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 2편 - 우리가 헤어진 이유)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했다. 너무 간절히 원하면 오히려 실수를 연발하여 실패한다고도 했다. 나는 그녀와 내가 꽤 잘 어울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가정을 세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그와 달랐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박 삼일 동안 그렇게도 기다리던 답장이었는데 핸드폰을 켜자 마자 한바닥이 넘게 이어지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고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슬쩍 훑어보는 내용 중간에 미안하다는 말이 섞여있음을 발견했다. 맥이 탁 풀렸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두발이 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주저 앉아 울고픈 마음이었다.
왜 그녀가 나를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의 이혼 과거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서 며칠을 수백번 고민하면서도 정작 나를 만나러 나올 때 손수 과일을 예쁘게 깎아 타파에 넣어 챙겨주는 모습 때문에 그랬을까. 만날 때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둘이서 함께 깔깔 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을까. 만남을 거듭할수록 깊어지는 내 마음을 보면서 이 자연스러운 호감이야말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분명한 싸인이라고 착각했던 걸까. 그녀가 준 간식을 아껴 먹으며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겠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명민한 그녀는 똑부러지게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 역시 어렴풋이나마 생각하던 게 있었다. 늘 그렇듯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의 계획은 서로 달라서, 내가 원하는 것을 갖게 해달라고, 이뤄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그 내용이 내 뜻과 다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내 이혼 이야기를 그녀에게 말했던 때에, 그녀가 바로 ‘나는 괜찮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보자’라고 말하지 않았어도, 그저 그 이야기를 해주어서 고맙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다는 초월적인 반응이 나온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확신하고 응답으로 받았었다. 이 말인즉슨, 하나님이 개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별개로 그녀는 이 관계를 시작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정하거나 하나님이 역사하신 게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뜻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엎드러졌다. 잘못 꾼 꿈이었으면 싶었다. 어째서 내가 이런 내용의 답장을 읽게 된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어 자꾸만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터지는 눈물에 당황하며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그녀에게 답장을 할 수는 없겠다고, 내일 새벽기도를 드린 후에 정제된 상태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경외심과 여전한 신뢰를 담아 차분하게 답장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감정에 푹 빠져 한바탕 울고 난 후엔 나도 모르게 컴퓨터 앞에 앉아 그녀에게 보낼 답장을 정성스럽게 쓰고 있었다. 내게 남은 모든 열정을 짜내어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서 보내게 되면 아주 이성적이고, 그래서 서로가 덜 아플 수 있는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답장을 할 수 있겠지만, 어쩐지 그럴 수가 없었다. 당장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설사 그것이 완전한 최후의 연락이 된다고 하더라도.
단어를 고르고 또 골랐다. 사실 이미 정해진 결론 앞에 할 수 있는 말, 해야할 말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마움을 전했다.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주며 내게 행복한 추억을 선사해준 점에 대해서. 예상하고 있던 나의 과거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해준 것에 대해서. 그리고 미안함도 거듭 전했다. 나로 인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마음의 부대낌을 겪게 해서 너무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로 인해 거짓의 탈을 쓰고 접근하는 나쁜 남성에 대한 케이스를 또 하나 겪게 만든 건 아닌지, 무엇으로도 갚지 못할 만큼 미안하다고 말했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이혼만 빼면 정말 정말 괜찮아서 내 이혼사실을 알고서도 주변의 친구, 선배, 지인들이 자신의 가족을 소개시켜주는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정말 우스꽝스럽지만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짧은 시간이지만 이 경험을 불쾌하고 끔찍하게만 여기기보다, 인기도 많고 괜찮은 사람이 자신의 매력에 빠져 구애했었는데 그녀 기준에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었던 괜찮은 경험으로 기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렇게 답장을 한바닥 써놓고서, 이제서야 제대로 그녀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를 꼼꼼이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훨씬 더 크고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거짓과 위선 없이 솔직하고 긍정적인 그녀가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나를 얼마나 배려했고 존중했는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나를 얼마나 직관적이고 통찰력있게 이해했는지 그녀의 메시지에서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내 마음을 잘 읽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내게서 지금 여기까지만 하자고 말하는 사실이 너무나 슬퍼서 내 마음은 다시 한번 온통 무너져 내렸다.
차라리 나를 오해하고 멋대로 해석하고 이기적으로 자기 감정만 생각하지, 이 사람은 이별을 고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누구보다 내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나의 성정들을 놀라울 정도로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임을 점점 더 깨닫게 되는데 여기까지만이라니.. 태어나서 겪은 모순 중 가장 안타까운 모순 앞에서 나는 시원하게 웃지도 시원하게 울지도 못한 채 이상한 소리를 내며 숨죽여 오래 흐느꼈다.
그렇게 마지막 메시지가 오간 다음 우리 사이엔 보이지 않으나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벽이 생기고 말았다. 다신 그녀에게 연락할 수도 연락이 오지도 못할 그런 관계로 일순 우리는 돌변했다.
나는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격랑 속에서 본능적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다. 다음날 새벽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기도하러 교회로 갔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날도 그렇게 했다. 사랑할 준비가 다 되어있었는데 결국엔 그렇게 되지 못해 온통 슬픔으로 가득한 나 자신을 비탄에 온통 방치하지 않도록, 의지적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 내가 해야할 일이 있는 곳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애썼던 그녀를 보면서 나 역시 내게 주신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그녀에게나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겠다고 희망을 품었었는데,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 자신을 잘 추스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선택을 하기 위해 매달리는 것 뿐이었다.
이 불꽃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가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런 청춘드라마 같은 일을 상상하기엔 현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십년도 더 전에 만났던 친구 한 둘을 기억한다. 비록 헤어질 때 아름답지만은 않았지만 그때로부터 몸과 마음이 멀리 떨어지고 난 지금까지도 그들과 나누었던 추억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나는 그런 기억들을 소중히 품고 사는 사람이니까, 세월이 흐르며 그 기억을 들춰보는 빈도는 적어질지라도. 그 품을 수 있는 기억들의 개수와 길이가 계속해서 줄어가겠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내 기억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도 남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 세번의 만남으로 나를 들었다 놨다 한, 온 몸에 소름이 돋을만큼 감동시켰다가 전율을 느낄만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끼게 했던 사람으로 말이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의 가사에서 마음에 꼭 드는 내용을 발견해서 여기에 옮긴다.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하나 둘 추억이 떠오르면
많이 많이 그리워할 거야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마지막 선물은 산뜻한 안녕
- 윤하 <사건의 지평선> 중
안녕이라고 마지막 메시지 가장 끝에서 말할 때 너무너무 슬펐지만, 그만큼 생각이 깊고 명민한 당신이 그동안 살아온 인생과 하나님 앞에 옳은 선택을 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만큼 온전히 좋기만 했던 세번의 만남과 주고 받은 대화들 속에 느꼈던 따뜻함들 모두 잘 간직할게요.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까요? 행복히, 그리고 아이레네 평안하게, 늘 건강하길 기도할게요. 그럼.
(3편 - 마지막 선물은 산뜻한 안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