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 사랑이 끝나고 난 후에

by 안느의 일기

(이전 : 3편 - 마지막 선물은 산뜻한 안녕)



시간은 탄천을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충실히 흘렀다. 나는 주 3회 파워리프팅 운동에 나갔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새벽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다녀왔으며 퇴근하고 난 밤에는 느리지만 조금씩 성경통독을 향해 한 장 한 장 말씀을 더했다.


그러는 사이 잊혀야 할 것들은 잊혀 갔다. 뇌의 용적률과 감정의 허용량은 정해져 있어서 하나를 넣으면 하나를 잊어야 했다. 일본어 단어 하나를 넣고 그녀가 좋아하는 하리보 젤리 하나를 잊었다. 일본어 동사의 형태 변화를 외우며 그녀가 말했던 드림카 차종을 기억 저편으로 밀어 보냈다. 뜨거운 걸 못 먹고, 내장류를 못 먹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식을 먹는 습관, 그 습관이 생기게 된 이유, 그녀의 별명, 가장 좋아하는 계절, 신혼여행으로 가고 싶은 여행지와 그 이유에 대한 그런 모든 기억들을 하나하나 놓아주었다. 뜨겁게 타올랐던 흠모함의 장작이 남김없이 타오르고 숯이 되어 마지막 열기를 내뿜은 뒤 이제는 재가 되어 바람에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듯했다. 마치 처음 만나기 전날 그녀의 이름을 몇 번 불러보면서 좀처럼 입에 붙지 않아 어색한 발음을 중얼거렸던 것처럼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있었다.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다. 기억의 숲 속, 깊은 데로 향하는 오솔길에, 바람개비가 달린 작은 수레에 실어 천천히 굴려 보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아직 어림도 없다. 출렁이던 슬픔 이후엔 또 다른 생각들이 많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왜 나는 하필 이혼을 해서 이렇게 뒤늦게까지 후폭풍으로 고통받는지. 그땐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100%, 200% 계속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미래의 선택들도 영향받는구나 하고.


10여 년의 시간 동안 나는 완벽히 이로부터 극복해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때 이혼은 키워드가 아니게 되었는데, 내 짝을 찾을 때는 이 단어가 가장 중요한 단어로 떠오르는 것이 분하고 회한스러웠다. 이혼만 아니었다면 이 모든 것이 백 배는 수월했을 텐데, 그때의 실수가 내 발목을 지금까지 잡을 줄은 정말 몰랐다.


또 이왕이면 좀 더 가벼운 분위기로 말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진지하게 고민한 나머지, 이혼이 우리 관계에 대한 중차대한 결격사유임이 무조건 확실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바람에 나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더할 가능성마저 사전에 차단해버린 건 아닌지 아쉬웠다. 분명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그것을 상회할 만큼의 장점들이 나한테 있을 수 있는데. 그것들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약점만 명확하게 보여준 것 같아서 내가 어리석었다는 자책도 들었다.


내가 너무 좋게 생각했던 흠 없고 순전한 신앙심도, 오히려 그 신앙심 때문에 이혼이라는 사건에 대해 더 원천적으로 거리를 두게 하는 판단기준으로 작용했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앞으로 나는 흠이 없는 사람과는 안 되겠구나, 온전한 환경에서 자라 온전한 길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어렵겠구나 싶은 마음에 잠시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또, 이번 일을 계기로 내 주변에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성들에게 모두 오픈을 해버렸다. 저 사실은 이런 과거가 있습니다, 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도 있었고, 더 이상 이번과 같은 아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참 세상 일은 묘한 것이, 그 소식을 들은 그들은 '괜찮다', 고 반응했다. 전혀 상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당신을 더 알아보고 싶고, 이것 때문에 당장 그만 만나는 건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고마우면서도, 이 대답을 정작 가장 듣고 싶었던 단 한 사람에겐 듣지 못한 아이러니에 가슴이 아파 또 한참을 먹먹해해야 했다.


더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많았는데. 같이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이 있었는데. 맛있는 드립 커피를 같이 마시고 떡볶이도 먹고 자전거도 타고 예배도 같이 드리고 하는 그런.







오늘은 정말 신기하게 그녀와 시간을 보냈던 곳으로 가게 됐다. 우리 가족이 믿고 따르던 분이 어제저녁 소천하게 되셔서 빈소에 급하게 찾아뵙게 되었는데 그 위치가 하필 그녀의 집 근처였던 것이다. 안 그래도 두 번째 만남에서 그녀의 먼 집까지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게 마음에 걸려 차로 바래다주었는데 마침 그 위치가 예전 우리 가족이 살던 곳과 멀지 않았고 심지어 친누나가 결혼 후 살던 곳에서 매우 가까워 깜짝 놀랐었는데. 그 익숙한 길을 거쳐 다시 한번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이왕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여기까지 오게 된 김에 마지막으로 함께 갔던 그 카페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가서 무얼 하겠느냐만은, 그냥 혼자서 이 모든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자는 하나의 의식으로 나 혼자서 조용히 그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미 며칠 동안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자꾸 말하고 또 생각해서 흘려보내는 의식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래야 내 안의 아쉬움과 슬픔이 다 소진되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그런데 또 하필 가족 중 한 명이 서울 시내에 볼일이 있다고 출근하는 길에 내려줄 수 있느냐고 부탁해왔다. 처음엔 들를 데가 있어서 안된다고 고사했다가, 사실 내가 카페에 가려던 건 무용한 욕심을 위해서이고, 이 사람을 데려다주는 건 이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좋은 일이니 이 일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계획을 취소하고 함께 시내로 왔다.


한 시간 여를 운전해 그 사람이 찍어준 네비대로 향했을 때 나는 또다시 놀라움에 압도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곳이 내가 그녀와 두 번째로 데이트했던 광화문 덕수궁길이었기 때문이다. 방금 그녀와의 추억이 있는 카페에 마지막으로 방문할 기회를 포기했는데 그러고서 도착한 곳이 그 많고 많은 곳 중에 또 하필 다른 추억의 장소라니.


남들에겐 사실 별 의미 없는 일로 보일 것을 나도 안다. 그렇지만 나는 그 길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다만, 그녀가 또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 허리를 펴고 꼿꼿이 서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기다리던 던킨도넛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고 싶어 애쓰는 모습이 우스웠고 가슴 한편이 시큰했다.


나는 아직도 그녀와 주고받은 메시지, 특히 마지막으로 여기서 멈추자는 이야기를 나눌 때의 메시지를 다시 보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그 절절한 문장들을 읽으면 가슴이 많이 아프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번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 마음을 나는 영 보내지 못할 것 같다. 그 말을 듣고서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때가 올까..?


이직으로 지원한 회사는 잘 결정됐는지. 출퇴근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 데로 가게 됐는지. 목요찬양집회는 이번 주에도 다녀왔는지. 새로 온 베이시스트와는 합이 잘 맞는지. 내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 부족한 자기가 감당할 수 없다던 그 말이 구체적으로는 어떤 의미였는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면 그 좋은 걸 누구보다 자기가 갖고 싶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녀의 말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으면서도 자꾸만 어깃장을 놓고 싶은, 어떻게든 되돌려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는다.


관련된 일들이 떠오를 때마다 그 방향을 향해 마음을 걸어 보낸다. 그 길 끝까지 다다르면 더 이상 이 마음도 걷기를 멈추겠지 바라면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내 어리석음으로 놓친 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오히려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하심과 계획을 믿을 수 있도록 연단받는 시간이라고 믿고 싶다. 아브라함이 자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보았던 것처럼 나도 다른 수를 쓰고 싶은 마음에 애가 타지만. 예수님을 처음엔 따라가지 못했지만 이후에는 예수님을 따르게 되어 사도로 쓰임 받았던 베드로처럼 나 역시 온전하게 성장하는 과정이라 믿는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 11:40


그녀를 만나기 전에 받았던 말씀이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 나의 길을 내가 결정하고 주장하던 삶으로부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으로 초대하시고 오래 기다려주신 하나님을 향해 이미 나는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니 이번 일들도 그 안에서 의미를 가지고 나는 감사와 기쁨으로 가슴을 활짝 펴고 믿음을 지키려 한다.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라도 내가 다시 생각나고 그 생각이 기도를 통과하고서도 살아남는다면 나한테 연락을 해주길. 언제라도 기쁘게 받고 당장에 움직이겠다고.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이 사랑에 대한 일기를 마무리하고 싶다.


Soli Deo Gloria!

ほんとうにたのしかった!

녜!


(4편 - 사랑이 끝나고 난 후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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