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교 1등이었는데, 샤갈을 몰랐다

by TamArt

고등학교 친구가 말했다. "샤갈, 우리 교과서에 나왔잖아."

기억이 없었다. 심지어 미술 과목 전교 1등을 했던 내가. 그제야 깨달았다. 성적은 지식을 담지만, 감동은 담지 못한다는 것을. 몸으로 겪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껴야 비로소 기억이 된다. 그게 삶에도 남는다.

대학생 때부터 미술관을 찾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이다. 예술이 주는 카타르시스—내가 아는 세계를 시공간 너머로 훌쩍 데려가는 그 감각. 그날도 나는 그것을 기대하며 샤갈 앞에 섰다.


샤갈의 작품 앞에서는 자꾸 고개가 갸웃해진다.

띠용? 이게 뭘 말하는 거지?

당나귀가 하늘을 날고, 연인이 공중에 떠 있고, 꽃과 천사와 에펠탑이 한 화면 안에 뒤섞인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러시아 비테브스크의 골목을 뛰어놀다,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한복판을 살아낸 사람. 그는 그 모든 상처와 사랑을 현실이 아닌 꿈의 언어로 풀어냈다. 아내 벨라의 얼굴, 고향의 냄새, 파리의 빛—그것들이 뒤섞여 캔버스 위를 부유한다.

처음엔 낯설다. 그런데 오래 보면 이상하게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천장을 올려다본 적이 있는가.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화 앞에서 한참 고개를 젖히고 서 있었다. 지름 20미터, 면적 240제곱미터. 샤갈이 1964년에 완성한 원형 벽화의 일부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가 오래된 친구에게 부탁했고, 샤갈은 모차르트와 바그너, 열네 명의 위대한 작곡가들을 천장 위에 펼쳐놓았다.


누가 천장까지 신경을 쓸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천장이 가장 아름다웠다.극사실주의가 아니다. 번지는 색감, 경계 없이 흘러내리는 청과 자와 황. 인물과 사물이 선명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에너지처럼 아우라를 내뿜으며 화면 위를 떠다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열화상 카메라로 세상을 찍으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딱 멈춰있지 않은 인체의 에너지. 어쩌면 이게 더 사실주의적인 그림일지도 모른다고. 샤갈은 이 작품을 "꽃다발 속의 거울"이라 불렀다. 천장 중앙, 샹들리에 아래로 천사와 연인과 동물들이 자유롭게 떠다닌다. 꿈의 기억 같다. 그 말이 가장 정확했다.


검은 밤 속, 둘만의 세계.

〈거울 뒤에서: 파리의 밤〉 앞에서는 발이 멈췄다.

화면 대부분이 검다. 그 어둠 속에 청, 홍, 황—몇 가지 색만 살아있다. 연인, 새, 당나귀, 꽃잎. 그것들에게만 색이 허락되어 있다. 파리에 가본 적 없는 사람조차 그 밤의 공기를 느낄 것 같았다. 아내 벨라와의 사랑을 평생 그림으로 고백한 사람답게—이 장면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둘만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걷던 어떤 밤이 떠올랐다. 나란히 걸었던 그 거리. 그것도 이런 색이었을 것 같았다.


음악이 그림이 된다면.

〈거울 뒤에서: 오페라〉는 시끄럽다.

소리 없이 시끄럽다. 춤추는 사람들, 음악에 취한 얼굴들, 강렬한 색채가 화면 가득 진동한다. 어릴 때 음악을 듣고 감상을 스케치북에 옮겨 그리던 수업이 떠올랐다. 샤갈이 들었던 음악은 아마도 바그너나 모차르트—정열적이고 화음이 풍부한, 웅장한 멜로디였을 것이다. 그 선율이 그대로 화면 위에 쏟아진 것 같다.

나도 언젠가 파리의 거리를 저렇게 거닐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음악에 취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추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인류사에서 꽤 획기적인 일이었다.

보이는 대로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라, 느낀 대로 그리는 것. 샤갈은 그 방식으로 전쟁의 시대를 살아냈다. 고향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으면서도—꿈과 사랑과 희망을 색채로 남겼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내가 아는 세계가 살짝 흔들린다.

그리고 그게 싫지 않다.


— 마르크 샤갈 전시를 다녀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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