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주 블로크
그의 작품은 거창하지 않았다. 캔버스 가득 채운 유화도, 조명을 정성스럽게 받은 조각도 아니었다. 그냥 검은 선 몇 개. 작은 사람 하나. 그리고 빨간 포인트.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아프지도 않았고, 누군가와 크게 다툰 것도 아니었다. 그냥—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할 생각에 답답했다. "또 오늘이구나." 하는 그 무게.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심지어 쉬는 날에도 어딘가 쫓기는 기분. 그러다 세르주 블로크를 만났다.
세르주 블로크(Serge Bloch).
1956년, 프랑스 알자스에서 태어났다.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뉴요커》와 《파리 매치》에서 활약한 일러스트레이터. 경계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림책, 신문 만화, 애니메이션, 조형물—어디서든 그의 선은 멈추지 않는다.
근데 그 선이 단출하다. 화려하지 않다. 검은 펜 한 자루로 슥슥 그은 사람 하나, 그리고 빨간색 포인트 하나. 처음 보면 "이게 다야?" 싶다. 그런데 오래 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그 단순한 사람이, 나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이런 말을 남긴 적 있다.
"왜 유머인가? 유머는 존엄의 선언이며, 인간이 자신에게 닥친 일을 초월한다는 증거다."
처음 읽었을 땐 그냥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알게 된다. 그림 속 사람들은 항상 어딘가 힘들다. 무거운 걸 들고 있거나, 뭔가에 쫓기거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거나. 근데 쓰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에—살짝 윙크한다. 그게 유머라는 거였다.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 짓눌리지 않겠다는 조용한 고집. 선 한 줄로 그어낸 존엄.
이번 전시에서 그가 표현하려는 주제들이 있다. 자유, 웃음, 용기, 협력. 어디서든 들어본 무거운 단어들. 근데 그의 손을 거치면 이상하게—가벼워진다.
블로크의 용기는 영웅의 것이 아니다. 불의에 맞서 주먹을 쥐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오늘 커피 내가 쏠게" 하고 말없이 계산대로 걸어가는 사람의 것이다. 그의 협력은 거창한 목표를 향한 조직적 움직임이 아니다. 커피숍 창가에서 각자 노트북을 켜놓고,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같이 웃는 것이다. 그에게 용기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다. 그래서 진짜다.
나는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그동안 용기를 너무 크게만 그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협력을 너무 거창하게만 상상했던 건 아닐까.
그는 우리에게 장난스럽게 묻는다.
"지금 무엇에 몰두하고 있나요? 커피 한 잔인가요, 아직 오지 않은 걱정인가요?"
"언제 마지막으로 조용한 용기를 내봤나요? 엘리베이터에서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이웃에게 인사했던 그 날처럼요."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정말로—함께 걷고 있나요?"
쿡쿡 찌르듯 묻는다. 심각하지 않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 그 질문들이 따라온다.
요즘 힘들다는 생각 대신, 잠깐 멈추는 연습을 한다. 아주 작은 것들을 오래 바라보는 것. 오늘 마신 커피의 온도를 기억해두는 것.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는 것.
선 하나 긋는 것처럼. 거창하지 않게.
블로크의 그림 속 사람들이 늘 그러하듯—넘어지더라도, 일단 윙크 한 번 하고. 그렇게 아주 작은 웃음이 하나 피어난다. 그리고 그게 하루를 조금 다르게 만든다.
예술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선 하나의 용기처럼, 늘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
— 세르주 블로크, 《작은 선의 위대한 여행》을 다녀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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