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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Oct 02. 2016

10. 스파게티 맛있게 먹는 법

너와 나의, 소울푸드(2) 스파게티

 여행을 다녀와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 것이다.

 "제일 맛있게 먹은 음식이 뭐야?"

 음, 글쎄.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늘 한정된 예산으로 꽤 긴 여행을 하자니 먹고 싶은 음식을 다 먹으며 여행하진 못했다. 뭔가 질문을 한 이들이 기대한 대답은 '베니스의 곤돌라를 바라보며 먹는 이태리 피자 한 조각' 이라던지, '맛집 랭킹에서 1위를 한 방콕의 그곳에서 먹은 뿌 팟 퐁 커리' 같은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그런 것들은 잘 기억에 남질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은

 "음, 내가 만든 파스타가 제일 맛있더라."

 웬 파스타야, 싶겠지만 파스타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알뜰한 여행의 필수조건은 여행비를 아껴 쓰는 것이기에 식비를 줄이는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래서 마트에서 재료를 사다 숙소에서 직접 해 먹을 때가 많았는데 가장 많이 해 먹었던 메뉴가 바로 파스타였다. 면을 삶고, 토마토 페이스트만 부어주면 완성되는 게 파스타다 보니-조리과정이 매우 간단하다 보니-여행 중 파스타는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아시아권을 제외한 도시의 마트에서는 쌀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찾았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밥 맛과 굉장히 달랐다. 파스타는 필연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고기나 채소를 더 넣어주면 훌륭한 요리가 되는 데다 거기에 와인이나 시원한 맥주 한 잔 까지 곁들여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매콤한 고추 몇 개 썰어 넣어 입안에 알싸함까지 감돌게 한다면, 고국의 매운 음식에 대한 그리움까지도 잠시나마 달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파스타는 아무래도 스파게티다. 흔히 '파스타'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연스레 떠올리는 음식도 바로 스파게티다. 기다란 국수 같은, 쫀쫀한 식감의 밀가루면으로 만들어진 그 음식 말이다. 사전에 '파스타'를 검색하면 '이탈리아식 국수. 밀가루를 달걀에 반죽하여 만들며 마카로니, 스파게티 따위가 대표적'이라 나오는데, 이처럼 파스타에는 동글동글한 마카로니나, 넙죽한 페투치니, 리본 모양의 파르펠레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역시 후루룩 먹을 수 있는 스파게티가 가장 좋다. 여행 중 해 먹었던 파스타도 대부분 이 스파게티였다.

 여행 중 정말 많은 숙소에서 스파게티를 해 먹었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먹었던 '슈퍼문 스파게티'다. 당시 친구와 함께 2개월가량 발칸 반도를 여행 중이었는데, 여행을 떠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무렵 어떤 사건 때문에 크게 싸웠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아드리아해도, 하늘을 부드럽게 녹이는 석양의 바닐라 스카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우린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버렸다. 그냥 이쯤에서 따로 여행을 할까,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까지 했던 것 같다.

 그 날은 슈퍼문이 뜨는 날이었다.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졌을 때 나타난다는 크고 둥근 보름달, 슈퍼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슈퍼문을 보겠다는 얘기로 한창 떠들썩했다. 우린 말없이 스플리트의 바다 위에 덩그러니 얼굴을 드러낸 슈퍼문을 바라보며 돌아왔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밝아진 밤이었지만, 우리 안의 새까만 어둠은 가시질 않았다. 숙소에 돌아와 각각 침대에 앉은 채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정적만이 외로운 공간을 감싸 돌았다.

 '꼬르륵'하는 어처구니없는 소리가 흘러나온 건 정적이 흐른 지 한 삼십 분 만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우리 둘 다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다. 감정까지 소모할 대로 소모해 버렸으니, 배가 고플 만도. 우린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향했고, 여느 때처럼 스파게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냉장고에 남아있던 반 쪽짜리 양파를 꺼내 썰었고, 친구는 자연스럽게 가스레인지 위에 물을 올려 스파게티 면을 삶기 시작했다. "거기 도마 좀 줄래?", "면 다 익었는지 좀 봐줘.", "고기 더 넣을까?" 오선지 위에 음표가 그려지 듯 양파를 써는 소리, 물이 끓는 소리, 개수대의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음률을 타고 흘러나왔다. 어느샌가 우리도 그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있었다.

 완성된 파스타를 들고 방으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땄다. 스파게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배가 많이 고팠던 것이다. 스파게티는 여행을 다니며 그동안 해 먹었던 것 중 최고로 맛있었다. 특별한 레시피가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 고기를 조금 더 넣기는 했다만. 창 밖으론 슈퍼문이 크게 빛나고 있었다. 달이 언제부터 저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곧 지구에라도 다가올 것처럼.

 어느새 친구와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슈퍼문이 지구에 다가온 것처럼 말이다. '슈퍼문 스파게티'의 위력이었다.


 자취를 할 때도 스파게티를 참 많이 해 먹었다. 크림 스파게티, 까르보나라, 토마토소스를 베이스로 한 아라비아따 스파게티나, 로제 소스 스파게티, 알리오 올리오, 해물 스파게티, 빠네 등 정말 많이도 해 먹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레시피는, 시판 토마토 페이스트를 주 재료로 한, 여행에서도 많이 해 먹었던 그 뻔한 레시피다. 2인분 기준 재료는 양파 반 개(더 넣어도 됩니다.), 고추 세 개(더 넣어도 됩니다.), 마늘 세 개, 스파게티 면, 소금, 올리브유, 피자치즈(핵심 재료, 별 다섯 개)가 끝이다. 간단하죠? 고기 따윈 넣지 않는다. 그 편이 훨씬 담백하고 맛있다.

 일단 냄비에 물을 낭랑하게 담아 끓여놓는다. 물이 끓는 동안 재료 손질을 해야 하는데, 일단 마늘을 슬라이스로 썰던 다지던 취향대로 준비해놓고, 양파를 잘게 썰어준다. 고추도 잘게 썰어 놓는다. 이쯤 되면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 물에 소금을 두 꼬집 정도 집어넣고 올리브유를 약간 넣어준다. (이렇게 하면 면이 탱탱해진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스파게티면을 그대로 두면 냄비와 스파게티 면이 닿는 부분이 새까맣게 타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면이 물 안에 다 들어갈 때까지는 손으로 잡고 있어줘야 한다. 아래가 조금 흐믈흐믈 해졌다 싶으면 구기던지 나름의 방법대로 면을 물 안에 완전히 잠수시킨다. 동시에 소스를 만들고 있어야 한다. 가스레인지가 두 개가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이 방법은 가스레인지 두 개가 있다는 가정하에 적는 것이므로, 가스레인지가 하나만 있는 분은 알아서 방법을 찾아보시길. 오목한 형태의 커다란 프라이팬에 약불을 가한 뒤, 올리브유를 조금 둘러 준 후 마늘부터 볶는다. 다음으로 양파를 볶아준 후 양파가 약간 노래졌다 싶으면 가차 없이 토마토 페이스트를 부어준다. 이윽고 끓는다 싶으면 불을 줄인 후 썰어둔 고추를 취향껏 넣어준다. 이쯤 되면 면이 다 익었을 것이다. 면을 거르는 채에 면을 구출시킨 후 재빨리 소스 안에 투하한다. 면을 상온에 너무 오래 방치시키면 면이 찐득찐득해지고 쫀득한 식감이 사라져 버린다. 되도록이면 빨리 투하하는 게 좋고, 어쩔 수 없이 상온에 방치해야 된다 하면 찬물로 한 번 헹궈낸 후, 올리브유를 조금 버무려 놓아라. 그럼 조금 괜찮다. 면이 소스를 먹었다 싶은 느낌이 오면 불을 제일 약하게 한 뒤 이 요리의 하이라이트인 피자치즈를 솔솔 뿌려준다. 그리고 뚜껑을 덮은 후 3-4분간 기다려준다. 그래야 위까지 열이 전달되어 피자치즈가 맛있게 녹는다. 그리고 먹으면 된다. 꿀꺽.


 어렸을 적엔 소스 맛에 충실한 파스타가 좋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베이식한 맛에 충실한 파스타가 좋아진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크림 파스타에서 토마토 스파게티로, 그리고 이젠 알리오 올리오 같은 올리브 오일 스파게티로 취향이 변한 것이다. 최소한의 간으로, 탱글탱글한 면 본연의 맛을 살려낸 파스타가 좋다. 패밀리 레스토랑을 포함한 서울의 대부분의 식당에서 파는 파스타는 죄다 면의 맛을 가린 파스타뿐이다. 소스 맛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면의 삶은 수준이나, 맛을 간과하고 만들어내는 파스타가 대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 '베이식한 파스타'를 만들기가 가장 어려운 단계이니, 쉽게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왜, 초밥집에 가면 그 수준을 다마고(달걀말이) 초밥으로 판가름한다고 하지 않는가. 가장 쉬워 보이고 기본적인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이름 모를 식당에서 먹은 알리오 올리오는 아직까지 회자될 정도로 진한 감동의 맛이었다. 단순히 가장 저렴해서 시켰던 파스타였는데, 그 알리오 올리오 하나가 내 스파게티 식성을 뒤집어 버려 놓았다. 정말 단순한 재료들, 스파게티 면에 마늘, 올리브유, 그리고 고추와 약간 간을 한 후추가 전부였는데 너무너무 맛있었다.


 세상엔 (아마도) 맛있는 스파게티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별 5성급 호텔에서 제공하는 금가루를 뿌린 파스타도 맛있을 거고, 미슐랭 별 3개를 받은 일급 셰프가 만든 파스타도 맛있을 것이다.(먹어보지 못해서 맛은 모르겠다만.) 하지만 아무래도, 스파게티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배고플 때 먹는 거라는 거.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지 않을까. 나와 친구가 격해진 감정으로 씩씩대면서도 그 자리에서 스파게티 한 접시를 다 비워낸 것도, 정말 단순히 배가 고파서였으니까. 두브로브니크에서 먹은 알리오 올리오도 어쩌면 배가 고플 때 먹어서 맛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그만큼 배고픈 여행이었다.)

 누군가 내게 스파게티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을 묻는다면, 하루 종일 굶고, 친구랑 한 번 싸우고, 쓸데없는 노동력으로 진을 뺀 다음 날 직접 해 먹으라고 하고 싶다. 맛이 없을 수가 없어요,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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