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하늘은 운치 있다. 영험한 산신령이 구름 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오전이었다. 서울대공원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꼽는다면 단연 밝은 햇볕이 구름 사이로 스며들며 빛나는 하늘과 산맥이었다.
코끼리 열차, 동물원 관람권, 리프트까지 패키지로 구매했다. 동물원 전체를 구경하는 데 3시간 반이 걸렸고, 만 보를 걸으며 지친 다리와 고픈 배를 달래준 것은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오른편 우거진 숲 사이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은 숲 향기 그 자체였다.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나무 향기를 맡기 위해 일부러 몇 번 심호흡을 했다. 무엇보다 리프트가 생각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 스릴감도 제법 있었다. 하늘에 대롱대롱 떠 있는 기분이었다.
멀리 보이는 구름 속 산맥이 장관이어서 주머니 속 휴대폰을 자꾸 꺼내고 싶었지만 옆에서 말렸다. 폰을 떨어뜨리면 줍지 못하니 눈에 최대한 담자고. 그래서 마음속 카메라에 담으려 애썼다.
표범이 어슬렁거리며 왕복으로 돌아다니다 잠시 멈춰 서서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에서 맹수의 위엄을 느꼈다. 아시아코끼리는 예상과 달랐다. 짙은 회색 몸집에 육중한 몸을 자랑할 거라 예상했는데 적당히(?) 크고 귀여웠다. 기분이 좋았는지 큰 두 귀를 흔들고 코를 흔들며 춤추듯 돌아다녔다. 하루에 100kg을 먹는다니, 초식동물의 거대한 몸집에는 이유가 있었다.
하이에나는 예상외로 위협적인 비주얼이었다. 평생 싸울 운명이라는 설명처럼 통통 뛰며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사방을 경계하는 듯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발을 튀기면서 돌아다니는 모습이 불안해 보여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아시아 불곰은 성인 남성의 2~3배는 되어 보이는 몸집으로 꿀통을 핥아먹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저 큰 곰이 꿀에 그토록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꿀이 주는 달콤한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말레이곰은 푸우처럼 너무 작고 귀여워서 '너도 곰이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자는 잠만 잤고, 호랑이는 전 세계에 3천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설명에 놀랐다. 흔한 줄 알았던 호랑이가 멸종 위기라니, 충격적이었다. 늑대는 생각보다 카리스마가 없어서 그냥 '개'였다.
작은 동물들의 사랑스러운 일상
프레리독은 앞발 두 개로 흙을 쌓아 올리고 주둥이로 다지며, 뒷발로 흙을 밀어 올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다람쥣과라고 하는데 정말 사랑스러웠다.
홍학은 어떻게 한 다리로 잠을 잘 수 있을까 신기했다. 하얀 홍학은 남유럽, 하얀색과 붉은색이 섞인 칠레 홍학은 남아메리카, 붉은색 홍학은 미국과 멕시코에 산다고 했다. 국가마다 다른 색의 홍학이 사는 것이 흥미로웠다. 홍학의 영어인 플라밍고의 뜻은 '불꽃'이라고 한다.
사찰 원숭이는 스리랑카가 서식지라고 하는데 고급스럽고 깔끔하게 예뻤다. 왜 다른 원숭이와 다르게 느껴지는지 찾아보니, 털이 가지런히 눕는 스타일에 팔다리가 적당히 길고 날렵해서 단정한 비율이라고 했다. 불교와 힌두교 문화권에서 신성시되어 온 동물이라 그런지 더 특별해 보였다.
삵은 고양잇과인데 생각보다 귀여웠다. 하나도 맹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반도의 토종 야생 고양잇과로 야행성이라고 한다.
레서판다는 꼬리만 슬쩍 봤는데 몸에서 붉은색이 굉장히 진했다. 염색했나 싶을 정도였다. 루비, 리안, 세이 세 마리가 있다고 하는데 한 마리가 돌아다니다 제 집으로 들어가 찰나의 순간만 볼 수 있었다.
기린은 10분씩 짧게 하루에 2시간밖에 안 잔다고 했다.
엘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양류로 수컷이 최대 900kg 이상 나간다고 했다. 세이블 앤털로프는 곡선형 뿔에 수컷의 몸집과 목선이 말처럼 우아했다.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우아함과 전투력을 상징하는 대표 종이라고 한다. 토쿠원숭이는 일반적이었고, 검은 꼬리 원숭이는 꼬리가 검어서 그렇구나 싶었다.
흐린 가을 하늘 아래서 만난 야생동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