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여행가기 힘들어?
돌고 돌아, 엄마 아빠랑
프롤로그.
1. 나의 여행은
스물하나. 해외여행을 처음 다녀온 내가 느낀 것은 '더이상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될 수 없다.' 였다. 세상은 내가 살던 세계와는 달랐다. 넓고 새로운 것들이 많은 반짝거리는 세상. 그 새로움을 나만 느낄 수 없기에, 나는 동생을 데리고 다시 외국을 나갔다.
군대를 막 갔다온 동생에게 왕복 30만원의 비행기 값만 내라고 했다.
나머지는 다 누나가 할게.
중소기업의 박봉이었지만 제대&생일 기념으로 좋은 것만 해주고 싶었다. 한참 해외여행, 혼행(혼자 여행) 등이 이슈였는데 그 중 동남아로 여행가기가 최고였던 지라, 동생의 첫 해외여행이라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무리를 했다. 원래 여행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던가.
빌려서 갔다가 오면 갚기 시작하는 그런 거.
5박 6일의 방콕여행은 고급 스파와 5성급 호텔의 이그제큐티브룸, 우리만 참가하는 단독 투어 등으로 채워넣었다. 하지만 동남아 특유의 덥고 습한 기후가 동생의 취향과 1도 맞지 않은 것을 가서야 알았다. 익숙하지 않은 기후와 음식들, 좋은 곳을 데려가기 위해 블로그를 열심히 찾느라 핸드폰만 보고 있는 나까지 동생은 모든게 스트레스 였다고 했다. 동생의 스트레스를 알아주지 못한 나와 누나의 마음을 알지 못한 동생은 매일 매일 전쟁이었다. 스물 셋과 스물 다섯 남매의 첫 여행은 그렇게 망쳐졌다.
그 이후 나는 친한 언니 혹은 친구와 해외 여행을 다녔다. 다녀왔던 여행지가 좋으면, 다른 사람과 또 방문하다보니 갔던 곳에 세 네번 가는 것은 예사였다. 다니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고 싶은 곳도 많아서 매번 같이 가보자고 말씀을 드렸지만,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가게 문을 닫고 여행을 가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어머니를 모시고 일주일간 영국여행을 다녀왔다. 알고보니 아시아에서 단 1명만 뽑는, 영화 시사회에 당첨된 것이었다. 친구는 사비를 들여, 영화사에서 제공하는 기간보다 더 길게 영국에 머무르며 여행을 즐기다 왔다고 했다. 어느 시사회나 그렇듯 1인 2매의 표였기에, 친구는 가벼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면 효도도 되고 좋겠다라는 생각했댄다. 처음 외국발 비행기에 오르는 어머니의 표정이 한 것 들 떠있어, 20대 끝 무렵에나 효도를 하는 것 같았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발등에 불 떨어진 느낌이었다. 누가 더 효녀인가에 대한 내기는 아니지만, 첫 비행기를 타는 엄마의 설렘을 나도 보고 싶었기때문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최씨와 권씨의 고집을 누가 꺽겠는가.
바로, 최씨와 권씨의 피를 이어 받은 나다.
2. 밑작업 들어 갑니다.
우리 집 가족 행사는, 가족들의 생일과 부모님 결혼 기념일이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하다 부모님 결혼 기념 29주년이 되던 해에는 리마인드 웨딩 사진을, 30주년에는 해외여행을 보내드리자 마음을 먹었다. 외국으로 여행을 가려면 여권이 필요하니, 겸사겸사 찍으면 될 거 였다.
가장 예쁘게 꾸민 날, 포토그래퍼께 몰래 여권 사진도 요청 드려 사진을 구하고, 해외 시사회 당첨된 친구를 예시 들며 부모님께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여권은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제 30주년 기념 여행 설득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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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권유에도 찬성을 하지 않으신다면 어떡해야 할까.
똥고집, 쇠고집. 몇 년간의 설득과 권유에도 통하지 않아서 포기해야 할까도 싶던 어느 날 기회는 찾아왔다.
아빠는 유복자였기때문에 하나 뿐인 형의 말이라면 껌뻑 죽었다. 아빠가 순진했던 탓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흔히들 말하는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난 생각한다. 아빠는 큰아빠와 고모들에게 있어서 허울 좋은 샌드백이었고, 허수아비였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아빠는 나이 많은 형을 항상 애닳파했다. 그래서 아빠에겐 여행따위는 사치였다. 평일에 가게를 열어야 한다는 핑계로, 아빠는 여행 갈 시간에 농사짓는 형을 돕고싶어했고, 형의 생일과 집안 제사를 챙기고 싶어했다. 그런 아빠가 여행을 결심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큰 아빠 생신 날 아빠는 큰아빠 댁에 가기 위해 채비를 끝마치고, 출발한다고 전화했는데, 이미 큰아빠 식구들은 가족 여행 중이었다. 아빠가 매년 생일 축하를 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연락이 없다, 내려간다는 전화에 아차 싶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제주도니 큰 집으로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현타가 온 아빠는, 덜컥 추석 날 딸이 해외여행 가자고 해서 못 간다고 얘기했다. 부모님 결혼 30주년이 되던 해, 이렇게 갑자기 여행날이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