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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쁘고 슬기롭게 Sep 15. 2020

9라는 숫자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숫자 9,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수. 


십진법상으로 숫자 '10'을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완벽한 수 이기 때문에, 10에서 1이 모자란 9는 인간 세계에서 다다를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수로 여겨진다. 동양에서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역시 9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산스크리트어에서도 9는 '최상급'의 의미를 지니고, 히브리어에서는 불가사의한 힘, 그리스어에서는 완전함을 의미한다. 


위의 예시들로 미루어보아 9는 완성을 위한 최상의 단계이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라고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말처럼, 9라는 나이를 지녔던 그리고 현재 지니고 있는 나는 정말 완벽에 가까울 만큼 모든 준비를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을까?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사회는 나에게 모든 준비가 끝났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입식 교육으로 시키는 것만 하며 12년을 보낸 나에게 20살부터는 어른스럽게 스스로 선택하며 스스로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라고 한다. 정신없이 공부하고, 취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9년을 보내고 보니, 사회는 나에게 30살부터는 직업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스스로 만든 기준 안에서 가치관을 생성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9라는 숫자는 나에게 굉장히 큰 부담이자 압박이다. 






19세, 성인이 되기 직전의 나이. 

대한민국에서는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성인도 아닌 새로운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고3.

대한민국에서 고3으로 살아가는 것은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다. 


출처" 시사저널 기사


대한민국은 OCED 국가 중 자살률 1위로 잘 알려져 있다. 그중 청소년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보건복지부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실제 우리나라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는 8년째 ‘극단적 선택’이라고 한다. 2018년 자살로 세상을 떠난 청소년은 10만 명당 9.1명이었다. 안전사고와 암으로 사망한 청소년은 각각 10만 명당 4.6명, 2.9명인 것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수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압박'이 그 선택의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청소년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이 '극단적 선택'이라는 것을 미루어보아 그때 느꼈던 압박과 스트레스가 나만 느꼈던 것은 아니었음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고 3, 그 1년 동안은 '나 죽었소'하고 모두가 대학 입시만을 위해 달려간다. 한파가 찾아오는 매년 11월 둘째 주 목요일 시험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모두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참 열심이다. 실제로 고등학교에 재학 시절, 소위 말하는 엄마의 치맛바람 아래 매일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고도 새벽 2-3시까지 공부를 하고 학교에 오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19세에 앞으로 나의 인생이 달린 중대한 시험을 치르고 큰 결정을 하게 된다. 수많은 친구들과 비교하고 걱정하며, 19년 인생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수동적으로 다 같은 것을 배울 수밖에 없는 주입식 교육을 받으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특히 무엇을 잘하는지 앞으로 어떤 것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더 나아가 어떤 직업이 나에게 잘 맞을지 등등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충분히 고민을 해 볼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로,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결정해야 하니까. 


마치 이 1년을 제대로 살지 않고 그 순간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되면, 인생이 실패의 나락으로 빠질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다. 


그렇다면 19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난 19세에 했던 선택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되어있는 걸까?



29세, 완성에 가까워졌어야 하는 나이.

나를 선택해준 대학에서 내가 고른 전공의 공부를 하고, 취업을 하고, 정신없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덧 29세가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30살이란 나에게 너무 먼 이야기였고, 그쯤이면 많은 것을 성취하고도 남았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직업으로도 사회적 위치로도 배우자에 대해서도 모두 당연히 안정적인 상태여야만 할 것 같은 나이라고나 할까. 


세상이 많이 변했다. 30을 나이가 들었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아직 해보지 못한 경험도 수두룩하고,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사회가 요구하는 혹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자연스레 느껴지는 압박은 어쩔 수 없다. 



하나 둘 주변에서 또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승진을 하고, 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보며 가끔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혼자 도태된 삶을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작년부터 하나 둘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결혼 나이가 많이 늦어져 아직 싱글인 친구들이 훨씬 많지만 너무 늦지 않은 결혼을 꿈꿔왔던 나에게 주변 사람들의 결혼은 더욱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난 왜 지금 옆에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지 않은 걸까? 뭐가 부족한 걸까? 언젠간 내 배우자가 될 사람을 만나게 될 수 있을까?' 등 수많은 생각이 매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어느덧 직장에서 난 5년 차가 되었고, 20대 초중반과 달라진 게 많이 없는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새에 주니어에서 시니어의 연차로 점점 전환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 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새롭게 시도해 볼 것도 많이 남은 것 같은데,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있어야만 할 것 같다. '과연 이제 나는 누구의 지시나 교육 없이 주도적으로 팀원들을 이끌며 일을 할 수 있는 그릇이 되었을까? 과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맞을까?'라는 질문들이 계속해서 생각나지만, 5년이나 이 분야에서만 이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다른 걸 도전해볼 용기도 없다.


29세는 과도기적인 나이인 것 같다. 아직 어리다면 어리고, 이제는 진정한 어른이라면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애매한 나이. 오히려 30이 되면 부담감을 벗어버리고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아직 겪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위안을 삼고자 20대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브런치 시작을 꿈꾸며 이 글을 쓴다. 



지금도 여전히 찬란한 내 삶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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