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 여행

주제 : 민들레

by 슈오

아이는 잠이 오지 않는지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손주를 쓰다듬는 손이 멈추더니 할머니는 잠이 올락 말락 하는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할미가 재밌는 이야기 해줄까?”

“응!”


이야기를 더 잘 듣기 위해 아이는 할머니의 무릎 위에 고개를 묻고는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의 손을 붙잡았다. 그런 아이가 귀여운지 할머니는 다른 손으로 아이의 눈을 가려준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아, 이야기는 눈을 감고 들어야 더 재밌는 거란다. 상상도 되고 말이지.”

“네에.”


아이의 대답에 할머니는 푸스스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자, 이건 네 또래 장난꾸러기의 이야기란다. 이 장난꾸러기는 들에 핀 꽃들이 보이면 못살게 굴고는 했지.”

“어떻게요?”

“이유 없이 꽃을 짓밟고, 뜯어내고 했단다.”


할머니의 말에 아이는 놀라 제 입을 가렸다. 며칠 전 밭일하는 할머니를 지켜보다 제 옆에 핀 꽃을 한 줌 뜯어낸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헙, 할머니 나도, 나도 그랬는데?”

“생각해보렴, 애들이 얼마나 아팠을까?”

“미안해, 꽃들아….”

“그러던 장난꾸러기를 보다 못한 꽃의 여왕은 아이를 벌주기로 마음먹었단다. 아이는 여왕의 벌 때문에 하루하루 몸집이 작아지더니 결국엔 개미보다 작아졌지.”


할머니의 말에 아이는 자신도 그 벌을 받을까 무서운지 오들오들 떨며 손을 더 꽉 쥐었다. 할머니는 그런 아이를 달래듯 쉬쉬하는 소리를 내며 쓰다듬던 손을 등으로 옮겨 토닥였다.


“쉬쉬, 괜찮다. 괜찮아. 그 정도는 여왕님이 용서해주실 거야. 쉬쉬.”


제 등을 토닥이는 손에 아이는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가 눈을 껌벅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잠들었던 곳과 다른 환경에 아이는 믿기지 않는지 눈을 비벼보았지만, 할머니 무릎 위가 아닌 수풀 속이었다.


“나도…. 벌을 받은 거야….”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할 시간도 없이 흙먼지가 일며 무엇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비켜! 위험해!”


맨 앞에 있는 개미무리 대장의 외침에 아이는 놀라 뒤로 넘어졌다.


“괜찮아?”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해?”


불안한 아이의 모습에 민들레는 고개를 숙여 물었다. 아이는 울먹이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사과하면 되지!”

“사과?”

“응, 사과하면 용서해 줄 거야.”


울먹이던 아이는 민들레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민들레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꺾었던 첫 번째 꽃이었다.


“미안해, 함부로 꺾어서. 잘못했어요.”


아이는 차마 장난으로 꺾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 손에 들렸던 그 힘없는 꽃송이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아 진심으로 사과했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으니까 용서해줄게!”


민들레는 아이의 모습에 호쾌하게 웃으며 제 등을 내주며 말했다.


“그 작은 몸으로는 사과하러 다니려면 한 참 걸리겠는걸? 얼른 올라타!”


아이는 작은 손으로 민들레의 줄기를 움켜쥐고 기둥에 달싹 달라붙었다. 태양을 닮은 노란색 꽃잎은 어느새 하얗게 바래져 있었다.


“얼른 더 위로 올라와.”


민들레의 말을 따라 몽실몽실한 그 위로 올라가자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왔다.


“꽉 잡아! 이제 출발 한다?”


아이를 등에 업은 민들레는 홀씨가 되어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갔다. 어느덧 제 키보다 높은 곳까지 올라오게 된 아이는 제 발밑의 세상을 보며 아이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몽글몽글한 구름을 타고 가는 것 같아!”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민들레 홀씨는 속도를 높여 달리다가 움푹 파여있는 냉이꽃 주변을 발견했다.


“저기 아니니?”

“맞는 것 같아!”


아이의 말에 속도를 줄여 도착한 곳에는 하얀 냉이꽃이 울고 있었다. 움푹 파인 곳으로 드러난 뿌리가 추워 보였는지 꽃망울은 오들오들 떨며 흐느끼고 있었다.


“냉이 꽃아 미안해. 나 때문에 많이 아프지?”


아이는 자그마한 손으로 흙을 옮겨 뿌리 위로 덮어 주며, 제 할머니가 제게 하듯 토닥여주었다.


“미안해, 냉이꽃아, 자아. 아픈 거 싹 날아가라!”


아이의 손길에 냉이꽃은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지 눈물을 그쳤다. 그런 냉이꽃을 보며 아이는 다시 한번 허리를 굽혀 진심으로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흙을 덮어줬으니 용서해줄게.”

“자, 그럼 또 사과하러 가볼까? 얼른 올라 타!”


배시시 웃는 냉이꽃을 뒤로하고 아이는 홀씨 위로 올라탔다. 홀씨가 다시 힘차게 발을 구르고 바람을 타 하늘 위로 향하자, 아이의 옆으로 바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번엔 어디로 가니?”

“이번에는 토끼풀을 만나러 갈 거야.”

“토끼풀?”

“응, 내가 네 잎 클로버를 찾겠다고 잔뜩 어지럽혔거든.”


시무룩하게 말을 한 아이는 홀씨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분명 토끼풀도 용서해 줄 거야. 걱정하지 마.”


바람은 아이를 달래듯 볼을 간지럽힌 뒤 민들레 홀씨 뒤에서 등을 밀어주었다.


“이렇게 하면 더 빨리 가서 용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바람의 도움으로 토끼풀들에게 도착한 아이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듯 뜯겨있는 토끼풀 더미를 바라보았다. 잔뜩 볼품없어진 제 등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던 토끼풀은 절 이렇게 만든 아이를 보고 흠칫 놀라 오들오들 떨었다.


“왜 또 왔어?”


“미안해, 사과하러 왔어. 할머니한테 행운을 주고 싶어서 네잎크로버를 찾았는데 없어서 화풀이를 한 것 같아. 정말 미안해.”


아이의 반성하는 모습에 토끼풀은 마음이 풀어진 모양인지 제 등에 숨겨 놓은 네잎클로버를 꺼내 아이의 손에 건네주었다.


“네가 찾던 네잎클로바야. 꼭 할머니께 건네 줘야해?”

“고마워, 토끼풀아.”


그렇게 아이는 홀씨를 타고 제가 괴롭혔던 꽃들을 찾아가 사과를 했다. 마지막 꽃인 유채꽃에게까지 사과를 한 후에 처음 민들레를 만났던 자리로 돌아왔다.


“네 덕분에 꽃들에게 사과를 할 수 있었어. 고마워, 민들레야.”


아이는 자기 품에 고이 간직했던 네잎 클로버를 민들레 홀씨에게 건네주었다. 오늘 하루 절 도와준 민들레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건 할머니께 드리기로 했잖아!”

“그렇지만 날 도와준 건 민들레 너였는 걸. 할머니도 네게 주는 걸 더 좋아하실 거야!”


정답게 아웅다웅하는 사이 누군가 아이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놀라 뒤를 돌아보자 분홍색 꽃봉오리를 치마로 입은 꽃의 여왕이었다.


“오늘 하루 반성은 많이 했니? 꽃들이 얼마나 아파한지 알았겠지?”

“네에. 제가 잘못했어요.”

“모두가 용서했고, 이렇게 반성하고 있으니 나도 용서해줄게. 얼른 돌아가 봐.”


꽃의 여왕이 아이의 이마를 톡톡 치자 아이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 여긴 어디지?”

“아가, 무슨 꿈을 꾸었길래, 그렇게 놀라니?”


아이는 놀라 할머니의 품속에 파고들었고 할머니는 다 안다는 듯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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