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영성체 주일학교

나의 마지막 임무

by Dily딜리

유치부 보조 교사로 1년을 보내고, 6학년 정담임으로 1년을 보냈다. 그리고 6학년을 한 번 더, 그다음으로는 첫영성체 반을 2년 동안 맡게 되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초등부의 새 학기를 준비하던 어느 날, 신부님께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으레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하는 평범한 면담일 줄 알고 갔지만 놀랄만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영성체 주일학교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려고 해요."

"처음에는 민경 선생님이 이끌어주시면 어떨까요?"


그 말을 듣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이것이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왜 나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이유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교사 중 경력이 높은 편에 속하고, 첫영성체 반을 2년 동안 가르쳤으니까. 그다음 질문도 '왜 나일까?'였다. 주일학교를 독립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단체를 새롭게 만든다는 건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과연 내게 그만한 자질이 있나. 초등부에서도 해본 적 없는 교감의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런 두려움의 질문이었다. 그러면서도 해본 적 없는 것을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결과적으로는 수락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지난 5년간 봉사라는 이름으로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쳤지만, 내놓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받은 만큼 또다시 봉사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일을 한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것으로 또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2019년, 나는 초등부 주일학교에서 홀로 나왔다.

그리고 첫영성체 주일학교의 교감이 되었다.






명동 성당의 사목위원회에서 단체 인준이 완료되면서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됐다. 1년 운영 계획을 세우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등부에서 첫영성체 반을 맡았을 때 했던 그대로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1년간 집행할 예산안을 만드는 일이 복잡했다. 초등부에 속해있을 때는 '첫영성체 예산'이라는 항목으로 묶여있던 것을 세세하게 나눠야 했다. 학생들의 간식비나 교리 준비비, 대관료, 성경 구매비와 같은 항목으로 나누다 보니 어느새 연간 예산안 작성도 끝났다.


입학 신청서는 초등부의 것을 참고하고, 커리큘럼 역시도 지난 2년 동안의 수업을 중심으로 작성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새롭게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수월했다. 기존에 있던 것을 조금 더 보기 좋게 다듬기만 했을 뿐이다. 그런 것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대단하고 멋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부끄러웠지만, 칭찬을 들으니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단 몇 개월 사이에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새로운 교사 면접도 보고, 틈틈이 신부님과 운영에 대해 회의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와중에도 즐거웠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성당 생각뿐이었다. 평일에는 퇴근 후에도 늦은 밤까지 엑셀을 만지며 일했지만 그것이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늘 첫영성체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즐겁게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지난 5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며 느꼈던 행복함을 새로운 선생님들도 그대로 가졌으면 했다. 그것이 원동력이 되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롭게 구성된 선생님, 새로운 아이들. 긴장도 됐지만 어쩐지 설레는 시작이었다. 주일학교 교사가 처음인 선생님들도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어느새 아이들과 친해져 각자 자신이 맡은 반 아이들과 잔뜩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는 일과가 끝나고 회의실에 모이면 서로 자신의 반 친구들 이야기를 꽃피웠다. 오늘 누가 이런 말을 했는데 너무 귀여웠다며, 어떤 친구가 웃는 모습이 사랑스럽다며. 그러고는 다들 지치지도 않는지 다음 수업을 열심히 준비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재미있어 할지 고민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힘이 났다.


어느새 나는 선생님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스스로가 놀라웠다. 사실 이전까지는 동료 교사보다도 아이들과의 시간이 더 중요했고, 아이들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서라면 선생님들이 조금 더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봉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이들 때문에 선생님들이 힘들지는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교사들의 표정을 살피고, 점심 식사를 거르거나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눈여겨봤다. 그건 주일학교의 교감이기 때문에 느끼는 책임감이기도 했지만, 선생님들을 향한 사랑이기도 했다. 물론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멈춘 건 아니지만 이전처럼 무리하게 아이들을 돌보느라 선생님이 과하게 소모되는 일은 막고 싶었다. 5년 간의 교사 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지치면 아이들에게도 온전한 사랑이 갈 수 없다.






첫영성체 주일학교와 초등부 주일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프로젝트의 지속성에 있다. 첫영성체 주일학교는 말 그대로 아이들이 첫영성체를 받으면 한 해의 목표가 끝난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커리큘럼 안에서 나가야 하는 진도 범위가 정해져 있다. 초등부에서 가끔 과자 파티나 야외 수업을 하며 놀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우리는 매주 바쁘게 계획대로 움직여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주일학교를 이끌고 있다는 책임감과 계획에서 어긋나면 안 된다는 강박이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선생님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감정이었다. 주일학교의 시작을 내 손으로 일궈냈다는 생각이 그 시작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잘 되길 바라며 한땀 한땀 열심히 만든 주일학교다. 그렇기에 더 소중했고, 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 애정을 품었다. 그렇게 되자 어느 순간부터 주일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내 손길이 닿아야 직성이 풀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있는 동안은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모두 행복해야만 한다. 그래야 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생겼다. 나의 쓸모가 이곳에서 생겨나는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 행사인 첫영성체 예식을 앞두고서는 너무 예민해지는 바람에 몸이 아프기도 했다. 아픈 와중에도 나는 끊임없이 성당 일을 생각했다. 멈출 수 없는 고장 난 열차처럼.


"쌤, 쉬엄쉬엄 해요. 다 사람 사는 일인데."


제동을 걸어준 건 교무 역할을 맡고 있는 선생님이었다. 교감의 대리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교무 선생님은 할 일이 없을 때가 많았다.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혼자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늘 행동에 여유가 있었다. 아이들을 대할 때에도 그랬다. 아이가 잘못하더라도, 그는 모든 것을 품을 것만 같은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기다렸다. 나는 그의 여유로움이 좋았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걱정 마. 쌤 없어도 다 잘 돌아가요."


그 말에 힘이 잔뜩 들어갔던 몸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그제야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손에 쥐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교무 선생님의 말 한 마디로 인해 내가 변해갔다. 완벽해야 하고 잘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차츰 '부족해도 괜찮아'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강박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조금씩 움켜잡고 있던 것들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눈앞의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잊고 있었다. '부족한 건 하느님께서 다 채워 주실 거야.'라는 선배 선생님의 말씀을. 다 같이 하는 봉사임에도 내가 없으면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선생님들을 아껴준다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모두 하나가 되었다. 수고했다고 서로를 토닥이면서, 그들에게 완전히 의지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어쩌면 나의 이런 모습 때문에 더욱 부담스러웠을 선생님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첫영성체 주일학교 교감으로서의 마지막 임무는, 내가 그들을 온전히 믿고 맡기는 것이었나 보다.


마지막 단체 사진 촬영이 끝났다. 아이들과 부모님들, 선생님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성당의 뒷마당을 천천히 둘러본다. 저마다 꽃다발을 들고 서로 축하한다. 내 손을 거치지 않아도 모두가 충분히 행복하다. 두 눈으로 그걸 보고서야 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부족한 교감이었다. 그럼에도 주일학교는 성공적으로 1년을 마무리했다. 그건 나 혼자서 만든 게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잘 해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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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를 마치며, 나는 오랜 숨을 내쉰 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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