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세상에는 두 가지 타입의 사람이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 봐야 할 수 있는 사람.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를 보고 '일단 물에 뛰어드는 사람'이라 표현했다.) 해 보지도 않고 얼추 감각과 느낌으로 할 수 있는 사람. 전자는 '노력형', 후자는 '천재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전자에 해당한다. 유년기엔 '혹시 내게 엄청난 재능이?'라는 마음을 품어보기도 하지만 결국 대부분은 '노력형'의 타입에 해당한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일례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하루키는 이런 '노력형' 혹은 '끈기형'의 타입을 가진 사람을 이렇게 표현한다.
어렸을 때 어떤 책에서 후지 산을 구경하러 간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 다 그때까지 후지 산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산기슭에 서서 몇 가지 각도로 바라보고 '아, 후지 산이란 이런 곳이구나. 그래, 역시 이러이러한 점이 멋있어'라고 납득하고 돌아갔습니다. 매우 효율성이 뛰어나지요. 얘기가 빨라요. 그런데 머리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쉽게는 후지 산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혼자 남아서 실제로 자기 발로 정상까지 올라갑니다. 그러자니 시간도 걸리고 힘도 듭니다. 체력을 소모해 녹초가 됩니다. 그러자니 시간도 걸리고 힘도 듭니다. 체력을 소모해 녹초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끝에야 겨우 '아, 그렇구나, 이게 후지 산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한다고 할까, 일단 몸으로 납득합니다.
소설가라는 종족은(적어도 그 대부분은) 어느 쪽인가 하면 후자, 이렇게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머리가 그리 좋지 않은 사람 쪽에 속합니다. 실제로 내 발로 정상까지 올라가 보지 않고서는 후지 산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입니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몇 번을 올라가도 아직 잘 모르겠다, 혹은 올라가 볼수록 점점 더 알 수가 없다, 라는 게 소설가의 천성 인지도 모릅니다.
_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해 보지 않고 그것을 뚝딱뚝딱해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지만, 나란 사람은 유독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것을 온전히 몸으로 경험하고 체득해야 이해가 가능한 타입이다. 기계를 만질 때도 대부분의 사람이 몇 가지 기능을 습득하고 나면 '음, 그렇다면 이건 이런 식으로 컨트롤하면 되겠군'하며 여러 가지로 응용할 단계로 건너뛴다면, 나 같은 사람은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체험하고 나서야 '내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 것'으로 만드는 데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진짜 경험해 본 만큼만 결과를 내놓으니 때론 억울하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내 삶이란 형태도 어쩐지 '일단 뛰어들고 보는 식'이 되어버렸다. 경험하기 전에 이것저것 재 보는 게 나 같은 타입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어 '일단 물에 뛰어 들어가' 보는 것이다. 수영 같은 건-어찌 됐든 살고는 봐야 하니까-물속에서 움직여 보며 체득한다. 그럼 그제야 '왜 수영에 이런 자세가 존재하는지' 제대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러했다. 노래나 연기를 도무지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무턱대고 그냥 뛰어들었다. 누군가 시범을 보여주고 나면 머릿속에선 이미 대배우처럼 연기하고 있었지만 막상 몸을 움직이면 엉망이었다. 머릿속으론 아무리 이상을 그려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눈 앞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이 아니면) 몸으로 도저히 체득할 수가 없었다. 이런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공연을 준비할 때 아무리 악보에 밑줄을 긋고 분석을 해봐도 직접 그 플랜대로 '움직여 보지' 않으면 (그것도 굉장히 많이) 무대 위에서 꼼짝없이 얼어버리고 만다. 그런 이유로 별 연습 없이도 꽤 괜찮은 연기를 해내는 사람들이 참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연기에 대한 센스이며 재능이기도 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굉장히 쓸만한 재능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에튜드(즉흥 상황극)로 수업을 할 때도, 직접 움직여보지 않으면 내가 움직이고 말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어 밤새 몸을 괴롭히며 반복적으로 연습을 했다. 그래야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된달까. 노래는 목이 가든 말든 여러 번 해봐야 '아주 조금' 알 것 같았다. 노래나 연기는 생각 이상으로 물리적인 신체의 흐름보다 형이상학적으로 이미지를 그려내야만 트레이닝이 가능한 경우가 많으므로 노력보다 재능이 훨씬 큰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런 점에 있어서 꽤 좌절스러울 때도 많았다.
이러한 특성의 장점은 매우 솔직하단 것이다. 딱 한 만큼만 결과로 보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요령을 피울 수 없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무대 위에 올라서면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모든 게 관객들에게 노출되는 상황이기에 웬만한 무대 센스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충분한 연습 없이 요령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 그런 건 공연을 잘 모르는-많이 접해보지 않은-관객들도 쉽게 캐치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조금 돌아가더라도, 조금 피곤하더라도, 이런 타입의 사람으로 태어난 게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어쨌든 '한 만큼'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많이 해두면 그만큼 안심이 된다. 보험을 들어놓은 것 같달까.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거다. 어떻게 서든 연습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 놓는 것, 그것이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는 상당히 다행인 점이다.
또 습득을 위해 직접 체험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얼굴들을 마주할 때도 있다. 그건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의 모습, 나의 가능성일 때도 있고, 원래 체득하려 했던 것 이상의 능력일 때도 있다. 비행기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두 발로 걸어서 이동하는 느낌이랄까. 비행기를 타고 가면 시간이 절약되고 몸은 편하겠지만(한마디로 '효율적'이지만), 걸어서 갔을 때 오감으로 느껴지는 자연과 사람들의 향기 나 풍경, 경험들은 마주할 수 없다. 설사 목적지까지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거기까지 쌓인 경험으로 '만족'할 수도 있다. 어쨌든 걷는다는 행위는 '목적지에 간다'라는 목표뿐만이 아닌,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한다'는 목표 또한 동시에 수반되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부딪혀보고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쓰러지고 좌절하기보단 '그래, 이것으로 됐어.' 싶을 때가 많다. 목적을 이루지는 못 했어도 분명 이 경험이 나중에라도 쓸 데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어렸을 적 잔재주가 유난히 많았기에 자신이 '천재형'인 줄 알았다. 때문에 별 연습 없이도, 요령을 피워도 괜찮을 줄 알았고 실제로도 그런 마인드로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잔재주들이었다. 그냥 아주 잠깐 빛나던, 열심히 갈고닦아주지 않으면 빛을 잃는 능력들이었다. 겸손을 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 스스로도 반박할 수가 없다.
처음엔 나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웃기지만, 당시엔 새삼 진지했다. 그동안 그거 하나만 믿고 보장된 미래를 꿈꿔왔는데, 사실 뭐, 별 거 없는 능력들이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고, 나는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람이란 믿음으로 살아왔는데, 별 볼일 없는,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먼지와도 다름없는 사람이였 것이다. 그 충격과 실망감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먼지 같은 내 존재에도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고, 천재여야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혹자는 정신 승리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정신승리한 거 맞다. 사실 인생이란 건 끝없는 정신 승리의 연속이다. 정신적으로 승리해서 행복하고, 그로 인해 좋은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적어도 지금의 난 그렇게 생각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느냐'라고 말하곤 한다. 굳이 그걸 손으로 찍어 먹어봐야 뭔지 알겠냐는, 눈으로 딱 보면 알지 않느냐는, 흔히 굳이 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음, 그런데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찍어 먹어봐야 알 것 같다. 눈으로 보기에 색깔도 비슷한데 더군다나 냄새까지 못 맡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나는 직접 체험해야 체화가 가능한 사람이란 말을 하고 싶다. '딱 봐도 사이즈 나오는데 왜 그걸 못해?'라며 다그치지 말아달라.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다. 그렇게 타이트하게 습득하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히 여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내가 똥이랑 된장을 찍어 먹어보겠단 건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