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은 밥 먹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다.

by Dily딜리

집에서 명동 성당까지 걸리는 시간은 지하철로 1시간, 버스로 1시간 30분이다. 지하철을 타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음에도 나는 버스 타기를 좋아한다. 버스가 한강을 건널 때면 자글자글한 물결과 표면에 반사되는 햇빛이 창문을 통해 가득 들어오는데, 반짝이는 아이들의 웃음이 그 위로 겹쳐 보이곤 했다.


'오늘은 또 어떤 농담으로 아이들을 웃겨줄까?'

'수업 일찍 끝내고 아이스크림 사줘야지.'


성당에 가는 길은 내내 행복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가는 길이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1시간 30분의 여정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아닌 행복의 시간을 늘리는 일이었다. 주일학교 교사로 지내는 동안 왕복 3시간의 이동 시간은 내게 꼭 필요한 루틴이었다. 그 시간 덕분에 또다시 일주일을 살아갈 힘을 얻었으니까.






4년 만에 명동에 가는 버스를 탔다. 창피하게도 1시간 30분 동안 버스 안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남몰래 하품하는 척 눈물을 닦다가 차라리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다시 불러준 것에 감사하기도, 그토록 기다렸는데 왜 이제야 날 불렀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옛날의 그 기억이 떠올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가도, 마지막 미사가 떠올라 눈물이 났다.


그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달려와 안긴 아이는 주일학교가 다시 생긴다는 소식을 알고 있을까? 오랜만에 날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기쁠까? 옛날과 다르게 아이들이랑 못 어울리면 어쩌지?


날 다시 받아줄까?

내가 필요할까?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답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도착하고 보니 늘 내리던 버스정류장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그걸 알자 더욱 겁이 났다. 너무 오랫동안 명동을 떠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류장처럼 명동성당도 내가 알던 것과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사실 그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느낌은 마치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성당이 눈앞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입이 바짝 말라갔다. 음료수를 사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마시면서 후. 숨을 내쉬며 기대를 내려놓으려고 노력했다. 혹시 최종 면접에 떨어지더라도 실망하지 않기 위해.


주일학교가 부활한다고 해서, 내가 경험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다시 교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새롭게 시작하는 주일학교이니 오히려 아무 연고도 없는 새 선생님을 원할 수도 있다.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날 전화를 받은 순간 내가 겨울을 끝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에 왔다는 사실이었다. 성당이 불렀고, 난 두 발로 걸어 돌아왔다. 이다음 단계는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떨리는 가슴을 붙잡으려고 애썼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성당 앞으로 쭉 뻗은 계단을 지나쳐 엘리베이터가 있는 상가로 돌아갔다. 저 많은 계단을 걸어 올라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무릎이 불편한 사람이 되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을 헉헉대는 저질 체력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 나는 완전히 포기할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온 건 내 욕심이라는 걸, 옛날만큼 몸을 불사를 수 없다는 걸 체감하고서야 미련을 버릴 수 있을 테니까.


"어?"


부정적인 감정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눈앞에는 나의 첫사랑, 첫 제자들 중 한 친구가 옛날의 그 얼굴로 서 있었다. 나와 똑같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벌리고.


"쌤!"

"가브리엘라!" (그녀의 세례명. 실제로는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사람이 지나다니든 말든 그 자리에서 부둥켜안고 법석을 떨었다. 졸업시킨 뒤로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던, 잘 지내는지 안부도 알 수 없던 친구였다. 보고 싶어도 연락처를 몰라 가끔 사진만 꺼내 그리워하다 결국 기억 저편으로 잊힌 친구였다. 신기하게도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그녀의 이름과, 세례명과, 말투나 작은 습관, 심지어는 아버님 얼굴까지도 생생히 떠올랐다.


머릿속에 갑자기 환한 빛 한줄기가 새어 들어오는 듯했다. 나와 그녀는 마치 오랜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를 끌어안고 두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눴다. 어릴 때 얼굴이 그대로인데 벌써 대학생이란다. 궁금한 게 산더미인데 너무 놀라서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그녀가 내 앞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기뻤다.


주일학교가 없어져도 나와는 달리 여전히 성당에 다니고 있는 그녀가 기특했다. 빛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그녀에게 고마웠다. 우리는 끝까지 서로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다 헤어졌다. 우연히 만난 첫사랑은 꼭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잡아주려고 필연적으로 나타난 천사 같았다. 그녀가 떠나자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서서히 사라졌다.






대성당의 초록색 지붕 뒤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과 분주한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는 사람들. 어수선하고 시끌벅쩍한 가운데 뒷마당에서 차분한 표정으로 눈 감고 기도하는 신자들. 익숙한 소리와 공기가 주위에 머물렀다.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 명동은 내 기억 속의 그림처럼 여전히 따스하고 반짝였다.


성당 직원 자매님이 날 알아보고 인사해 주셨다. 자매님도 역시 앉은자리가 바뀐 것 말고는 머리 스타일 하나 변한 것 없이 그대로였다.


"어머! 선생님."

"안녕하세요, 자매님! 저.... 교사 지원서 내러 왔어요."

"주일학교 다시 하시는 거예요? 세상에. 너무 잘 됐다!"

"헤헤."


가슴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그래, 선생님은 주일학교가 딱이야. 잘 왔어요.' 자매님은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 자격이 있을지 고민하던 내게 너무도 필요한 말이었다. 지원서를 제출한 뒤 집에 가려고 할 때, 내게 전화했던 동료 선생님께서 온 김에 신부님께 인사나 드리러 가자고 제안했다. 마침 신부님은 성당 앞마당에서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계셨다. 신부님의 시선이 여기로 닿자, 동료 선생님은 '신부님, 말씀드렸던 그 친구예요.'라고 나를 소개했다. 신부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정중히 인사하셨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내내 언 땅이 녹고 봄 향기가 퍼졌다.






이제 막 한 발짝 내디뎠을 뿐인데, 성당은 두 팔을 활짝 벌려 나를 환영해 주었다.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풀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의문에 답해주었다. 돌아오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성당은 늘 내게 필요한 답을 주었다. 주일학교는 늘 내게 기쁨을 주었다. 그건 내가 주일학교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자체만으로 내게 큰 선물이 된다.


성당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부자로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봉사는 오직 내가 가진 것들을 소모하기만 하는 일이다. 나의 시간과 노력, 체력을 대가 없이 쏟아붓는 일이다. 받는 것 없이 주기만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얻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내 일부를 나누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나눠줄수록 더 크게 돌아온다. 신기하게도. 봉사하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안다. 그 돌아오는 사랑이 결국 나를 먹여 살려준다는 것도.


그래서 주일학교에 돌아왔다. 다시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4년 간의 겨울을 끝내고 싶어서.


이제 곧 쟁기질을 하고 새로운 씨앗을 심을 것이다.

그동안 메말랐던 땅에 이슬비를 촉촉이 발라주고 새싹을 틔울 것이다. 옛날처럼.

언젠가 나도 그림자 속에 파묻힌 친구에게 천사처럼 나타나주어야 하니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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