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장소는 없었다

by TamArt


섬- 너의 정원, 최미숙

보랏빛과 푸른빛이 겹겹이 피어오르는 이 그림 앞에 서면 이상하게도, 숨이 조금 느려진다.

몽환적인 구형 꽃송이들은 현실의 식물이 아니다. 시선이 닿는 대로 부드럽게 형태를 바꾸는 — 생각의 덩어리들. 차가운 색조인데도 오래 바라볼수록 마음이 가라앉는 건, 이 공간 전체에 조용한 약속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상처도 들어오지 못한다."


그릇 안에 놓인 작은 흰 천막과 알 같은 구들. 바깥 세계와 단절된 보호막,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 작가는 이 작은 정원을 자신의 퀘렌시아로 그려 두었다.


퀘렌시아(Querencia). 투우장에서 지친 소가 잠시 숨을 고르던 자리. 화려한 경기장 한복판에서, 잠깐이라도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 작은 땅.


어떤 이의 퀘렌시아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었다. 바다도, 카페도, 고요한 숲길도 아닌 — 퇴근 후 땀이 식어가는 그 짧은 시간. 발레 바를 잡고 균형을 잡는 순간, 요가 매트 위에서 호흡을 고르는 순간, 헬스장에서 마지막 세트를 끝낸 직후. 온몸의 긴장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그 감각 — 사실 그것을 위해 운동을 해왔다.


요가를 배우면 수업의 맨 끝에 요가니드라(Yoga Nidra) 자세를 취한다. 매트 위에 반듯이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한참 동작을 이어온 몸이 그제야 완전히 내려앉는다. 긴장이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천천히 빠져나가고, 어느 순간 내가 어디 있는지조차 잊게 되는 그 몇 분. 하루 중 가장 편안하고 가장 평온한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1년 만에 다시 그룹 운동을 신청했다.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그 감각이 그리웠을 뿐이다. 수업이 끝나고 찬 공기가 달아오른 볼을 식힐 때 — 몸은 지쳐 있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운 그 역설적인 상쾌함. 그게 퀘렌시아였다.

유유자적, 최미숙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감당하며 산다. 책임감, 마감, 관계, 기대 — 투우장의 소처럼 늘 경기 중이다. 그래서 제대로 쉬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쉰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어떤 사람의 퀘렌시아는 새벽 커피 한 잔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겐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는 욕조 안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겐 — 땀을 흘리고 난 뒤 찾아오는 그 고요함일 수 있다.


형태는 달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당신에게 퀘렌시아는 어느 시간인가요. 어느 장소인가요. 아직 찾지 못했다면, 스스로 물어보는 건 어떨까. 하루 중 딱 한 번, 숨이 느려지는 순간이 언제인지를. 그 순간이 바로, 당신만의 초록 그릇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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