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만에 깨닫는 사실

by SHUN

심심하냐고?


치앙마이에 온지 어느덧 3주가 다 되어간다. 도대체 여기서 혼자 뭐 하냐고, 심심하진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네, 맞아요. 심심해요.

심심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요가나 태국어 클래스 같은 것을 신청해서 듣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는 타입도 아닌지라 부대끼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 아니, 애초에 기회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심심하다면서 사람 만날 노력도 안 한다고 다그치면 뭐라 할 말이 없다. 사실이라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게 성가시고 귀찮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것을 택하는 중인데, 이것도 정도가 있는지 어느 순간이 넘어가니 심심해지는 때들이 오고야 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의 선택인 걸.

그래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밥 먹을 땐 밥 맛에 대해 평가하고, 놀라운 광경을 보면 감탄의 말들을 내뱉으며, 심심해 죽겠을 땐 심심해 죽겠다고 경을 왼다. 말 안하고 있는 것보단 혼잣말이라도 하는 게 낫다. 안 그러면 진짜 입에서 똥내 날 것 같단 말야. 그러고 있다보면 괜찮아진다. 이거 혹시 우울증의 초기증세 같은 건 아니겠지...?

IMG_9087.jpg 사실 맛있는 걸 먹기에도 입은 충분히 바쁘다


안녕, 후지스(Hoozys)!


지난 주에 나의 후진 자전거 후지스를 떠나 보냈다. 원래부터 2주만 빌리고 반납할 생각이었으니,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후지스는 마지막까지 탈 때마다 나사를 조여줘야 하는 후진 모습을 벗어나질 못했다. 덕분에 운동은 많이 됐던 것 같다. 후지스를 타고 이동하면 무조건 내리자마자 얼음물을 마셔야 했으니까. 어찌됐든 2주동안 이 자전거를 타고 치앙마이 올드타운과, 님만해민, 삥강 주변까지 치앙마이의 대부분의 곳들을 아주 구석구석 잘 돌아다녔다. 그러니 이 이상 후져지지 않은 걸 고마워 해야하나. 그래, 고마웠어, 후지스!

IMG_9197.jpg 그래도 후지스를 타면 이런 풍경을 찍을 수 있었지


태국 오토바이 면허증 발급받다


후지스를 2주동안만 빌린 이유는 2주 뒤부터 오토바이 면허증 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한인회에 신청했던 여러가지 서류를 2주 뒤에야 받아볼 수 있었기에, 2주동안은 자전거를 타고 다녀보자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덧 2주가 지났고, 한인회에서 내가 신청한 서류가 준비되었으니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부탁했던 모든 서류를 다 받았고, 다다음날이 되자마자(다음 날은 늦잠자서 못 감) 면허를 발급받으러 교통국으로 향했다.

면허를 발급받기 까진 생각보다 험난한 여정이었다. 길어봐야 한 3시간이면 끝나지 않을 까싶었는데 결론적으로 5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5시간이 걸려 발급받은 인생 최초 태국 오토바이 면허증 속 내 사진은 범죄자 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5시간 기달리고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거든. 기다리느라 점심도 못 먹고 반나절을 교통국에서 죽치고 있어야 했던 지칠대로 지친 나는 돌아오는 길에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한다.

IMG_9345.jpg 김치찌개 is 뭔들


3주 만에 깨닫는 사실


태국에 온지 3주가 다 되어서야 깨달은 사실은, 태국음식이 나한테 안 맞다는 거다. 태국에 처음 와 본 것도 아니면서(세 번째) 도대체 왜 이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는지 모르겠는데, 어찌됐든 지금은 타이푸드가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 타이푸드가 맞지 않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 흔한 고수향 때문이 아니다. 난 냄새를 못 맡는 후각장애인이라 고수향 따윈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 문제는 너무 짜다는 거다. 음식들이 다 너무너무 짜다. 못 먹을정도로 짠 음식들도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짜게 먹는거람.그렇게 맛있다던, 너무 맛있어서 혹시 미친 건 아니냐던, <크레이지 누들>이라는 곳의 국수는 미쳤냐는 말이 나올정도로 짜더만. 집에가서 1리터짜리 물 한 병을 다 비웠다.혹시 나만 이런건가? 그렇지 않으면 다같이 작정하고 저렇게 맛있다고 얘기할 리가 없잖아. 원래 그렇게 싱겁게 먹는 입도 아닌데... 왜 이런걸까...

또, 코코넛이 들어간 음식도 입에 잘 안 맞는다. 코코넛 밀크까지 모두 포함이다. 특히 찹쌀 밥을 곁들인 망고, 스티키 라이스 망고는 정말... 찹쌀 위에 코코넛 소스를 뿌리는데 정말 기절초풍할정도로 느끼하다. 아니, 뭔가 느끼하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한데. 뭔가 굉장히 역하게 느끼한 느낌이랄까. 스티키 라이스 망고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죄송합니다. 전 정말 못 먹겠더라구요.

IMG_9175.jpg 겁나 짜


두드러기, 이러기 있기 없기?


원래 피부가 약한 편이다. 일명 스케치북 피부라고, 피부위에 글씨를 쓰면 자국이 그대로 남는 그런 류의 피부 있지 않은가. 그게 내 피부다. 원래부터 피부에 두드러기가 잘 생기고 예민한 편인데, 태국와선 유독 두드러기가 많이 생긴다. 복무 생활중에도 피부에 두드러기가 많이 생겼어서 단체 생활을 하다보니까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지금은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도 두드러기가 시도 때도 없이 생기니 정말 곤란하다. 좁쌀 처럼 올라오는 두드러기 부터, 가려워서 조금만 긁으면 부풀어오르는 두드러기까지. 두드러기야. 태국까지 와서 이러기 있기, 없기?


오토바이는 신세계


2주동안 후지스를 끌고 다니다 오토바이로 막 갈아타니 신세계가 따로 없다. 내가 원하는 곳에 맘만 먹으면 갈 수 있게 됐다. 자전거 끌고 가긴 너무 멀어서 엄두가 나지 않던 한식당에도 갔다왔고, 산골짜기의 조용한 카페도 다녀왔다. 더군다나 긴팔 긴바지를 입고 다녀도 땀이 하나도 나질 않는다. 대박이다. 그나저나, 힘들게 면허를 발급받았건만 지금껏 한번도 단속에 걸린 적이 없다. 걸리기만 하면 현란한 현대무용 동작으로 지갑에서 면허증을 꺼내 당당하게 보여주려 했건만.

IMG_9342 copy.jpg 이것도 한국에선 기념품이 되겠지


이제 뭘 할거냐면


사실상 저번주에 퇴고 작업을 끝내서 이제 뭘 해야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얘긴 아니다. 지금과 같이 아무 생각 없이 생활 할 수 있는 날이 또 언제 있을까 싶어서(수영장 물에 몸을 담그고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의 농도가 더욱더 짙어진다)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그러나 심심한건 싫으니 뭐라도 해야겠다.

이제 뭘 할거냐면 우선 지난 여행들의 기록을 그림으로 그려 남길 생각이다. 지금 하고 있는건 전에 먹었던 음식들 그림 그리기다. 그림으로 남기는 건 사진으로 남기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남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먹었던 음식을 이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그림을 그린다는 건 그만큼 관찰을 해야하는 일이기에 어쩌면 대상을 마음에 새기는 일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진과는 다른 의미 같다고 느낀다.

그리고 여행을 좀 다닐 생각이다. 멀리 갈 생각은 아직 안 하고 있는데, 또 모르지. 마음이 훽 하고 동하면 어디 빠이나 매홍손 같은데 며칠 갔다올 수도 있겠지...(사실 오토바이를 끌고 가려면 몇 십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기에 갈 만한 용기는 없다) 어찌됐든 3년전에 가봤던 도이수텝도 다시 한번 가보고, 치앙마이에 와서 한번도 안간 사원들도 조금 돌아다녀볼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트래킹 같은 것도 해보고 싶기도 하고.

IMG_9264.jpg 수영장에서 이걸 보고 있으면 '언제 또 이런 시간이 오려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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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9516.jpg 요런걸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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