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해우소

1997년, 비정규직의 탄생

적폐의 탄생

by 도연아빠

2005년 입사 당시 내게 가르침을 주신 선배들의 연배는 대부분 1955~1958년생이었다.

첫사랑은 평생 마음에 남듯이 그분들도 내 삶에 그렇듯 기억될 분들이다.

그분들 중에 아버지 같은 상사 한 분이 계신다.

그 사연은 이렇다.




2004년 대전 교육청 소속 기관의 당직근무자(용역)로 1년간 근무를 했다.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근무를 했지만 직장 분위기가 화목해서 마음은 편했다.

불만이었던 유일한 것은 월급 64만 원이었다.

당시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며 1년 안에 붙자고 생각했기에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무원 중 한 분이 내게 부탁을 했다.

나를 파견한 회사에 내 급여 명세서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한 것이다.

그때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대가로 파견회사가 받는 돈을 처음 알았다.

180만 원

이 금액에서 64만 원만 내 거라니...

거기다 국민연금 3만 원 때면 61만 원...ㅠㅠ

팩스를 보내고 나서 그 공무원에게 농담을 했다.

"선생님, 저랑 직접 계약하시면 어떠세요? 저 100만 원 80만 원은 부서 회식비로 해요!"

이 말을 듣고 그분은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난 울고 있었는데...



2005년 공무원이 된 후 내가 맡은 업무는 예산편성과 계약이었다.

내가 처음 근무한 곳은 보안시설이었다.

그곳에도 용역직원은 있었다.(지금은 공무직이 되었다.)

용역 담당 직원이 내게 이런 요청을 했다.

"용역직원들 월급이 적어서 이직이 잦아요. 2006년 예산편성 때 월급을 올려주면 좋겠어요."


용역직원들 급여 자료를 받아보니 소장은 280만 원, 주임은 250만 원, 일반 기사는 120만 원 정도였다.

소장과 주임의 나이는 40~50대였고 당직 근무를 하지 않았다.

일반 기사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이었고 2인 1조로 당직 근무를 전담했다.

일반 기사들은 당직근무의 대가로 1일 1만 원의 수당을 받았다.

내가 1년 전 받은 것보단 높지만 이 월급으로 생활이 될 거란 느낌은 받지 못했다.

나야 알바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인 것이지만 말이다.


2005년 내가 했던 계약 중에 보안설비 강화 시스템 설치가 있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세콤 설치하는 것이다.

내게 용역직원 급여를 올려달라는 직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시스템 보안 공사요. 직원들이 자주 퇴사하고 입사하면 무의미한 것 같은데요.

인건비 인상이나 직접 채용을 먼저 완료하고 그 다음 공사하는 게 올바른 순서 아닐까요?"

(그분이 공사도 담당했다.)

"도연 아빠, 여기 용역직들 중 나이 많은 사람들은 IMF 전에 공무원이었어.

이 사람들 인건비를 공무원 수준으로 올려달라고 하면 윗 분들에게 욕먹지.

다만, 요즘 기사들 이직이 잦으니까 우리가 성의는 보이고 있다는 모습을 용역직원들에게 알리자는 차원이지."


"이 분들도 공무원이었다고요?"




1998~2000년은 공공기관 내 직장 공동체가 해체되는 시기였다.

2001~2004년은 공공기관에 비정규직 제도가 정착된 시기였다.

이 세월 동안 가족이었던 동료들은 원수가 되었다.

공무직(청소, 보일러 관리 등) 직종 중 어느 직종을 파견직으로 할지 직원들끼리 투표를 해서 정하게 했기 때문이다.

2005년에도 비슷한 요구자료가 재정부를 통해 내려왔다.

"임업직과 통번역직 중 용역 전환이 가능한 직종을 선택해서 제출해라."



"과장님, 2006년 예산안입니다."

"기간제 근로자 및 용역직원 인건비가 올해 대비 7% 올랐네?"

"네, 공사비를 줄여서 4% 재원을 마련했고 순수 증가는 3%입니다."

"재정부 가면 삭감될 위험이 있는데... 자네가 책임지고 설득할 수 있으면 그대로 가고."

"네, 해보겠습니다."



"순수 증가는 3% 정도입니다."

"그래도 7% 인건비 증가는 다른 기관들보다 크게 높은 대요."

" 보안 시설인대 월급이 적어서 용역직원들 이직이 너무 빈번합니다.

사람들이 자주 바뀌는데 어떻게 보안이 유지되겠습니까?"

"보안 담당하는 용역직원 인건비 인상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기간제 근로자는 안 돼요.

선생님 이야기대로라면 비정규직을 뭐하러 운영하겠습니까."

(이때 과장님이 나서 주셨다.)

"사무관님, 이 친구 올해 처음 입사한 직원입니다. 고민해서 작성한 자료입니다.

우리 기관은 몇 년 전 도난사건도 있었습니다.

신입사원 기도 살려줄 겸, 원안대로 반영해주시면 합니다."

"신입사원이군요... 고민해보겠습니다. 멀리서 서울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 얼굴이 노안이다.)




우린 밤에 근무지로 내려왔다.

귀가하기 전 호프집에서 소맥을 했다.

"과장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쉽지 않네요."

"자네 애인 때문에 인건비 올려 줄려는 거 아냐?"

(그때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하고 있는 도연 엄마를 만났다.)

"에이, 과장님! 저도 작년에 용역직원이었어요. 얼마나 나쁜 제도인지 아니까 그런 거죠."

"농담이야. 오늘 만난 재정부 직원 미워하지 마.

공무원은 법과 정책 내에서 일하는 직종이야.

지금 정부의 정책이 파견직종을 발굴해서 양성하자는 추세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결국 2006년 용역직원 인건비는 7% 인상이 되었다.

공무원이 되어 처음으로 공직자로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오늘 그분이 올해 공로연수에 들어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문득 이 비정규직 제도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국가법령정보시스템에서 규정을 찾아보다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180만 원의 1/3이 내 월급이라는 것을 확인한 그 날처럼 말이다.


근로기준법 [시행 1997.3.13.]

산업구조의 변화와 고용형태의 다양화에 따라 고용관계를 신축적으로 운영하며 경직적인 근로시간제도를 유연화하는 등 고용관계 및 근로시간제도를 현실에 부합되도록 근로기준 제도를 합리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하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것임.

①이 법은 헌법에 의거하여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하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함.



난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비정규직 제도가 기업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았다.

비정규직 제도의 입법 취지에 동의할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이 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가?

퇴직금으로 치킨집 하다 부도 후 자살한 근로자

부당한 사용자의 갑질에 저항하다 해고당한 후 자살한 근로자

해고를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고 자살한 근로자


난 이 법이 공무원 공기업 취업 열풍의 원인이자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에 집중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강산이 2번 변했다.

이 법을 만든 살인자들을 찾아낼 수 없을까?

이 법을 만든 살인자들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찾을 수 없다면 이제라도 모든 국민이 정부 및 국회 입법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금도 근로자를 위한다며 근로자의 목숨을 빼앗을 법들이 예고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끝으로 험한 시대를 거쳐 정년퇴직을 앞둔 나의 과장님,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에게 애도와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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