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 4편 - 사랑이 끝나고 난 후에)
새벽에 일어나 거리로 나오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골목에서 노란 조끼를 입고 공공 근로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거리에 쌓인 크고 많은 쓰레기 더미를 차에 싣는 미화원들, 아직 몇 없는 차와 버스와 택시들. 늘 북적이고 가득 찼던 도심 한가운데에서 느껴지는 적막함이 낯설기만 하다. 그리고 여타 교회와 달리 찬송가 반주가 배경으로 깔리지도 않고 그저 고요함과 침묵만이 가득 찬 우리교회 새벽예배 같은 것들.
어젯밤엔 쉬이 잠들지 못해서 내일 새벽 기도는 도무지 무리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찌어찌 눈이 떠지고 자리에서 몸이 세워졌다. 십분 남짓 시간 동안 옷을 챙겨 입고 나서야 예배시간에 늦지 않기에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서는 찰나, 난데없이 시간이 멈추고 하나님의 존재를 강하게 느꼈다. 지금 이 순간 그저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만 오롯이 떠올랐다. 나도 아니고, 그녀도 아니고, 그저 하나님만 계시다는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은 지극히 온당한 느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나의 수단이나 다른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분이 아니었다. 나는 내 마음의 욕심과 육신의 정욕을 위해 대게 기도제목을 선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어떤 우리의 소원에도 앞서 그분 존재만으로 충분히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위해서, 나의 행복을 위해서, 도처에 널려있는 기도제목들을 위해 새벽에 일어났지만 사실은 그것들은 다 부차적인 것들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시고 이 시간 깨우셔서 당신 앞으로 나오게 하심이 훨씬 중요한 사실이었다.
어젯밤에는 그녀와 전화통화를 했었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탄천변을 오래 혼자 걷다가 이내 마음을 굳히고 그녀에게 통화를 할 수 있는지 문자를 보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던 천변의 보랏빛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코끝이 시린 초겨울 공기 덕분에 공중에 부유하던 날벌레들도 자취를 감춘 깊고 청량한 밤이었다.
전화를 반드시 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운 건 아니었다. 한 주간 그녀 생각이 무시로 났고 그 생각을 떨쳐내고자 일기를 쓰고, 그 일기를 종이에 출력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며 이 감정을 객관화하려 애썼다. 거리가 생겨나기를 바랬다.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수많은 후회들, 아쉬움들이 사무치게 눈앞을 가렸다.
그녀의 포기 연락을 받은 지 며칠이 지나고 나서는 나의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정말 호감 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세 번째 만난 날 내 이혼 이야기를 했고 이 사람이 떠나갔다고. 이야기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을 표했고, 개중 몇은 한 번쯤 연락해봐도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조심스레 비추기도 했다.
나 역시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게 되면 극도로 아끼고 소중한 나머지 작은 행동 하나마저 조심하고 검열하게 되어서 더 어려웠다. 내가 너무나 존중하고픈 사람이 나에게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려 전달해줬는데 거기에 또 한 번 어깃장을 놓는 게, 내 욕심에 취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 여겨졌다.
또 여자들은 한번 생긴 애정을 버리기는 어려워도 일단 정리하고 나면 일말의 여지도 없이 완전히 끝내버린다는 이야기도 떠오르기도 했다. 이미 나를 거의 다 잊고 자신의 리듬으로 완벽히 적응했을 거란 걱정도 됐다. 그럼에도 연락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상대를 너무 배려한 나머지 흔히 말하는 ‘보편적인 남녀의 성향’을 간과한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나는 평소에 남자가 교제의 시작이나 결혼을 리드해야 진전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매우 싫어했으므로, 내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전개하는 것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내 생각이 나를 포함한 소수에게만 유효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자가 좀 더 용기를 내주기를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거나, 혹은 남녀의 역할에 집중하지 말고 그냥 남자가 총대를 메면 모든 상황이 평화롭게 흘러갈 수도 있다는 걸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됐다.
또 다른 요인은 내 안에서 계속되는 애타는 심정이었다.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잿더미만 남은 마음이 공허해서 자꾸 휘청대는 이 시간을 정리할 계기가 필요했다. 그녀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목소리도 듣고 싶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한번 더 명확한 대답을 반복해 듣는다면 비록 상처는 받겠지만 이 마음이 정리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 계속 연락하고 싶어서 참다가 이제 해요. 잘 지내요? 나는 당신 생각이 너무 많이 났어요. 당신은 아니었나요?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너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솔직한 심정을 전하고 싶어 미리 메모장에 대본을 적었다.
- 내가 좋아했던 거 알죠? 그리고 나는 같이 손잡고 예배드리러 갈 수 있는 남자인 것도 알죠? 그리고 기도 중에 나와 함께 하는 모습에 대해선 받은 마음이 전혀 없었나요? 나는 있었는데.
이어서 가장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을 추리고 또 추려서 적었다.
만약 상대가 여전히 거절과 포기의 의사가 동일하고, 나와 전혀 다른 온도라면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할지도,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을지도 고민했다.
- 좋아요. 알겠어요. 그럼 남자로서의 마음은 이제 확실히 접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남녀로서가 아니더라도 그냥 오빠 동생으로서도 괜찮을 것 같아요. 혹시 나중에라도 생각나면 그냥 친구로 만나서 수다 떨어요. 일단 끊을게요 안녕!
까지 고민해서 적었다. 마지막 말은 하지 않게 된다면 더 좋을 텐데, 만약 해야 할 상황이 된다면 내가 이 말을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우리는 조금 어색했다. 통화는 처음이었고 우린 종결된 사이였으니까. 잘 지냈어요? 물었을 때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애써 가슴을 쭉 피고 당당하게, 마땅히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직면하자고 되뇌면서 미리 준비한 말들을 그녀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아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 걸 조금은 아는지, 내가 한 주간 얼마나 당신 생각을 많이 했는지, 이렇게 한 번은 전화를 할 수밖엔 없었던 이유에 대해.
그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본인 역시 한 주간 마음이 너무 슬펐다고, 많이 힘들었다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가까운 목사님께 상담도 받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고 말했다. 내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였다.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높은 확률로 거절이나 불편한 기색을 들을 걸 예상했는데 오히려 내가 느꼈던 부대낌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도 같았다고? 이 애끓는 마음이 일방향이 아니었다고? 자꾸 생각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고 마치 꿈만 같았다.
그녀의 이어진 이야기는 나를 계속 놀라게 했다. 그녀가 우리 관계를 더 지속하기 어렵겠다고 포기한 이유가 내가 십 년 전 이혼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다음에 만났던 사람을 오래 만났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오래 만났다면 그 사람과 쌓아온 추억과 애정이 아주 깊을 텐데 본인이 그걸 대신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본인이 관계적으로 받았던 상처가 깊어서 이 상처를 극복하고 나의 상처까지 보듬어줄 자신이 없었다고도 했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한 채 탄천변 어두운 길가에 멈춰버렸다. 내 기준에서는 고민의 축에도 못 들 것 같은 그 문제가 그녀에겐 자신의 마음을 부정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문제였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 설명했다. 억지로 설득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녀의 걱정과 다른 실제 내 마음과 상황을 설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녀가 본인의 의지로 이에 대해 다시 한번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길 바랬다. 마치 하나님이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에게 모든 자유의지를 허락해주신 것처럼. 억지로 유도해서 만든 결정은 진정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나는 그녀가 자신의 의지로 나를 이제는 선택해주었으면 했다.
나는 이전 사람의 자리를 메워줄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고. 그 사람은 그 시절을 함께 했고 그 시간 동안엔 즐거웠으나 더 이상 함께 할 수 있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 헤어짐을 결정한 것이라고. 그렇게 헤어졌고 그 시절도 함께 갔다고. 나는 당신에게 반한 거지 당신이 내게 어떤 역할을 해달라고 당신을 선택한 게 아니라고. 나는 우리가 다른 누구와도 다른 우리만의 호흡과 조합으로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내게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또한 나는 당신의 상처를 구체적으론 알지 못하지만, 당신이 불안해하는 그것에 마음이 쓰인다고. 또 할 수만 있다면 나를 통로 삼아 나를 계기로 삼아 당신의 그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다면 너무 기쁘고 영광일 것 같다고. 어떤 악한 사람이 귀한 당신에게 악하게 한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마음이 허락한다면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이야기를 듣는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완전히 닫힌 줄 알고 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나는 그 변화에 온몸이 저릿했다. 지인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뇌리를 스쳤다. 상대도 분명 호감이 있는데 용기를 못 내는 걸지 모르니 한 번은 더 시도해보라던 말이, 내가 별로 신뢰하지 않았던, 일견 편견처럼 들렸던 그 말이 실제로 효력을 나타내고 있었다. 만약 이렇게 다시 말할 기회 없이 서로 아쉬운 마음만 안고 관계를 접어야 했다면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아찔했다.
결국 우리는 조금 더 만남을 가져보기로 합의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없지만, 마음이 계속 쓰이고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슬프기 때문에 좀 더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겠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나는 이 전개를 믿을 수가 없어 깜깜한 밤하늘을 계속 올려다봤고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아 구두 신은 발로 제 자리에서 콩콩 뛰었다.
전화해줘서 고맙다는,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보러 나가고 싶은데 상황이 그렇지 못해 아쉽다는 그녀의 인사말을 들으며 황홀하게 전화를 끊었다.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긍정적인 통화의 종료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었다. 그저 예쓰, 예쓰를 외치며 주먹을 꽉 쥐고 이 기쁨을 누렸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한 번 더 문자로 아까 통화 내용을 못 박았다. 그녀의 두려워하는 마음이 행여라도 우리가 서로 통했다는 사실을 없던 일처럼 외면하게 만들까 봐. 한 자 한 자 소중하게 고르고 추려서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솔직하게 그녀에게 전달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데 메시지가 도착했다. 주문한 적 없는 택배 도착 메시지에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웬걸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내용물은 귤 한 박스이며 내 매장으로 도착 예정이라는 내용이 함께였다.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늘 도착한다는 건 적어도 지난주 목, 금요일에 보냈다는 건데 그렇다면 그녀도 내 생각을 가족들과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계속했다는 뜻이었으니까. 심지어 본인이 내게 못하겠다고 말해놓고서 본인이 먼저 나에게 선물을 보냈다는 뜻이었으니까.
택배를 받아들고서는 푸하하하 정말 큰 소리로 웃음이 터졌다. 귤 사이에 수줍게 들어있는 카드를 열어보니 좋아한다는 말만 없을 뿐 후회하고 미안하고 다시 연락 달라는 의중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었고 카드 앞면에는 귀여운 토끼가 자기 몸보다도 큰 빨간 하트를 펼쳐 놓는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다. 내 매장은 또 어떻게 알고 탐정처럼 찾아 보낸 건지 이 모두가 신기하고 믿을 수 없고 한 편의 콩트처럼 드라마틱해서 자꾸만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결국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다시 만나게 되었다. 거절과 포기의 짙은 터널을 통과해 그 길의 끝에서 같은 하늘 아래 마주하게 되었다.
이런 전개를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저 감사, 또 감사를 되뇔 뿐이었다. 하나님의 생각과 때는 사람이 알 수 없으며 결국 내게 선하게 좋은 것으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했던 기도의 내용이 기쁨 가운데 떠올랐다. 삼십분 넘게 가장 예쁜 것들로 선별해 직접 따서 보냈다는 귤 맛은 정말이지 달콤하고 동시에 새콤했다. 사랑의 맛.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됐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