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해우소

나, 이렇게 배신당했다...

직장생활에서 처음 맞은 뒤통수 한 방!

by 도연아빠

25살, 9급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맡은 업무는 계약과 예산편성이었다.

공립도서관에서 용역직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대략 기록물관리, 서무 등 잡무를 맡을 거라 생각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업무라서 당황했고 자신이 없었다.

나는 선임에게 머뭇거리며 소심하게 말했다.

'저...'


'무슨 일인가?'


'예산편성은 물어보며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계약은 무리라고...교육도 받지 못했고...'


'이봐, 교육은 무슨... 행정고시 출신이야 뭐야, 실무자급 업무는 배워가며 하면 돼!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고.내가 알려줄께.'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난 계약관(재무관 보조)이 되었고 선임은 지출관이 되었다.


의외로 일은 쉬웠다.

업체에서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모든 절차를 알려 주웠기 때문이다.

내가 계약 체결, 또는 정산 관련 공문서만 만들어서 결재를 올리면 지출관이 된 그 선임은 곧바로 결재 처리를 해 주웠다.

어떻게 지출관이 재무관 업무를 결재하느냐... 그 이유는 재무관인 과장이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공문서 만드는 업무만 해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일주일에 4일은 10시 퇴근이었다.

토요일 오전에도 남들은 놀 때 나는 업무를 처리했다.(2005년 6월 말 까지는 주 6일 근무를 했었다.)

몸은 바빴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지적받지 안으니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납품기일 또는 준공일자는 잘 지켜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6개월이 지나자 공무원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새로운 과장님이 오시기 전까지 말이다.



'으메...깡패구마이...'(신임 과장님의 고향은 전라도 장흥이다.)

'...'

'이거~잉 다 책임질 거지?'

'...'

'공사대금은 하도급사에 직접 지불해야 되는 거 몰라? 그리고 정산 서류는 이게 뭐야! 5천만 원 이 회사에 주는 게 맞아?'


비참했다. 그리고 이 기관에 모든 인간들을 죽이고 싶었다.

젊은 친구가 열심히 한다며 칭찬해주던 직장 동료라는 인간들이 나를 속인 것이다.

업체에게 돈이 지불되는 모든 사안들은 계약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공사가 예정보다 늦어져도 미리 주위를 주지 안으면 계약담당자의 직무태만이 되는 것이다.

물론, 감독관을 사업담당자로 지정하면 되지만 그러한 것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몇 시쯤 퇴근하냐?'

'10시쯤 합니다.'

'이거 정리될 때까지는 퇴근생각말어라잉.'

'네.'


약 3달간 과장님과 함께 지난 8개월간 내가 처리한 일들을 복기했다.

계산이 잘못된 것이나 대금이 하도급사에게 지급되지 못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정산을 하는지, 내역 검토는 어떻게 하는지 학습하는 시간이었다.

과장님께 욕을 먹기는 했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감사를 받았다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이때 재미난 일이 하나 있었다.

청소용역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건과 관련된 것이다.

내게 계약관 업무를 넘겨준 선임자는 청소용역업체와 3억짜리 수의 계약을 체결했다.

업무 처리가 늦어져 내가 임용을 받고 1달 후에 계약이 체결되었다.

그때 결재란에 담당자로 그 선임이 결재를 했다.

그리고 신임과장님이 오시고 계약업무는 다시 그 선임에게 넘어갔다.


내가 잘못한 일을 정리하고 새 해가 되어 본부 감사를 받게 되었다.

과장님이 미리 정리해주신 덕에 주의 정도로 방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청소용역과 관련하여 1천만 원 정도 환수해야 하는 일이 발생되었다.

내게 감사관은 선임자를 불러오라고 했다.

'계장님, 청소용역과 관련해서 1천만 원 정도 환수해야 한답니다.'

'뭐야,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내가 똑바로 하라고 수차레 말했잖아!'

이 말을 듣자마자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다.

결재를 올리면 올리는대로 처리하고 아무 말도 없던 인간이...

'계장님이 하신 겁니다. 감사관이 모셔오라고 해서 말씀 전하러 온 겁니다.'

'내가 그랬다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감사관의 말을 전한 것입니다.감사관의 지적사항은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게 많아서요.'

지금 생각해도 내가 당시에 한 말은 매우 통쾌했다.


감사가 끝나고 과장님이 술을 사주셨다.

'넌 참 운이 좋아. 주의 정도로 끝나고 말이야. 그건 그렇고... 어떻게 생각해?'

'뭐를 말씀하시는지...'

'동료들 말이야, 어떻게 생각하냐고!'

'같이 밥 먹는 것도 말을 섞는 것도 너무 싫습니다. 처음 와서는 사무실 분위기가 왜 이런가 했는데 이제 알겠어요. 과장님이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저 혼자 잘못한 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 나쁜 놈들이긴 하지... 그래도 네 잘못이라 생각해. 25살이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업무 처리하다 불안하면 법 규정도 알아보고 감사관실에 물어보고 처리할 생각을 했어야지 주변 사람들 말만 듣고 말이야.

잘 들어. 법대로 일 안 하면 공무원이 아니고 깡패야 깡패!'

'...'

'너는 더군다나 나와 같은 9급 출신 아니냐. 작은 실수 하나를 해도 9급이라서 그래 이런 말 듣게 된다고. 난 면전에서 비웃음 당하는 게 더 가슴 아프더라. 너도 이런 일 당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꼼꼼하게 일해.'


나는 이때부터 선임자 말이나 관행적으로 처리해온 일들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깡패가 아닌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금 년 4월 말, 그 과장님은 부이사관으로 명예퇴직하셨다.

12년간 공직 생활하면서 그분처럼 멋지고 본받고 싶은 선배는 없었다.

9급 출신이어도 말이다.


신규 9급 공무원 중에 계약 업무를 맡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

깡패가 되지 않으려면 관련 법규를 꼭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매우 사소한 태극기를 거는 법, 구매해야 되는 태극기의 사이즈도 모두 법에 규정되어 있다.


아울러 공사라면 반드시 설계사에 용역을 받아서 발주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과정 별로 누락될 수 있는 것들을 설계사가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사원에서 하는 계약담당공무원 교육을 꼭 이수하길 바란다.


끝으로 2년 이상은 계약업무를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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