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예를 들자면...
우리 앞에 비료와 낫이 놓여있다.
여러 꽃 중에 2개를 골라야 한다.
하나는 비료를 주고
하나는 낫으로 가지치기 할 꽃 말이다.
어떤 꽃에 가지치기를 할지는 간단하다.
잔가지가 많아 지저분한 것을 고르면 되니 말이다.
무언가 변화된 즉각적인 시각 효과도 최고다.
비료는 어떨까?
시들한 꽃에 비료를 준다고
바로 활짝 피는 것이 아니다.
거기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 들도 제각각이라 가정해보자.
비료를 뿌릴 꽃이 정해지기까지
사람들은 2가지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1. 꽃에 대한 전문가는 누구인가?
(대학의 원예학과 교수 또는 꽃집 사장님?)
2. 전문가들이 정한 배분 기준은 공정한가?
(우선 순위는 가장 희귀한 꽃인가 시들어가는 꽃인가?)
위 2가지 기준이 정해진다고 해도
낫으로 가지를 치는 것만큼의 시각적 효과를
단 시간에 보기 어렵다.
그러다 보면 이제라도 남은 비료를 다른 꽃에 주자거나
기존 전문가들은 역량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선택받지 못한 꽃 애호가들에게 듣게 된다.
이래서 규제보다 지원에 관한 법률은 제정되기도 어렵고
제정된다고 해도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가 그룹이
없다면 수많은 부침을 겪게 된다.
결국 집단 내에 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그 들에게 믿음을 주는 전문가가 있어야
지원책도 효과를 보게 된다.
정부에게 특정 지원책을 요구하는 모든 단체들...
이런 고민을 먼저 했으면 좋겠다.
왜 세금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가?
지원을 받은 후에 전문성과 청렴함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을 가지고 있는가?
끝으로 그 전문가 그룹을 일정기간 믿고 신뢰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고민 또는 준비 없이
지원만을 요구하는 단체는
독재정치를 바라는 집단,
그냥 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