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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Oct 01. 2016

9. 여행하는 이유

그곳에 두고 왔기 때문이야, 심장 한쪽을.

 "여행을 왜 다녀?"

 질문을 듣는 순간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해야 할 것만 같잖아. 그냥 맛있는 걸 먹고 낯선 풍경 감상하러 다니는 게 좋아서 한다기엔 너무 철이 없어 보이진 않을까. 그렇다고 '진짜 나 자신을 찾기 위해' 같은 대답은 너무 낯간지러운 데다 상투적이다. 그러고 보니, 그게, 그러게 말이다. 나는, 왜 여행을 다니지?


 고등학교 1학년, 그러니까 내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여름방학, 도쿄의 카메아리에 한 달간 있던 적이 있다. 카메아리는 도쿄에서도 아주 외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데, <여기는 카츠시카구 카메아리 공원 앞 파출소>라는 만화의 배경이 된 점 외에 별다른 특징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서울로 비교를 해보자면 내가 살고 있는 '도봉구 방학동' 같은 곳이랄까. 방학동은 서울이긴 하지만 오히려 의정부와 더 가까운, 서울 외곽 쪽에 위치한 조용한, 사람 사는 평범한 동네다. 카메아리도 딱 그런, 조용한 동네였다.

 왜 하필 카메아리였느냐,라고 묻는다면 별달리 할 말이 없다. 학교에서 여름방학을 맞이해 일본에서 한 달간 일어를 배울 학생들을 모집했었고, 그것에 신청한 게 다였다. 비행기는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고, 나를 포함한 같이 온 친구 두 명은 낯선 버스를 타고, 낯선 도로를 지나, 카메아리란 동네에 도착한 것뿐이었다. 눈 앞에는 <화이트 맨션>이라는, 지어진지 조금 되어 보이는 건물 한 채가 있었고, 그곳은 앞으로 우리가 한 달간 묵을 곳이었다. 낯선 공기가 폐 속 깊숙이 들어찼다.

 그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왜 일본에 갈 생각을 했느냐, 묻는다면 할 말이 꽤 많다. 당시엔 겉으로 '나중에 일본 대학에 갈 것을 대비해서', '일본의 만화산업을 직접 체험해 보기 위해서'(당시 나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만화를 전공했다.) 같은 그럴싸한 이유를 댔지만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그냥, 너무 가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낯선 곳, 그러니까 '해외'에 대한 로망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기회가 닿는다면 어디든 떠나보고 싶었다. 틈만 나면 세계의 이곳저곳 이미지를 구글링 하여 감상하며 공상에 빠지곤 했으니, 일본에 갈 수 있는 기회는 굴러들어 온 떡일 수밖에. 당시엔 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부터 신비롭게 느껴졌다. 정말 신발을 벗고 타야 하는 걸까, 싶을 정도. 그런 해외여행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 찬(동시에 문외한) 내게 쥐어진 '일본 행 티켓'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찰리에게 쥐어진 골든티켓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달간 일본에서의 생활이니, 부모님에겐 꽤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조금 높여 욕심이란 것을 내 보았다. 물론, "일본어를 공부해야 해서요."라고 설득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배운 일본어라곤 스미마셍, 아리가또, 이꾸라 데스까(얼마예요?) 정도뿐... 농담이고, 사실 이 정도까진 아니지만 일어 공부를 하러 갔다는 명목이 민망할 정도로 배워온 게 없었다.

 그렇다면 하라는 일어 공부는 안 하고 무엇을 했느냐. 음, 이건 인생 최초로 밝히는, 아빠 엄마에겐 비밀인 사항인데, 나는 매일 학원을 땡땡이치고 놀러 다녔다. (!)

 아침이면 같이 온 친구들을 깨워 숙소 앞의 이토요카도라는 대형마트에서 장을 봐 와 아침밥을 요리했다.(실은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나서 대부분 깨움 당했다.) 장을 봤다고 해봤자 달걀 정도고, 요리라고 해봤자 고작 김치에 달걀 프라이가 전부다. 그래도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동네를 산책한다. 카메아리 주부들은 남편 배웅이 끝나면 아침드라마의 여주인공이 과연 오늘은 남주인공과 키스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인 듯 허겁지겁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물론 그건 친구들과 내 생각이다. 그런 일상적인 풍경에 말 같지도 않은 만화 같은 이야기를 담아 키득거리며 산책을 이어나갔다.
 저녁에도 산책은 계속됐는데, 먹은 게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걸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17살은 식욕이 왕성한 때니까. 가끔 운 좋은 날엔 마을 공터에서 축제 중인 주민들도 만났다. 심오한 비트의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는데, 같이 참여하면 춤도 추고 인상 좋은 할아버지에게 라무네(구슬이 들어있는 일본식 사이다)를 얻어 마실 수도 있었다. 라무네를 건네주던 할아버지는 웃다가 그만 틀니가 빠지기도 했다. 당황한 할아버지는 도로 틀니를 장착하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웃음을 지어 보이셨는데, 지금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리자니 어쩐지 B급 코미디 같다.
 하나비(불꽃축제)가 열리는 날엔 미리 사두었던 저렴한 유카타를 차려입고 하나비를 구경하러 가기도 했고, 열대야를 견디지 못할 땐 시원한 맥주와 케이크를 사 들고 옥상에 몰래 침입해 카메아리 마을의 야경을 바라보며 더위를 식히기도 했다. 어학원에 가던 길엔 ‘이러면 안 된단 말이야~’를 외치며 시커먼 초콜릿 케이크를 한 입에 털어 넣는 애인처럼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이끌려 순순히 오락실로 발을 돌리기도 했고, 낯선 풍경들을 크로키 북 위에 담아내며 하루를 그냥 보내버리기도 했다.
 그런 식이었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구경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가끔 하나비나 틀니 할아버지 같은 이벤트도 즐겨주고.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조용하고 평범한 마을인 카메아리는 특별한 추억으로 가득 채워져 갔다. 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렸다. 한 달이란 시간이 이렇게나 짧았나, 싶을 정도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선 한동안 현실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같이 갔던 친구가 젓가락을 거꾸로 든 채 식사하는 모습을 보니 정신 못 차리는 건 나뿐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다들 카메아리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던 것이다. 우린 느꼈다. 필시, 그곳에 무언가를 놓고 왔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헤어진 연인과의 기억처럼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올 순 없을 테니까.

 후유증이 좀 가실 때 즈음, 우린 입을 모아 말했다. "또 여행 가고 싶다"라고. 그랬다. 우리가 카메아리에서 한 달간 한 짓은 '일본 대학을 가기 위함'도 아닌, '일어를 배우기 위함'도 아닌, '여행'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다녀온 것이 여행이었구나, 하고 깨달은 건 그때, 그즈음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남몰래 여행에 대한 꿈을 가슴속 깊이 품었던 게. 다시 쳇바퀴 굴러가듯 바쁜 일상을 살아갔지만, 카메아리에 두고 온 '그것'이 자꾸만 가슴속에 떠올랐다. 어쩌면 나의 정신 중 어느 한 부분이 떼어져 그곳에 놓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생각나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까.

 꺼지지 않은 불씨에 제대로 다시 불이 붙은 건 23살이 되던 해였다. 아예 작정을 하고 여행을 위해 휴학을 했다. 그리고 6개월간 돈을 벌어 두 달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게 제대로 떠났던 나의 첫 여행이었다.

 첫 여행은 가혹했다. 비행기를 놓치고, 기차를 놓치고, 벌금을 내고,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로드무비의 주인공인 된 것처럼 드라마틱한 일들이,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 정말 감사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고, 특별한 경험들도 하게 됐으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내 모습도 알 수 있게 됐다. 열일곱의 내가 경험한 여행과는 사뭇 다른 얼굴의 여행이었다. 확실히 그러했다. 이런 식으로도 여행이란 게 가능하구나, 싶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틈틈이 여행을 했다. 말 그대로 돈이 모이는 족족 여행에다 쏟아부었다. 다양한 나라, 도시를 가보았고 다양한 형태의 삶을 눈 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실로 넓은 세상이구나, 질리지도 않고 감탄했다. 같은 곳을 두, 세 번 방문한 적도 있다. 그러나 여행을 다녀온 뒤 감상은 늘 달랐다. 여행은 이렇듯 끝이란 게 없는 행위인 것이었다.


 열일곱의 내가 그러했듯 지금의 나 역시 내가 다닌 여행지 어딘가에 무언가를 두고 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을 나는 '심장 한쪽을 떼어 두고 온 것'이라고 얘기한다. 여행은 심장 한쪽을 그곳에 떼어 두고 오는 것이다. 몬테네그로 허름한 유스 호스텔의 냄새나는 낡은 침대 위에, 두브로브니크의 이름 모를 식당의 테라스 위 다 먹은 파스타 접시 위에, 무이네의 하얗게 부서지는 화이트 샌듄 뒤로 지는 석양 속에 심장 한쪽을 두고 왔다. 그래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곳을 떠올리면 심장 어딘가 한 구석이 시려진다. 그곳에 대한 아득한 기억만이 머리 위를 감싸 돌면서 말이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여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비어버린 심장 한쪽을 찾기 위함이라 대답하고 싶다. 열일곱, 카메아리에 두고 온 그것 때문에 여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 것이다. 고로, 비어버린 심장을 다시 찾아 떠나면 필히 그곳에 또 무언가를 두고 오게 되고, 그런 과정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한다. 계속해서.

 지금도 나는 늘 여행을 꿈꾼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던져진 채, 나의 모든 것을 두고 오고 싶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마지막은 좋은 말로 마무리.

여행은 그대에게 적어도 세 가지 유익함을 가져다준다.
첫째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고,
셋째는 그대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_ 브하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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