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
백년가게, 이어가게, 오래가게...모두 노포를 일컫는 말들이다. 노포란 일본어인 시니세(老舗, しにせ)를 그대로 가져와 한자음으로 읽은 것인데, 직역하면 오래된 가게를 뜻한다. 오래된 만큼 노련하고 숙달된 가게라고 해석될 수 도 있다.
최근 들어 지자체마다 지역 고유의 노포를 살리고 지원하려는 사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도시개발이란 명목으로 사라져 가던 오래된 가게를 살리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포는 단순히 오래된 것뿐 아니라, 오래된 만큼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장소들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노포를 보존하고 살리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그 지역의 정체성을 살리고 발전시키려는 의지와 다르지 않다.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지닌 만큼 저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겠지만 어느 지역의 노포이건 오래도록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가게들엔 모두 공통점이 있다. 마치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첫 페이지에 나온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구처럼 말이다.
오래도록 그 모습을 지키며 성공적으로 운영되어 온 노포들은 그저 고객 만족이나 서비스 정신으로만 그 성공 원인을 말하기엔 훨씬 근원적 이유들이 있었다. 그 이유는 대략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대를 이어 운영한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노포들은 모두 대를 이어 운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를 잇는다는 것은 단순히 대물림하여 경영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간직한 노하우와 운영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음식이 일품이라는 뜻이다. 마포원조주물럭, 순댓국으로 유명한 용인 백암 제일식당 등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노포들은 이렇듯 3대째, 4대째 그 고유의 전통을 계승하며 변하지 않는 맛을 선보인다.
2. 직원이 오래 근무한다.
노포에 들리다 보면 주인은 아닌데 나이가 일흔은 훨씬 넘은 분들이 주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알고 보면 스무 살에 입사해서 50년 이상을 근무하신 분들이다. 압구정의 한일관이 그렇고, 을지로의 우래옥이 그렇다. 한 곳에서 오랜 세월을 지킨 분들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도시의 역사이다. 그만큼 버텨낸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한 분들이다. 도시의 콘텐츠는 바로 이런 분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3. 공급처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좋은 맛은 좋은 재료에서 나온다. 좋은 재료는 좋은 공급업체에서 구해와야 한다. 오래도록 성공한 노포들은 그래서 공급처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 맛이 변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재료를 바꾸거나 더 가격이 싼 거래처로 바꾸는 것도 있는데, 노포의 맛이 변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최고의 재료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래처 역시 오래도록 신뢰가 쌓여 일시적으로 거래가 중단되더라도 믿고 노포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오래도록 한결같은 좋은 맛을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 메뉴가 단순하다.
오래된 노포들의 또 하나 공통점은 메뉴가 단순하다는 것이다. 메뉴가 단순한 만큼 음식에 쏟는 노력 또한 쉬이 따라갈 수 없다. 또한 재료를 구하기 쉽고, 이는 공급처에서 신선한 재료를 유지하기가 더 쉬워진다. 단순한 메뉴는 특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평양냉면 하면 우래옥, 노가리와 맥주 하면 을지오비베어를 떠올리는 것은 모두 하나 또는 두 개 정도의 단출한 메뉴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는 고객들에게 간단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노포의 매력은 이렇듯 하나에 오래도록 집중하는 끈기에 있다.
노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다양하지만 결국 노포를 좋아하는 이유는 모두 비슷하다. 위의 4가지 이유 말고도 다양한 특징들이 있겠지만 오래된 가게들은 위의 모습들을 지키지 않은 곳들은 없었다. 결국 지켜야 할 것도, 또한 지키지 말아야 할 것도 위의 범주안에 다 있다. 이러한 가치와 노력이 노포의 성공과 오랜 기간 운영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