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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주 David Lee Jun 07. 2022

책은 읽지 않지만 도서전에는 갑니다.

MZ세대들이 서울국제도서전에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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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다반사이다. 서울국제도서전도 그중 하나이다. 작년 한국 성인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일 년간 책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은 전체의 47.5%로 절반도 안 됐다. 평균 독서량은 연간 4.5권으로 한 사람이 일 년에 책을 5권도 안 읽는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이런 열악한 독서 문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도서전 방문객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희한하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일부터 5일까지 3년 만에 코엑스에서 개최된 2022 서울국제도서전은 사전 예매자만 2만 명이고 개막 첫날 입장권 구매 줄이 한때 500m까지 이어졌다. 총 관람객은 약 20만 명을 넘었다. 코로나 이후 회복된 오프라인 행사의 기대 심리를 감안하더라도 도서전의 인기는 타 전시회와 비교했을 때도 놀라울 정도이다.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도대체 왜 사람들은 도서전에 가는 것일까? 


사람들이 오프라인 공간에 기대하는 것들      


코로나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접하는 방식일 것이다.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바뀐 지금 거의 모든 것의 온라인화는 오프라인 공간의 존재 이유를 바꿔 놓았다. 이미 온라인으로 쇼핑하고 심지어 여행도 랜선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오프라인은 더 이상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체험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모든 트렌드 서적에서 한결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프라인의 전시회일지라도 동일하다는 것을 2022 서울국제도서전이 보여주었다.      


우선 도서전을 방문하려면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티켓을 예매해야 하는데, 도서전 사이트를 여는 순간 책에서 모티브를 딴 인터랙티브한 이미지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책처럼 쌓여있는 메뉴들을 손으로 터치하면 마치 책들이 무너지듯 메뉴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진다. 게임처럼 재미있는 요소들과 감각적인 디자인이 이미 온라인으로 도서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오프라인의 전시회를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 (출처: 서울국제도서전)

필립 코틀러는 ‘마켓 4.0’에서 지금과 같은 초연결시대에는 고객이 제품을 <인지-호감-질문-구매-변호인>의 5단계의 과정을 거쳐 구매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 따르면 도서전은 제품을 고객에게 인지시키고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단계를 게임처럼 재미있는 홈페이지를 통해 해결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렇게 홈페이지만 화려하다고 도서전에 방문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은 2018년부터 매년 테마를 선정하고 주제 전시와 세미나 등을 올해의 인물을 통해 미디어에 알린다. 2022 서울국제도서전은 작가 김영하를 올해의 인물로 내세우고 출판사 부스뿐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책 이후의 책’, ‘팬데믹 시대의 서점은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가’ 등 다양한 테마와 주제를 통해 도서전을 반드시 그곳에 가야만 하는 곳으로 기획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은 전시회 개최 이전 온라인 포털과 유튜브, 언론 등을 통해 노출되었고, 이것은 위에서 말한 5단계의 구매 과정 중 ‘질문’ 단계에 대한 답을 예비 구매자들에게 준 것이다.         


이렇게 기대 심리를 갖고 전시장에 온 고객들에게 과연 도서전은 만족할 만한 콘텐츠를 보여주었을까?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이 다시 부활했다지만 아직까지는 현장 방문이 걱정스러웠을 텐데도 도서전 현장은 이미 개막 시간인 11시 이전부터 대기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리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선 순간은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웜홀’을 통과하듯 완전한 책의 공간으로 입장하는 경험을 방문객에게 제공한다. 

2022 서울국제도서전 현장

오랜 시간 사람들을 붙잡아두고 전시장을 떠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비단 출판사들의 부스뿐이 아니었다. 책을 주제로 다양한 기획전을 펼친 전시회는 결국 방문객의 체류시간을 늘리게 되는데, 이는 결국 부스에 참가한 기업들의 도서 판매, 출판 계약, 해외 판권 수출 등의 다양한 전시성과를 높이는 선순환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바이어와 참가 기업의 전시 만족도를 높여 도서전을 다시 참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또한 방문객들은 도서전에서 책을 만지고 듣고 경험한 순간을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페이스북 등 SNS에 남기는데 이 사람들이 결국에는 구매 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도서전을 옹호하고 홍보하는 ‘변호인’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주제로 다양한 기획전을 펼친 전시회는 결국 방문객의 체류시간을 늘리게 되는데, 이는 결국 부스에 참가한 기업들의 도서 판매, 출판 계약, 해외 판권 수출 등의 다양한 전시성과를 높이는 선순환의 역할을 하게 된다.

전시회는 판매가 아닌 교류의 공간이다. 


역설적이지만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가능해지자 기업들은 고객들을 대면할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그러나 고객들이 실제로 우리 제품과 서비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직접 고객을 만나 고객의 오감을 통해 느낀 경험들을 조사해야만 한다. 전시회는 이 온라인 시대에 어쩌면 유일하게 남아있는 아날로그적 마케팅 수단일지 모른다. 전시회는 더 이상 판매의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고 체험을 통해 가장 극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인 것이다.     


이렇듯 3년 만에 다시 코엑스로 돌아온 2022 서울국제도서전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공간에서 새로운 것을 체험하고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이 시대에 오프라인 전시회는 과연 필요할까? 혹시라도 이런 질문을 품고 있는 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이 있다면 내년 도서전은 꼭 한 번 방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머물고 싶은 순간을 팝니다’의 저자 정은아는 오프라인 공간의 가치는 더 머물고 싶은 순간을 만드는 데에 있다고 했다. 더현대 서울이 역대 백화점 최고의 매출을 달성한 이유도 공간 한가운데를 매장이 아니라 숲을 조성했기에 가능했다. 시몬스 침대는 침대를 팔지 않는 매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MZ세대들의 경험 욕구를 불러일으켜 업계 1위를 놓치지 않는다.     


이제 전시회에 참가하는 기업들과 전시 기획자 모두 전시회를 판매가 아니라 교류의 수단으로 활용하자. 전시회 기획자와 참가기업이 고객들과 함께 더 머물고 싶은 전시회를 만든다면 전시회는 비대면 시대에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독보적인 마케팅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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