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내가 좋아하는 것

나 네가 좋아

by S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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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무엇을 먹고 싶다, 어딘가에 가고 싶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말하지만 대부분의 '취향'이란 건 대세를 따라 결정되지, 온전한 경험에 의해 형성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진짜로.

이것을 깨닫게 된 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갔을 때였다. 혼자 여행을 하려고 하니, 1부터 10까지 모두 내가 선택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 선택이란 것이, 음, 어느 정도의 범위냐 하면,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날까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먹을지, 심지어 길을 잃었을 때 누군가에게 길을 물을지 그냥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볼지까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선택의 연속이 반복되다 보면 자아가 두, 세 개로 분리된다. 해!라고 얘기하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나와, 하지 마!라고 얘기하는 소극적이고 독립적인 나. 뭐, 크게는 이렇게 두 가지로 분리되는데 이 과정에서 진지하게 스스로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프랑스 니스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입에 담지 못할 만큼 더러운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나 하루 종일 우울했다. 혼자 여행을 다닌 지 한 달 좀 넘었을 즈음이니, 여행과 나 사이에 '권태기'같은 것이 오기도 했고. 이런 때 내 기분을 낫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다. 사실 일상에서라면 이런 고민을 그렇게 심각하게, 오래 하진 않는다. "나 오늘 기분이 더러워."라고 얘기하면 "술 먹자."라고 주위에서 자연스럽게 해결책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술이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데 지구 반대편 프랑스까지 와서 혼자 술을 마시며 기분 전환하자니 왠지 더 우울해질 것만 같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죽을 듯이 심각하게 우울해질 것 같고. (마침 눈 앞엔 끝이 없는 깊은 바다가 있는 니스였다.) 맛있는 걸 먹어볼까 싶다가도, 아, 그럴만한 돈이 없구나 깨닫고. (초가난한 여행 중이었다.) 머릿속에서 이런 식으로 여러 명의 자아가 큰 테이블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거, 부정적인 곰씨! 조용히 좀 하시오! 우울하면 맛있는 것 좀 사 먹을 수도 있지, 뭐 그리 깐깐하게 구쇼! 애 기죽게 말이야!"라고 진취이고 감정적인 내가 한 마디 꺼내면 "아직 여행 일정이 한 달이나 남았어요. 마시멜로 이야기 몰라요? 눈 앞의 마시멜로에 현혹되지 말라고요!"라고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내가 안경을 고쳐 쓰며 되받아 친다. 이러니 식당 앞에서 한 시간을 서성이고 있을 수밖에. 그래서 결국 내가 한 결정은 무엇이었을까? 먹었지요. 니스의 맛집에서 맛있는 라따뚜이와 티라미슈를 우걱우걱.

식당에 발을 들이기 전 마지막으로 진취적인 나는 현란한 말발로 다른 모든 나를 물리치고 소심한 나와 단 둘이 마주했다. "그래... 먹는 건 좋아... 근데 꼭 여기여야만 하니? 여긴 가족들 연인들 단위 손님뿐이잖아... 이런데서 혼자 밥 먹다간... 체 해서 오늘 응급실 갈걸... 응급실 가면.. 더 우울해지는 건 알고.. 있지? 아니, 뭐 그렇다고... 가도 되긴 해.. 그냥 그렇다고..."라고 소심한 내가 소신 있는 발언을 힘들게 꺼냈지만 "닥쳐. 내 기분은 내가 책임진다." 라며 진취적인 내가 이미 식당 안으로 발을 들이밀어버렸다.

이건 하나의 예시일 뿐, 여행 내내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 심지어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더 자야 하는 나'와 '지금 일어나야 하는 나'가 싸우며 시작하니 말 다 했지. 그러니 가장 나를 위한 길은 무엇일까, 나란 사람은 무엇을 가장 좋아할까,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된다. 이는 20년 넘게 학교, 학원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고 생활했던 나에겐 큰 충격이자 깨달음이었다. 그동안 '좋아한다'는 의미를 사전적으로만 이해했단 것이었지, 몸소 오감으로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때부터는 스스로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됐다. 나는 자아에는 또 다른 목소리가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여행이란 건 그 목소리를 가진 자아와 함께하는 연애 같은 것이기도 하다. 무엇을 보면 좋아할지, 무엇을 하면 행복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면 괜히 반갑고 설레고, 그것은 취미로, 심지어는 직업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그래서, 발견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엔 무엇이 있을까? 오늘 날을 잡고 아예 적어보기로 했다.

우선 나는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 이건 선천적인 체질이다. 어렸을 적부터 워낙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합창대회도, 팝송대회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고, 고등학교 때부턴 아예 혼자 노래방에 다니기도 했다. (지금은 코인 노래방이 많아졌지만, 그땐 별로 없어서 일반 노래방에 혼자 가서 서너 시간 노래를 했을 정도.) 노래하는 게 너무 좋아 아예 뮤지컬을 하기로 마음먹었었고,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 지금도 노래가 너무 좋아 틈만 나면 혼자 코인 노래방에 간다. 노래를 하면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아무런 문제 없이 한 곡을 완창 했다는 기분이 들 때다. 물론 녹음해서 들어보면 형편없을 때도 많지만 뭐, 노래방은 자기만족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땐 어디 가만히 앉아 있기보단 같이 걷는 걸 좋아한다.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끄집어내 준다. 그것이 설사 단순히 걷는 행위라 하더라도. 걷는 길을 따라 공기와 주변 풍경들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들이 생성되고,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게 된다. 그런 시간이 참 좋다.

혼자 있는 시간도 참 좋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친 뒤에 술 한 잔 마시면 새삼 행복하다. 영화 한 편 함께 하면 금상첨화.

남들이 다 아는 곳, 인기 많은 곳보다는 왠지 나만 알 것 같은 곳, 소박하고 아담한 가정식 같은 곳을 좋아한다. 그곳이 장소가 됐든 무엇이 됐든 간에, 그곳이 지닌 상품성보다는 따뜻함, 그러니까 '분위기'에 더 마음이 끌린다. 이 분위기라는 것은 억지로 조성한 분위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따뜻한 사람들로 인해 자연스레 형성된 시간과 정성이 축적된 분위기다. 여행지도 남들이 다 아는 그런 곳들 보다, 현지인들이 사는 '사람 사는 냄새'가 많이 풍기는 작은 마을들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달까. 뭐든 이야기가 담긴 것이 더 좋다.

생각이 많아질 땐 홀로 카페에 앉아 하루 종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는 것은 물론이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진짜로. 시간이 엄청 빨리 간다. 글 쓰는 것도 좋다. 손으로 쓰는 것도, 타이핑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가끔은 연필을 잡은 손이 생각을 따라잡지 못해 손으로 글 쓰는 게 불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천천히 생각하며 신중하게 단어와 문장을 고르기엔 손으로 쓰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는 것 같다.

물이 있는 곳을 좋아한다. 여행 다닌 여행지만 봐도 바다나 호수가 굉장히 많다. 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물속의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우주 속을 상상하는 것만큼 재미나다.

가족을 주제, 소재로 한 영화를 좋아한다. 유독 가족에 대한 애정이 강해서인진 몰라도 가족적인 영화가 너무 좋다. 미스 리틀 선샤인이나,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같은. 물론 로드무비나,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긴 하지만, 가족을 담아낸 영화를 특히 좋아한다.

물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대부분은 아이스다.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하고, 케이크를 시키면 꼭 블랙커피를 시켜야 한다.

최근엔 위스키에 엄청난 관심이 생겼다. 아직 먹어 본 위스키는 많지 않아 취향을 운운하긴 어렵지만, 여러 권 구입한 위스키 관련 서적을 보고 마셔보고 싶다 하는 위스키는 현재 몇 개 있다. 아드벡 10년, 글렌모렌지 10년, 다케쓰루 12년, 메이커스 마크가 그것이다.

정장보다는 캐주얼한 옷을, 구두보단 운동화를 선호한다. 정장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정장을 입는 순간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주변 시선을 다섯 배는 더 신경 쓰게 되는 것 같다. 힘을 준 머리도 불편하여 웬만해선 머리에 제품을 잘 바르지도 않는다. 뭐든 편하고 자연스러운 게 좋다.
쓰다 보니 끝이 없을 것 같아 여기서 줄여야겠다.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을 물으면 '전 이게 좋은 것 같아요' 하는 대답을 많이 한다. 날씨가 추워도 '춥다'가 아닌 '추운 것 같다'이고, 기분이 나빠도 '나쁘다'가 아닌 '나쁜 것 같다'이다. '~같다'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극단적인 감정을 표현을 꺼리기 때문인 듯하다. 극단적인 감정표현은 누군가에겐 '고집이 센' 혹은 '꽉 막힌' 사람의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워낙 어릴 적부터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서툰 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모르는 게 있어도 쉽게 손을 들고 질문하지 못하는 교육환경), 자신의 상태를 에둘러 표현하는 게 습관이 됐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있어선 힘을 주고 확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른 채 살아가는 인생은 너무 불행하잖아. '좋은 것 같다' 보다 '좋다'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선 그만큼 자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겠지만. 생각보다 그게 그리 쉽진 않은데, 그렇다고 또 어려운 것도 아니다.

좋으면 좋은 거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도 '나 네가 좋은 거 같아' 보단 '나 네가 좋아' 가 훨씬 좋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거 같은 것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 그것들이 있기에 퍽퍽한 일상이 그나마 즐겁다. 세상엔 앞으로 더 좋아하게 될 것도 많다는 것도 다행이고.

자, 그럼 이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위스키를 마시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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