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중2병과 함께 찾아온 pc통신
1994년 여름의 더위는 매우 고약했다.
내 모교인 대전 동중학교는 필리핀식 설계로 건축된 학교라서 더 힘들었다.
필리핀식 설계는 복도 외벽 없이 교실 창문을 열면 운동장이 보이는 개방형 구조를 말한다.
과거에 필리핀이 우리나라의 롤모델이 된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내 모교는 그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지금은 다른 장소로 이사 갔고 명칭도 우송중학교로 변경되었다.)
학교를 다니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필리핀의 기후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여름에 바람이 잘 불어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고 말이다.
왜냐면 우리 들은 그 반대의 환경에서 고생했기 때문이다.
유난히 더웠던 그 해 여름...
수업이 끝나면 교복 바지에 땀으로 엉덩이 라인이 나타났고
교실의 창문을 오래 열어놓아도 수컷들의 땀냄새는 옅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것이 교실 안의 내 친구 가방 안에 있었다.
점심시간에 a4용지를 집중해서 보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 등 만화책을 돌려보곤 했었다.
그런데 만화책이 아닌 것을 흥분된 자세로 바라보는 녀석이 이상했다.
"야, 뭐여?"
친구는 놀라며 책상 밑으로 그 인쇄물을 집어넣었다.
"이거 우리 형 거야. 내용이 위험해서 돌려보면 큰일 나."
"너네 형, 고등학생이잖아. 데모하는 대학생도 아닌데 뭔 소리여."
그 친구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어서 영화를 보기 위해 놀러 간 적이 많았다.
"내가 "타이 대모험" 다 보여줬지? 그럼 인마, 너도 보여줘야지!!!"
친구는 잠시 고민 후 갑자기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은 안 돼. 보는 눈이 많아서 위험해... 오늘 학교 끝나고 우리 집 갈래?"
나는 영화를 같이 보는 날도 아닌데 왜 이러나 싶었다.
"알았어. 별거 아니면 라면은 네가 사."
친구는 매우 빠른 행동으로 a4용지를 가방에 넣었다.
"라면은 네가 사게 될걸...ㅎㅎㅎ"
A4용지를 잡고 있는 내 손이 떨렸다.
동시에 몸이 뜨거워지며 신체 부위 중 일부가 솟아올랐다.
내 모습을 보며 친구는 씩 웃었다.
"꼴려? "
"너네 형, 이과 아니냐? 글솜씨가 와룡강(무협지 작가)보다 대단한데!
특히 버스 안에서 주인공 행동 묘사는 정말..."
"이거 우리 형이 쓴 거 아냐. 하이텔에서 다운로드한 거야."
"하이텔? 거기 가입하면 이런 거 많이 있냐?"
"나도 잘 몰라. 그런데 형이 출력물을 보관해두는 파일철이 있어."
"더 볼 거 없어?"
"파일철에 있는 건 다 보여준 거야."
"너 하이텔 할 줄 알면 형 없는 지금, 출력하면 되잖아. 내가 매일 라면 살 테니 해봐!"
"걸리면 형한테 죽어. 그리고 잉크값이 엄청 비싸대."
"이거 같이 보자고 애들한테 돈 내라고 하면 잉크값은 금방 모이겠는데?"
"학교에서 돌려보다가 선생님들한테 걸리면 어떻게 되겠냐? 난 책임 못 진다."
"그러면 하이텔에 들어가 볼 수 있어?"
"그건 해줄 수 있지. 형 방으로 가자!"
전화선으로 모뎀을 통해 연결되면 보이는 감청색 바탕화면에 하얀색 글씨들...
어디를 어떻게 들어가야 야한 소설을 더 볼 수 있는지 몰랐지만 계속 접촉... 아니 접속하고 싶었다.
"컴퓨터로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난 공부할 때만 필요한 기계인 줄 알았어."
"우리 형도 컴퓨터로 공부만 하는 것 같진 않더라고."
1990년대 초,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초등학생들의 롤모델인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컴퓨터 학원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환경 덕에 나는 컴퓨터가 공부만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나도 하이텔에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가 갖고 싶어 졌지만 금세 단념했다.
아버지의 2달치 월급이 있어야 컴퓨터 1대를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이텔"
그곳은 PC가 사람을 몹시 흥분시킬 수 있는 놀이도구 기능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곳이었다.
또한 친구와 함께할 때만 갈 수 있는 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