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성당이 뭐길래.
제주도에서 겪게 된 사고는 아주 비극적이었다. 운전이 미숙한데도 스쿠터 여행을 고집한 탓이었다. 나는 구급차에 실려가면서도, 처음 겪는 고통에 몇 번이나 실신 하면서도,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수술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면서도 끊임 없이 생각했다. '이 소식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하지?'
주일학교에 내 상황을 알리는 것이 걱정 됐다. 호기롭게 쉬고 오겠다며 '나 찾지 마!'라는 농담과 함께 떠나온 여행이었다. 갑자기 사고 소식을 전하면 모두 놀랄 것이 뻔한데.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주일학교의 모든 행사가 끝난 직후에 사고가 나서 다행이라는 지독한 생각도 했다.
사정을 듣게 된 주일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이 병문안을 왔다. 저마다 내 처참한 꼴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병실 침대에 누워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철 없이 웃으며 농담하는 것뿐이었다.
"이참에 푹 쉬는 거죠, 뭐! 오랜만에 한가해서 좋네요."
어떤 선생님은 실제로 내가 이렇게 된 것이 어쩌면 '하느님의 뜻'일지 모른다고 했다.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달리는 나를 말리다 말리다 여기까지 온 게 아니냐며.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푹 쉬고 회복에만 집중 하라고 했다. 그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건 내가 제일 못하는 것이었다.
성당에 가지 않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6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미사. 일요일 낮 12시가 되면 울리던 종소리. 아이들의 웃음 소리. 교리가 끝나면 기진맥진한 채 모여 얼굴만은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했던 선생님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눈을 뜨면 병실의 하얀 천장이 보였고, 그 아래 온몸에 붕대가 칭칭 감긴 내가 있었다. 언제쯤 나갈 수 있을지 가늠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나는 주일학교에 돌아갈 날만 기다렸다. 그놈의 성당이 대체 뭐길래.
고맙게도 동료 선생님들은 이따금 병실에 찾아와 주일학교 소식을 전해 주었다. 사진까지 보여주며 내가 꼭 그 자리에 있었던것만 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풍성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성탄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첫영성체 예식을 마친 아이들도 그들만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러 동화와 성경 내용을 섞어 만든 재미있는 연극이었다. 백설공주와 왕자, 인어공주, 마리아와 천사, 동방박사들 까지. 역할을 정하기 위해 치열한 가위바위보가 오갔다고 한다. 가장 재밌었던 건 말수가 없던 조용한 남자아이가 인어공주를 하겠다며 번쩍 손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시끌시끌한 면회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들이 돌아가면,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습기 가득했던 병실의 공기가 서서히 식어 차가워질때 쯤이면 외로움에 눈물이 났다.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성탄제만큼은 보고 싶은데, 외출해서 성당에 갈 수 있을만큼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서러워서 어떤 하루는 커튼을 치고 하루종일 숨죽여 울었다.
성탄제가 2주 정도 남았을 무렵, 재활 치료가 시작되면서 마음 속에 작은 희망이 피어났다. 처음엔 치료실까지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지만, 일주일 정도 운동을 하고 나니 목발만으로도 오고 갈 수 있었다. 자신감이 생기자 나는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정이 타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내겐 맞지 않았다. 재활 치료를 열심히 하면 적어도 성탄제는 보러 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한 무대를 보고 박수쳐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나를 움직였다.
물론 치료는 쉽지 않았다. 치료실에 가기 전엔 온 몸에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의 치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병실에 돌아올 힘마저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운동이 끝나고 나면 옆에 있는 병원 내 성당에 들어가서 땀을 식혔다. 그리고 기도했다. 제발 성탄제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주치의 선생님께 외출 허락을 받고, 기대하던 성탄제 당일이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목발을 짚고 나섰다. 오랜만에 본 명동 성당은 반짝이는 조명에 둘러싸여 있었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나를 알아본 아이들이 달려와 인사했다. 한쪽에 목발을 짚고, 다른 팔도 깁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아줄 수는 없었지만 표정으로 한껏 반가움을 표했다. 학부모님들도 나를 발견하고는 경악하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시기에, 많은 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멋쩍게 웃어 보였다.
드디어 성탄제 시작, 모든 조명이 꺼지고 무대 위 한쪽에 작은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아이들은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연극을 시작했다. 한 선생님이 무대 뒤에서 갈색 옷을 입고 양 팔을 벌린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뭘 하는건지 궁금했는데 선악과 나무란다. 배를 움켜잡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웃어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온 몸의 아픔이 씻겨내려가는 듯 했다.
이어서 모세 역할을 맡은 아이가 지팡이를 치켜들자, 뒤에서 파도 모양의 도화지를 들고 있던 아이들이 양쪽으로 갈라섰다. 바다가 열리더니 그 가운데에 인어공주 옷을 입은 남자 아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옆으로 누워 꼬리를 흔드는 아이를 보고 박장대소하며 환호를 질렀다. 그동안 보아왔던 모습이랑은 영 딴판이었다. 저런 끼가 있었을 줄이야. 나는 무대 위 아이들의 모습을 하나 하나 눈에 담았다. 정말로,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공연까지 모두 끝나고, 커튼이 닫히며 성탄제가 마무리 되었다. 나는 행복한 숨을 내쉬며 끝까지 박수를 쳤다. 눈물이 차올랐다. 이것을 보기 위해 다리가 부서지도록 열심히 치료했고, 결국 해냈다. 오늘의 이 광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아이들이 돋보이도록 준비한 선생님들의 수고가 대단했다. 그전까지는 나 역시도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뛰어다니거나, 아이들이 순서에 맞게 무대에 오를 수 있게 정신 없이 상황을 정리하곤 했다. 선생님들에게 성탄제 준비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나도 거기에 속하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씁쓸했다. 나 없이도 잘 흘러간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느껴지면서도,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나 관객으로서 바라보니 이들이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준비했는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 역할도 없었기에 그들의 연극을 끝까지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조용한줄만 알았던 아이가 끼 많은 스타라는 걸 알게 됐다. 그게 바로 내 역할이었다. 무대 뒤에서 누군가 땀 흘리고 있다면 무대 아래에서 그들을 지켜볼 관객도 필요했다. 이제야 알겠다. 내게 주어진 '쉼'의 시간은 단순히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다는 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가 있던 자리를 지켜보는 일이다.
도대체 그놈의 성당이 뭐길래.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려 더 이상 멈추는 방법도 몰랐던 내가 이제 진정한 '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성당은 그런 곳이다. 인생의 단계마다 중요한 깨달음을 주는 곳. 주일학교가 아니었다면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해보지도, 쉴새 없이 달려보지도, 달리다가 잠시 쉬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병문안 왔던 동료 교사의 말처럼 나를 쉬게 하기 위한 '하느님의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나는 다리를 절고 더 이상 뛰어다니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먼 곳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교사가 될 것이다. 폭주하지 않고 가끔씩 쉬어가는 교사가 되어 갈 것이다.
나는 그 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