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안에 앉아 있었다, 몰랐을 뿐

by TamArt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오래 앉아 있게 되는 카페가 있다. 딱히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커피가 특별히 더 맛있는 것도 아니고, 자리가 더 넓은 것도 아닌데. 그런데 유독 이곳에 앉으면 뭔가 달랐다. 몸이 먼저 알아채는 그 감각 — 어깨가 내려앉고, 호흡이 길어지고,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부드러운 집중력이라고 해야 할까. 억지로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저절로 모이는 그런 집중. 원고를 쓸 때면 특히 그랬다.

스타벅스였다.


처음엔 공간 탓인 줄 알았다. 딥그린과 딥브라운이 켜켜이 쌓인 색감, 직선 하나 없는 우아한 곡선들, 그리고 작품만을 위해 설계된 듯한 조명. 그 조명 아래 걸린 그림들이 크고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시장이나 다름없었다.

큼직한 나뭇잎들, 원색의 열매들, 커피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빛.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그림 앞에 서면, 어디선가 들어보지 못한 새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프리카 원시림에서나 날 법한 곤충 소리, 바람 소리, 이름 모를 동물 소리까지. 몸은 분명 서울 한복판에 앉아 있는데, 마음은 정글 숲 어딘가를 지나고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편안했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매장마다 로컬 아티스트와 개별 계약을 맺고 벽화를 제작한다는 사실을. 커피콩이 자라는 열대 농장, 산지에서 한 잔의 커피가 되기까지의 여정 —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내도록 의뢰한다는 것을. 그러니까 그 벽화들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손으로 그려진, 작가의 이름이 숨어 있는 진짜 작품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 다시 그 그림 앞에 서니, 전혀 다르게 보였다. 생각해 보면, 인공적인 것들에 둘러싸인 채 하루를 보내는 우리가 대자연 앞에서 본능적으로 숨을 고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림 속 자연이 가짜인 걸 알면서도, 몸이 먼저 속아 넘어가는 것.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진짜처럼 쉬어지는 것.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미국의 스타벅스는 어떨까. 다른 나라의 스타벅스 벽 앞에 서면,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꽤 실망할 것 같다. 반대로, 이런 공간을 만들어온 스타벅스 코리아가 새삼 고마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 있다는 것도. 굳이 미술관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 보통날의 카페에도,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그림이 걸려 있다. 그 앞에 잠깐 멈추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조금 달라진다.


당신 곁에 있는 어떤 그림도, 풍경도 — 이미 작품이다.





아무도 짚어주지 않던 작가,

아무도 짚어주지 않던 그림,

작품하나로 하루가 달라지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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