다. 뭔가 허전한 느낌에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반 중 몇 명이 배식도 받지 않고 바깥에서 뛰어놀고 있다.
돌아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화가 난 건 아니다)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다. 모두 빠짐없이 식판을 잘 받았는지 확인하고 나면 나도 겨우 자리에 앉아 함께 밥을 먹는다.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든든히 먹어두어야 한다. 아이들은 정신이 쏙 빠진 나에게 조잘조잘 말을 건다.
"선생님, 우리 아빠 차 내비게이션 욕한다요?"
"내비게이션이 무슨 욕을 해. 얼른 밥이나 먹어."
"진짜라니까요? 아이씨, 아이씨(IC) 이런다니까요?"
그야말로 초등학생 같은 말들을 내뱉고는 자기들끼리 까르르 웃는다. 그 모습이 귀엽고 어처구니없어 나도 웃음이 난다. '선생님 샌드위치에 똥 들어있대요!' 하면 '그래, 나 똥 먹는다! 너한테도 있을걸?'이라고 받아친다. 아이들은 어떻게 선생님이 학생한테 그런 말을 하냐며 또 놀린다.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농담을 하고 있다.
교실에 들어와 제대로 수업을 시작하기까지도 시간이 꽤 걸린다. 제발 자리에 앉으라고 몇 번을 말하고, 조용히 하라고 몇 번을 외쳐야만 수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말괄량이 아이들에게 가장 효과가 뛰어난 건 보상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오늘 수업에 잘 집중하는 친구에게 사탕이나 젤리를 주겠다는 한마디에 그들은 거짓말처럼 자세를 바로잡는다. 그러면 나는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옛이야기를 하듯 잔잔하게, 준비한 내용을 들려준다.
조금 전까지 의자 위에서 뛰어내리고 고함을 지르던 아이들은 어느새 이야기에 푹 빠져든다. 교실에는 이제 나의 목소리와, 아이들의 숨소리와, 창밖의 새 소리가 울려 퍼진다. 책상에 턱을 괴고 귀를 기울이는 아이들의 눈빛. 정성스레 꾹꾹 눌러 받아 쓰는 연필의 사각거림. 이야기가 고조되고 재미있는 부분이 나오면 저마다 터뜨리는 웃음. 그 평온함이 좋아서, 나는 첫영성체 반 수업을 좋아했다.
그날은 간단하게 퀴즈 대회를 하는 날이었다. 그동안 배운 교리 지식을 뽐내며, 아이들은 저마다 손을 들고 정답을 외쳤다. 가르쳐준 것을 스펀지처럼 쏙쏙 흡수한 아이들이 대견했다. 학기 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아이들은 몇 개월 만에 성큼 자랐다. '똥'이나 '방귀'같은 것을 좋아했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시키지 않아도 밥을 먹기 전에 식사 전 기도를 했다. 그들은 어느새 어려운 십계명까지 줄줄 외울 정도가 되어 있었다.
원래는 가장 정답을 많이 맞춘 친구에게 주려고 했지만, 그날의 아이들이 무척 예뻤던 탓일까. 모든 아이들에게 상품을 나눠주고 싶었다.
"얘들아, 오늘 선생님이 너희가 제일 좋아하는 말랑 젤리를 가져왔어."
"1등한테 이 한 봉지를 다 주려고 했지만, 오늘 너희들 태도가 좋았으니까 모두에게 하나씩 나눠줄게."
아이들은 환호했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우유 맛의 말랑 젤리였다. 나는 봉지를 뜯어 앞줄부터 차례대로 젤리를 나눠주었다. 두 손으로 받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니 대견했다.
그런데 거의 다 나눠주고 대여섯 명쯤 남았을 때, 젤리가 동나고 말았다. 선물을 받기 위해 두 손을 내밀고 있던 다음 차례 학생의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사실 큰 일은 아니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나도 당혹스러웠다. 미리 여분의 젤리를 준비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기대했을 아이들에게 다음 시간에 꼭 주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미안하니까 다음 주에 두 개씩 주겠다고 사과하고 있던 바로 그때,
"선생님, 저는 젤리 안 먹어도 돼요."
한 친구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 아이는 내 손바닥에 자기가 받았던 젤리를 다시 올려놓았다. 그러자, 바로 옆 친구도 갑자기 자신의 젤리를 주며 말했다. "저도 안 먹어도 돼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짓말처럼, 주변에서 '저도요', '저도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젤리가 한 손에 가득 찼다.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도 두 개가 남았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멍하니 손안에 들어찬 젤리들을 바라보았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촐싹거리던 아이들이,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남에게 나누려는 예쁜 마음을 가진 어린이가 되었다.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한 명 한 명을 꼭 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기들이 그토록 사랑스럽다는 걸 알까. 감동에 차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몇 번이나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오늘의 행동을 칭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우리 아이들을 자랑했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실존한다고. 이게 우리 애들이라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게 있다. 사랑 없이 지식만을 전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성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인 만큼 지식보다도 앞서 사랑을 듬뿍 전하는 것이 주일학교 교사의 사명이다. 항상 머릿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지만 잘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을 때도 많다. 그러던 중에 우리 반 아이들의 행동은 내게 확신을 주었다.
주 기도문이나 십계명을 달달 외웠다고 한들, 자신이 가진 하나뿐인 젤리를 친구에게 나눠주는 것만큼이나 의미 있을까?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라고 직접적으로 가르친 적이 없는데도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했다. 그건 그들의 내면이 사랑으로 듬뿍 채워졌기 때문이리라. 그 사랑의 일부는 내게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역시도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은 아주 먼 옛날로부터 쭉 이어져 오고 있었다.
물론 정말로 젤리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가 있었을지 모른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날의 기억으로, 언젠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또 나누는 기적을 행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보다 몇 년 더 삶을 살아본 나는 알고 있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은 다른 이에게 더 많은 것을 나눠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 해석을 좋아한다. 예수님의 손에서 마법처럼 피어나는 기적도 좋지만, 누군가 자신의 것을 나누기 시작하고, 그걸 본 다른 사람도 하나둘씩 모여들어 다 같이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렇게 낭만적일 수가 없다.
오병이어의 기적.
말랑 젤리의 기적.
우리가 나누는 사랑의 기적.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그런 기적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주일학교 교사를 위한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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