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방콕에 내렸다

by SHUN

일단 방콕에 내렸다.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자 밤 11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고 나니 12시가 넘은 시각. 내가 예약한 HEYYYY BANGKOK은 걸어서 갈 수 없는 거리(17km)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했다. 구글맵 검색하니 이용 가능한 루트 두어 개가 뜬다. 첫 번째, 택시. 두 번째, 전철(+도보). 전철은 이제 막차 하나, 12:56만 남았다. 현재 시각 12:10. 돈을 좀 아껴보겠다고 40여분을 기다리는 건 멍청하다 판단돼 개찰구를 뒤로 한 채 택시를 잡았다.


숙소까지 미터기로 200바트가 조금 안 나왔다. 택시 아저씨는 공항세라며 50바트를 더 불렀다. 250바트. 생각보다 택시비가 조금 더 나왔네. 한 150바트쯤 나올 줄 알았는데.

허름한 상가들 사이에 은은한 조명이 빛나는 곳이 오늘 내가 묵을 숙소 HEYYYY BANGKOK(헤이 방콕)이다. 사진과 다르지 않은 외관의 분위기에 설레어 사진을 찍고 있으니 인포 직원이 나와 들어 오란다. 넵, 적당히 하겠습니닷.


방 안내를 해주는 직원 태도가 어쩐지 어리숙하다. 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나? 짐을 들어줄까 말까 쭈뼛거리고 있어 그냥 내가 두 손으로 번쩍 들고 올라갔다. 계단이 있어 힘이 약한 사람은 짐을 들고 올라가기 힘들겠다 싶었다.

내가 묵는 방은 2층의 도미토리였는데 방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 에어컨을 얼마나 가동해놨는지 방 안이 냉동고처럼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유리로 된 창과 문에는 김이 서려 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는 동안 냉동시킨 다음 어디로 팔아넘길 속셈은 아니겠지.

어리숙한 직원은 대낮에 안내하듯이 큰 목소리로 주의사항을 얘기해줬다. 직원이 나가고 나서야 뒤척이는 옆 침상을 보곤 방 안에 누가 있음 알았다. 잠 깨웠다면 미안해요. 근데 그거 내 목소리 아니었음요.


샤워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갔다. 어리숙한 직원은 돈을 세고 있었다. 돈 세는 것도 처음인지 셌던 것을 계속 다시 세는 것 같았다.

다시 살펴보니 1층은 카페와 바를 겸업하는 곳이었다. 메뉴판도 있길래 슬쩍 보았는데, 식사도 주문 가능하다. 물론 나는 너무 늦게 와서 못 시켜 먹었지만. 가능한 건 맥주와 콜라 정도. 당연히 맥주를 마셨다.

맥주병을 홀짝이고 있으니 고양이 한 마리가 달라붙는다. 아아, 곤란하다. 너무 귀엽잖아. 네 이름은 곤라니로 하자. 날 곤란하게 했으니까!

곤라니와 함께 삼십여 분간 노닥거렸다. 맥주도 이제 바닥을 보인다. 잘 시간이라는 뜻이다.


다시 2층으로 올라와 양치를 했다. 이대로 잠들기는 아쉬워 인증샷을 찍어야겠다 싶었다. 미니 삼각대로 휴대폰을 고정시킨 채 요리조리 포즈를 취했다. 뒤돌아보니 CCTV가 있다. 소름.

냉동고 같은 방 안으로 후다닥 들어왔다. 이불속으로 들어가니 한결 낫다. 그리고 나는 잠들었다.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무의식 중의 조식을 먹어야겠다는 강렬한 욕망이 내 눈꺼풀을 들어 올린 듯하다.

그러나 조식은 정말 맛이 없었다. 식빵에서는 종이 뭉친 맛이 났고, 딸기 잼에선 설탕을 가지고 소태를 만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정도의 설탕 맛이 났다. 그쯤 되면 딸기잼이 아니라 차라리 설탕잼이다. 인스턴트 블랙커피는 검정 물감 맛이 났다. 물론 검정 물감을 먹어보진 않았다. 그나마 바나나는 맛있었다. 아무렴, 태국인 걸.

곤라니도 아침을 반겨줬다. 그리고 곤라니의 새끼로 추정되는 아기 고양이도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찌나 똥꼬 발랄한지, 콱 깨물어 주고 싶었다. 네 이름은 똥꼬로 하자.

곤라니나 똥꼬나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아니면 태국 고양이들은 다 그런 건지 만져도 별 거부반응 보이지 않는다. 지긋이 눈을 감고 그르렁 댄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녀석들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한다. 정말이지 모두를 곤란하게 만드는 녀석들이다.


아까 먹은 조식이 너무 맛이 없어 커피와 케이크를 따로 주문했다. 129바트(약 4,500원)로 그렇게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커피와 케이크는 제값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조식과 차이가 너무 심해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조식을 먹기 전에 주의라도 주면 좋겠다. <주의 : 조식이 매우 맛없음. 돈 주고 사 먹길 추천함.>


더 이상 숙소에서 할 게 없어진 나는 짐을 싸들고 체크아웃을 했다. 돌아가는 길은 전철을 타고 갈 생각이다. 숙소에서 역까진 걸어서 11분 정도. 더운 방콕 날씨 때문에 체감으론 22분 정도로 느껴진다. 그러나 역까지 오면 다 온 거다. 수완나품 공항까지 3 정거장이면 가니까. 운임은 25바트. 어제 탄 택시비가 250바트. 딱 10배. 그럼에도 어제 택시탄 것을 후회하지 않은 이유는, 역까지 걸어오는 길이 온통 배를 벌러덩 깐 죽은 바퀴벌레 밭이었기 때문이다. 한 여름에도 온몸을 서늘하게 만드는 길이었다. 밤늦게 도착했으면 어둠을 틈타 살아있는 바퀴벌레들이 기어 나왔겠지. 으, 생각만으로 소름 끼친다.



여행지 정보

헤이 방콕 HEYYYY BANGKOK

공항과 그렇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다. 잠깐 잠만 자고 다음날 아침 비행 편을 타려는 거라면, 공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숙소를 추천한다. 택시비는 250바트, 전철은 25바트.

나는 이곳 인테리어가 맘에 들어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예쁜 공간을 많이 볼 수 있어 만족한다. 간접조명과 식물들을 엄청 잘 활용했다. 그리고 깔끔하다. 더군다나 곤라니와 똥꼬와 놀 수 있던 것으로도 만족.

잠자는 방이 진짜 춥다. 예전에 홈플러스 정육코너에서 일 한 적이 있는데 거기 냉동 창고랑 비슷한 냉기였다.

캐리어나 큰 배낭을 넣을 수 있는 락커가 없다. 나는 캐리어를 잠가놓은 상태로 침상 옆에 뒀다.

도미토리 안에 쓰레기통이 없다. 면세품을 뜯고 생긴 쓰레기를 어디에 처리해야나 한참을 헤매다 카운터에 말해서 버렸다.

도미토리 1인 기준 390바트로 숙박료는 저렴한 편이다. 위치가 애매해서 그런 듯.(근처에 아무것도 없음. 차만 지나다님.)

결론적으로 나처럼 인테리어에 반했거나 고양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제 발로 찾아올 이유는 없어 뵈는 곳. 근처가 숙소라면 커피만 마시러 오면 좋을 듯하다.(커피가 제법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