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한 것은 불편하다.
어떤 물건이건 유니크한 것은 대게 사용하기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무릅쓰고도 살아남는 물건들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일까? 자동차이건 카메라이건 유니크 한 것들은 실생활의 불편함을 감내하고서라도 쓰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라이카 카메라가 스마트폰보다 사진 찍기 편리한가? 미니가 그랜저보다 운전하기 편리한가? 아니오. 하지만 카메라가 순간의 아련함을, 자동차가 드라이빙의 원색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오직 라이카와 미니여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
의도된 행사가 열리는 장소, 베뉴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이제 행사 공간을 단순한 모임 장소로 생각하기보다 그들이 모이는 목적과 그 순간의 감성을 표현해 줄 수 있는 하나의 그릇으로 생각한다. 더구나 온라인으로 정보의 전달과 소통이 가능해진 시대에, 오프라인의 베뉴는 단순히 행사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매슬로우는 인간 욕구단계 이론에서 사람들은 기본적인 배고픔과 안정 같은 생존의 욕구가 해결되면 사회적 소속감과 사랑 같은 성공의 욕구로 넘어간다고 했다. 마이스 참가자들의 욕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마이스 참가자들은 정보 습득과 판매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이미 온라인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정보 습득의 욕구를 넘어 행사에 참가했을 때의 잊지 못할 경험과 오직 나를 위한 맞춤형 소통을 원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매슬로우가 말한 생존의 단계를 넘어 성공의 욕구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마이스는 이제 기본적인 생존의 단계를 넘어서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그것이 바로 호텔이나 컨벤션센터 같은 전형적인(Traditional) 행사 장소가 아니라 독특한 감성의 비 전형적인(Non-traditional) 공간 - 유니크 베뉴 - 이 필요한 이유이다.
행사 주최자, 특히 PCO가 유니크 베뉴를 잘 활용하려면 5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행사 목적 파악 - 베뉴 정서 파악 - 1+1 패키지 활용 - 체험 콘텐츠 활용 - 온라인과 연결'이 그것이다. 이제부터 하나씩 그 방법들을 알아보자.
1. 행사의 목적이 무엇인가?
행사가 전시회이건 컨벤션이건, 모든 의도된 행사들은 의도된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정보 전달, 네트워킹, 행동과 사상의 변화, 또는 제품과 서비스의 체험 등 어떤 목적이건 마이스 행사에는 개최 목적이 있다. 베뉴는 공간으로서 이 의도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보 전달이 목적이라면 몰입의 교육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네트워킹이 목적이라면 엔터테인먼트와 F&B의 기능이, 또 체험을 통한 행동의 변화가 목적이라면 전시와 이벤트를 통해 wow-effect를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유니크 베뉴를 선택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가 행사를 개최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그 목적을 지원하는 기능들이 베뉴에 준비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2. 베뉴의 정서를 파악하라.
앞서 말했듯이 베뉴는 사람들이 모이는 목적과 그 순간의 정서를 반영해야 한다. 그래서 PCO가 베뉴를 선택할 때 이제는 단순히 어메니티뿐만 아니라 베뉴가 던지는 개성을 파악해야 한다. 목적에 맞는 기능과 더불어 베뉴의 정서는 사람들에게 '그곳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준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인 중국 상하이 타워(높이 631m)는 유독 기업 비전발표회의 장소로 각광받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 중국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라는 이미지는 행사 참가자에게 우리가 최고이자 앞으로도 이상을 향해 나아가자는 목적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그래서 상하이 타워는 '높이(Height)'를 모티브로 베뉴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 뉴욕의 Intreped Sea, Air & Space Museum은 퇴역한 항공모함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협단체의 전략회의나 기업의 마케팅 회의들이 주로 열린다. PCO들이 이 공간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항공모함의 이미지 때문이다. 미국 항공모함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으로 행사 참가자들에게 '도전과 성취'의 전략(Strategy) 행사 브랜딩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베뉴인 것이다.
3. 1+1 패키지를 활용하라.
유니크 베뉴는 그 자체로 마이스의 모든 행사를 수용할 수 없다. 유니크하다는 말속에 공간이 가지는 한계 역시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유니크 베뉴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간혹 PCO 중에는 유니크 베뉴의 불편함을 가지고 불평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베뉴를 쓸 수 있다는 전제를 잊은 것이다. 오히려 유니크 베뉴를 잘 활용하려면 컨벤션센터나 주변의 또 다른 베뉴와 묶어 활용하는 1+1 패키지 전략이 필요하다.
경주의 화백 컨벤션센터(하이코)는 보문단지 안에 있는 시설로서 보문단지 안에는 황룡원이라는 코리아 유니크 베뉴가 있다. 하이코가 국제회의 같은 마이스 행사를 유치하면, 전야제나 만찬 같은 서브 행사는 하이코보다 황룡원에서 개최하도록 지원한다. 이렇게 되면 행사 참가자들은 단순히 하이코 참가 경험뿐 아니라 아름다운 경주의 석양과 야외 공간의 분위기에 취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고 돌아간다. 경주 하이코와 황룡원의 행사 연계 사례는 이 1+1 패키지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하는 케이스중 하나이다.
전주의 소리문화의 전당과 왕의 지밀 역시 이 1+1 패키지를 잘 적용하고 있다. 소리문화의 전당은 공연장으로서, 왕의 지밀은 조선의 왕들을 모티브로 한 숙박시설로서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보완하여 마이스 행사의 공동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더구나 소리문화의 전당과 왕의 지밀 사이에는 전주 한옥마을이 있어 공연-숙박-로컬 문화 체험'이 30분 이내 거리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1+1 패키지 전략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컨벤션센터와 지역 CVB의 역할이 중요하다. 컨벤션센터는 마이스 행사를 유치하는 주체로서, 지역 CVB는 이 행사를 지역의 유니크 베뉴에 연계하는 매개체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유니크 베뉴에 행사 몇 개를 지원하여 개최케 하는 목적보다는 도시 전체에 마이스 참가자를 머물게 하여 도시가 마이스 참가자의 체류시간을 늘려 지역 소비와 지출을 늘리는 선순환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4. 체험 콘텐츠를 활용하라.
앞서 말했듯 마이스 참가자의 로컬 문화 체험은 도시의 체류시간을 늘려 지역 소비 활성화의 선순환을 가져다준다. 이 역할의 핵심에 유니크 베뉴가 있다. 유니크 베뉴는 본질적으로 마이스 시설이 아니다. 오히려 박물관, 미술관, 고궁 같은 그 자체로의 역사적 문화적 콘텐츠를 소장하고 관리하여 전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배뉴 고유의 콘텐츠가 로컬 문화 체험의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베뉴는 지역의 랜드마크이기 때문에 베뉴의 콘텐츠는 지역을 대표하는 콘텐츠이다. 따라서 베뉴의 체험 콘텐츠를 활용하면 PCO는 굳이 로컬 문화를 연구할 필요 없이 쉽게 참가자의 체험을 위한 지역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은 자체 보유한 미술품 등의 전시 콘텐츠를 활용하여 활발하게 기업회의 같은 마이스 행사를 유치한다. Exclusive Docent Tour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기업회의 참가자를 위한 단독 도슨트 투어를 개최한다. 국내 용인의 한국 민속촌 역시 마이스 참가자를 위해 조선시대 사람들이 실제 관아에서 벌을 받고 곤장을 맞는 모습, 서민들이 짚신을 엮고 즐겁게 노는 모습 등을 스태프들이 배우가 되어 재현한다. 이 모든 것은 그 로컬 베뉴들의 본질적인 콘텐츠로서 사람들에게 독특한 체험과 경험을 선사한다. 좋은 경험은 좋은 기억을 낳고, 좋은 기억은 결국 그곳을 다시 방문하게 만드는 것이다.
5. 온라인과 연결하라.
필립 코틀러는 '마켓 4.0'에서 초연결 시대의 고객 경로를 제시했는데, 기업이 제품을 마케팅하는 마지막 단계는 판매가 아니라 구매 고객을 충성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라 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이 시대에 고객은 구매 후 모두가 평가자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튜브에서, 인스타에서 얼마든지 제품의 구매 후기를 찾아보고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다.
유니크 베뉴의 행사 경험 역시 마찬가지다. 마이스 참가자들이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대부분은 Insta-worthy로 연결된다. 마이스 행사기간 중에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사진과 영상들을 남기게 되고, 이는 다시 온라인에서 확산되어 재방문의 경로로 이어진다.
따라서 PCO가 행사 개최 후 마지막으로 할 일은 마이스의 좋은 순간들을 영상과 이미지, 케이스 스터디로 재가공하여 온라인에서 검색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영국 더블린 컨벤션센터는 홈페이지에 베뉴에서 개최된 성공적인 행사들을 주최자의 인터뷰와 행사 스케치, 참가자들의 기뻐하는 모습들을 영상으로 제작하여 case study를 남기고 있다. 이는 결국 차기 행사에 대한 기대와 참가 등록으로 이어져 베뉴와 행사 주최자 모두에게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이 되었다. 모든 콘텐츠는 결국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니크 베뉴는 한때의 유행으로 그칠 것인가? 아니면 지속적인 마이스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인가? 그것은 결국 베뉴 마케터의 의지와 지자체의 역할에 달려 있다. 유니크 베뉴는 마이스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컨벤션 센터와 같은 역할을 기대해선 안된다. 오히려 그 본질적인 요소들-역사, 문화, 사회 가치-을 더 드러내고 노출시켜 그 공간에 머무는 행사 참가자들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성공한다면, 한국에 그러한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하는 공간들이 늘어단다면 지역 컨벤션센터-CVB-유니크 베뉴가 연결되어 마이스 도시의 발전 역시 가속화될 것이다.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라고 했다. 유니크 베뉴가 행사를 지원하는 하드웨어이자 로컬 문화 인프라로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 때 그것은 신기루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마이스의 핵심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