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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찾기는 성공했는데, 왜 로봇은 울고 있을까

by 어썸프로

추석 연휴에 비가 올 거라 하더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할 때쯤 이보다 더 내릴 순 없을 것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연휴 오전 시간인데도 주차장에 차가 꽉 들어차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히 놀러 다니는구나 다시금 놀랐다. 현대미술관 외관과 내관 자체가 조형이 우아하고 웅장해서 건물 자체로 미술 작품이었다. 지금부터 현대미술관에서 득템 한 듯한 느낌으로 작품 감상의 희열을 느끼게 해 준 작품들을 순서대로 소개해보겠다.


마음을 사로잡은 여섯 가지 보물들

유랑의 발맞춤: 게임, 글, 그림이 만난 세계

상희 작가의 <유랑의 발맞춤>은 게임음악과 글 그리고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게임할 수 있도록 관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만든 점에 찬사를 보낸다. 게임 참여자가 스스로 세상을 걸으면서 여행하는 콘셉트이었다. <유랑의 발맞춤>이라는 이름도 너무 잘 지었다. 신기했던 것은 관객의 의도에 따라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친구와 동행하기를 원할 수도, 혼자 걷기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각종 아이템도 어느 순간에 획득하는지 달랐다. 이런 디테일들이 너무 신기했다. 관객은 헤드셋을 끼고 발걸음 속도를 조절해 가면서 스토리 생성을 하는 주인공이 된다.

게임하는 듯하면서도 책을 읽는 것 같았다.


날개 든 가방: 소묘 그림과 정물의 만남

10장 남짓한 소묘 그림과 글, 그 뒤에 진짜 정물이 있는 구성이 정말 신기했다. 만화를 읽듯이 스토리를 호기심 있게 따라가다 맨 끝에 마주한 것은 그림 속에 있던 <날개 든 가방>이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인간의 상상력은 바로 코앞에 현실화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해 주었다. 게다가 그 만화 같은 그림과 글은 오로지 연필과 종이로만 구현했기에, 예술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뉴 락: 우주 행성 조각들과 같은 블랙홀 모형

장한나 작가의 뉴 락 작품은 천장에 돌들을 매달아 두었다. 중앙에는 블랙홀같이 돌이 소용돌이치며 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행성 조각들을 대롱대롱 매달아 놓은 듯한 모습은 꽤나 웅장하고 멋있었다. 조형물 중에는 제일 흥미가 가는 전시였다.

작가의 의도를 인터뷰한 영상을 보니 <뉴 락>이라고 해서 진짜 돌이 아니었다. 전국의 해안에서 수집한 500여 개의 뉴 락을 설치한 것인데, 해변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해풍과 태양열에 의해 변형되어 암석화되는 과정을 거친 것들이었다. 인간의 욕망과 자본에 의해 생산된 인공물이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된 현상에 주목했다고 했다. 작가의 의도가 명확하고 전시도 직관적이어서 꽤나 마음에 들었다.

작가가 주워온 '뉴 락'들은 소묘로도 표현해두었다.

스턴바우 No 23: 화려하고 예쁜 크리스털 조형물

크리스털을 어느 장식품처럼 매달아 두었다. 예뻤다. 어느 큰 장신구처럼 보였다. 여자의 귀걸이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조형물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환희: 따뜻한 파스텔 톤의 기쁨

최욱경작가의 <환희>는 제목과 어울리게 꽃의 환영으로 보이는 둥글둥글한 모양의 잎사귀들이 마구 흩어져 있는 작품이었다. 원색에 흰색을 좀 섞은 듯 파스텔 톤처럼 백 톤이 따뜻했다. 이 사람은 환희가 따뜻한 색이구나. 나라면 환희는 좀 더 짙은 형광색을 띠었을 것이다. 내게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은 이런 파스텔 톤의 원색일 것이고, <환희>라 하면 일 년에 몇 번 느낄까 말까 한 기쁨이기에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밝은 형광색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의 느낌이 아닐까.


자연 모티브: 식물의 발아와 세포 생성

생태계의 시작을 알려주는 모습이 신기했다. 1관은 대부분 자연을 모티브로 했다. 작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자연인 듯했다. 작품을 만들려면 작가는 끊임없이 생태계와 세상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는 로봇처럼 슬픈 현대미술

현대미술은 필자에게 현대무용과 비슷했다. 발레는 대대로 내려온 전통에 의해 진행되기에, 작품의 내용을 알면서 어느 무용단이 추는지에 따라 무대장식과 표현 디테일이 달라지는 맛에 즐기는 장르였다. 한때 현대무용에도 취미를 붙이고 싶어서 공연에 대여섯 번은 가본 것 같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그 어떤 공연도 내게 감흥을 주진 못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파악하기가 도무지 쉽지 않았다.


현대미술도 마찬가지였다. 혹자는 정물화처럼 사물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것을 넘어 사람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시작한 때부터 창조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기에 현대미술을 다시 바라보고 싶어서 다소 긴장되는 마음으로 미술관을 찾았다.


그런데 역시나. 물론 가이드북이나 도슨트를 활용한다면 작품 감상의 깊이가 달라지겠지만, 아무 설명 없이 들어가도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여느 전시회와는 달랐다. 일반 전시회는 벽에 설명이 있어 어떤 콘셉트로 관객들을 인도할 건지 가이드가 잘 되어 있으며, 그림 밑에는 제목과 간단한 설명을 읽기만 해도 충분히 즐거운 감상이 가능하다. 현대미술 작품은 그런 배려가 없었다. 제목이 없어 <무제>라는 말만 있거나, 한 문장이 무려 2~3줄에 걸친 난해한 설명들로 인해 오히려 작품과 더 멀어지게 했다.

울고 있는 듯한 로봇

미술관 정문 앞에는 거대한 로봇이 있었다. 마치 절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로봇이었다.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이따금 입을 다물었다 벌릴 때마다 딱딱 소리를 내서 스님이 목탁 두드리면서 법구경을 읊는 소리 같았다. 비 오는 날 미술관 앞에서 로봇이 그런 소리를 내고 있으니 왠지 슬프기 그지없었다. K-pop과 같은 음악을 틀어줬다면 어땠을까. 그래야 필자를 비롯해 10대, 20대도 현대미술이 친근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완의 이해, 그래도 의미 있던 한 걸음

현대미술관 자체가 굉장히 컸던 덕에 1, 2 전시관을 보고 3, 4 전시관을 본 뒤 마지막 5, 6 전시관까지 관람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을 추렸다. 수십 점의 작품들 중에서 이해해보고 싶어서 작품 옆 설명을 읽다가 작품도 어려운데 언어도 쉽게 풀어놓지 않아서 더 멀어진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필자가 향후에 작품 활동을 할 때는 최대한 쉬운 말로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고 관객과 많은 상호작용하는 전시를 하리라. 다시금 다짐하게 했다. 열린 마음으로 방문했고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느낌이지만, 이해되지 못한 수많은 나머지 작품들에 대해선 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현대미술과 조금은 친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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