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를 들으려면 최소한 20년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국가의 산업도 마찬가지다. 어느 산업이건 도약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려면 최소한 2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의 마이스 산업이 바로 지금 20년을 넘어 새로운 시대로 도약하고 있는 시점에 와 있다.
한국 마이스 산업은 2000년 ASEM 정상회의 유치를 계기로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코엑스의 증축과 벡스코, 킨텍스 등 지역별로 컨벤션 센터가 차례대로 개장하면서 다양한 전시회와 컨벤션, 이벤트가 지역과 베뉴 특성에 맞게 개최되고 발전하여 온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마이스 산업은 공교롭게도 20년이 지날 즈음에 위기의 시간을 갖는다. 2019년과 20년 코로나로 대면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마이스 산업도 대면 비즈니스의 특성상 깊은 침체기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가 사라지고 다시 한번 부활한 마이스 산업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즉 기존의 마이스가 정보 습득과 제품의 홍보, 판매 목적의 비즈니스였다면 이제 마이스는 더 이상 이런 수준으로는 참가자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없게 되었다. 줌이나 메타버스 같은 디지털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정보 습득과 홍보 판매의 기능을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이스가 온라인의 편리함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면 그곳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해야만 하는 시대에 도착한 것이다. 즉 한국의 마이스는 이제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기존과는 다른 마이스 2.0, 즉 경험 경제의 시대에 도래하였다.
마이스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한 가지다. 본인이 미처 알지 못했던 지식과 체험을 통해 일과 인생에 필요한 중요한 영감을 얻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영감을 얻기 위한 지식 습득이나 체험이 온라인으로 대체된다면 오프라인의 마이스는 무엇을 제공해야 할까? 결국 사람들이 온라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체험, 즉 지식과 체험 콘텐츠가 결합한 경험 마케팅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일시에 코로나가 왔다가 사라지면서 글로벌 마이스 참가자의 욕구 역시 같이 변화했다. 즉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야만 방문하고 싶은 동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이미 최근의 국제 행사 유치 경험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지난 6월 경주가 다른 대도시를 누르고 APEC 정상회의를 유치했던 원동력은 컨벤션 센터와 지역 유니크 베뉴가 공동으로 유치 제안서를 작성하여, 다른 곳에서는 줄 수 없는 경주만의 특별한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즉 APEC의 메인 행사는 화백 컨벤션 센터에서 하되, 영부인 만찬이나 기업인 네트워킹 행사, 장관 회의 등은 지역의 유니크 베뉴인 월정교나 경주 엑스포 대공원 등을 활용하여 천년 신라의 아름다운 밤과 낮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경험 마케팅의 중요성에 대해 미국 올란도 CVB의 Fred Shea 부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로운 세대는 지역 경험이 있는 MICE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행사 전, 후 또는 전 기간 동안 식당, 사람들, 그리고 문화를 포함한 지역 목적지를 경험하길 원합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마이스 트렌드는 부산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산은 이미 벡스코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유니크 베뉴를 선정하고 육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인프라를 활용한 새로운 경험 마케팅이 충분히 가능하다. 작년 10월에 개최한 부산 신발 패션 전시회인 ‘패패부산’은 벡스코와 인근 유니크베뉴인 뮤지엄원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메인 전시회는 벡스코에서 진행하되, 뮤지엄원에서 바이어 초청 저녁 행사를 열어 미디어 아트를 행사의 정체성을 세련되게 제공하여 참가자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제공했다. 이러한 전략은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MICE를 결합하여 참가자들이 단순한 전시 이상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데 집중했다. 부산이 글로벌 MICE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 것이다.
단언컨대 한국에서 부산만큼 다양한 마이스 인프라를 갖춘 곳도 없을 것이다. 컨벤션 센터와 유니크 베뉴, 아름다운 바다와 최고급 호텔 리조트 등 부산이 보유한 인프라는 세계 어느 곳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이제 이 인프라를 활용하여 부산에 오래 머물게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아무리 많은 마이스 행사를 유치해도 방문객들이 도시에 머무는 시간이 짧다면 그 도시는 마이스를 하는 이유가 없어진다. 도시의 마이스 경제파급효과는 결국 체류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로컬 콘텐츠를 마이스에 더욱 깊이 연결한다면 마이스 참가자들은 절대로 부산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이곳에 오게 될 것이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했듯이 말이다.
“좋은 경험은 좋은 기억을 낳고, 좋은 기억은 이곳을 다시 방문하게 만든다.”
* 이 글은 부산관광공사 뉴스레터 10월호에 기고문으로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