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에게 베뉴 마케팅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베뉴란 단어가 회자된 것이 불과 1-2년 사이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컨벤션센터나 전시장, 공연장, 박물관 같은 개별적인 공간으로 분절되어 쓰였지만 '의도된 행사가 열리는 장소'란 개념의 베뉴란 말이 부상한 것은 최근 마이스 산업의 성장이 그 이유인 것 같다. 코엑스 같은 전문 행사장소뿐 아니라 고궁이나 미술관, 폐공장 등 복합 문화시설들이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행사 장소로 널리 쓰이게 됨에 따라 그 모든 공간을 통칭하기 위해 베뉴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베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70년대 세종문화회관이나 삼청각 같은 시설들이 생겨나고 2000년대 초반 코엑스를 필두로 한 컨벤션센터의 건립과 확장이 가속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러한 공간 마케팅에 대한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난 한국의 경제성장모델이 그러하듯, 국내 마이스 산업 역시 마이스 시설을 먼저 국가가 건립한 후 그 성장을 정책적으로 주도하는 모델이 적용되었다. 이렇게 정부 주도형 육성사업으로 진행되다보니 아직까지 베뉴 마케터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서비스나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과거 베뉴에서 일을 할 때 그 누구도 베뉴 마케팅에 대해 가르쳐준 사람은 없었다. 하기사 베뉴가 완공도 되기 전부터 브로셔 하나 달랑 들고 마케팅을 하던 시절에 베뉴 마케팅을 어디 가서 배운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 베뉴 마케팅을 하는 실무자들은 그나마 과거보다는 조금 낫다. 비록 외국 서적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베뉴 마케팅을 위한 책들이 아마존에 들어가면 많이 있고, 국내에도 베뉴 마케팅을 위한 교육 과정이 진행 중이다. 베뉴의 마케팅 실무자들이 읽으면 좋을만한 책 7권을 추천한다.
필립 코틀러를 모르고 마케팅을 논하지 말라. 경영학의 구루이자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필립 코틀러가 박물관, 미술관의 마케팅 책까지 낸 것을 아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 그는 이 책의 주제를 명쾌하게 단 한마디로 정의했다. "모든 공간은 고객의 여가시간(Leisure Time)을 뺏기 위해 경쟁한다."
컨벤션센터와 도시 마케팅을 담당하는 CVB 실무자라면 기본적으로 이 책은 읽어볼 것을 권한다. 전 세계의 베스트 도시 마케팅 사례와 마이스 유치 케이스, 행사 주최자가 베뉴를 선택하는 기준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행사 기획자가 유니크 베뉴를 선택하는 기준은 2가지이다. 첫째, 베뉴는 단순히 행사장이 아니라 행사의 목적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베뉴는 어메니티뿐 아니라 그 나름의 개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은 3년 전 우연히 광주 아시아 문화의 전당에서 발견하였는데, 원색의 강렬한 노란색 표지에 이끌려 집어 들게 되었다. 그러나 Serendipity란 이런 것일까. 이 책은 21세기의 박물관, 미술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주제로 MoMA를 비롯한 전 세계의 베뉴 담당자들이 포럼에서 대화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21세기 박물관의 미래는 무엇인가. 박물관은 하드웨어도, 전시 오브제도, 직원도, 건축도 아니다. 박물관은 아이디어 그 자체다."
이 책은 제목에서 말하듯 이벤트 베뉴 실무자들을 위한 실용서이다. 구체적으로 베뉴를 대관하는 절차, 행사 유치 방법, 온라인 마케팅 등에 관한 내용들이 나와 있다. 컨벤션센터나 유니크 베뉴 모두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베뉴에 행사 주최자들이 와서 대관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만 이 책은 정반대의 의견을 제시한다. "반드시 행사 주최자 사무실에 가서 계약 도장을 찍어라. 주최자를 의심하기 위함이 아니라, 재계약으로 연결하기 위한 관계 구축의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함이다."
나는 늘 Hospitality란 단어가 모호했다. 접대라고 하기엔 뭔가 퇴폐적이고, 환대란 단어는 굉장히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환대란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위원장 앞에서 열렬히 손 흔드는 행위이거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서울 한복판에서 카퍼레이드를 할 때 시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순간 그 환대의 뜻이 명확해졌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행위이다." 우리의 베뉴는, 도시는 마이스 참가자에게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가.
모든 베뉴는 지역 종속적이다. 베뉴는 온라인처럼 도시와 국가를 넘나들 수 없다. 결국 로컬과의 관계 속에서 베뉴는 생존 법칙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은 로컬_지역경제의 미래는 무엇인가에 대해 로컬 경제 전문가로 활동한 헬레나 노르베지 호지와의 대화 내용을 엮은 것이다. 특히 코로나 이후 Small & Local contents가 대세인 이 시점에 이 책은 로컬 활성화의 중요한 방안을 제시한다. "진정한 지역화는 소규모 활동을 대규모로 하는 것이다. 비슷한 경제 테마를 가진 전 세계의 로컬 도시와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로컬의 미래이다."
부끄럽지만 이 책은 내가 썼다. 이 책은 킨텍스가 2005년 제1전시장 개장 이후 어떻게 3년 만에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는지를 실제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한글이 아닌 영어로 쓴 것은 이 책 내용이 내 MBA 졸업 논문이었기 때문이다. 국제 전시 이벤트 협회인 IAEE 온라인 저널에 실리기도 했다. 컨벤션센터가 건립 이후 초창기에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위의 7권 말고도 베뉴와 도시 마케팅에 관한 좋은 책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베뉴 마케터들에게 추천할 최소한의 책만 추린다면 이 7권 정도가 아닐까 한다. 좋은 책들과 함께 좋은 계절을 맞이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