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에 중국 기업들이 몰려온다

한국 전시회, 국내 참가기업들의 기술유출방지책 마련해야

by 이형주 David Lee

숫자가 말해주는 현실


요즘 코엑스 전시장을 돌다 보면 중국어가 자주 들린다. 부스 간판도, 명함도, 현장에서 나누는 대화도.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참가업체 명단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단순한 체감이 아님을 알게 됐다.

최근 국내 주요 전시회의 참가업체 현황을 보면 그 변화가 뚜렷하다.

국내 대표 화장품 박람회에서는 전체 참가업체의 3분의 1이 중국 기업이다. 섬유·패션 분야의 대표 전시회인 프리뷰 인 서울(Preview in Seoul)도 전체 참가사의 약 30%가 중국 기업으로 채워졌다. 심지어 코엑스 전관을 중국 기업으로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란다. 산업 AI, 로봇, 반도체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낯설었던 중국 로봇 기업, 중국 반도체 장비 업체의 이름이 이제 코엑스 전시회 참가업체 명단에서 어렵지 않게 보인다.

전시회 주최사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흐름이다. 참가비를 내고 부스를 신청하는 기업이 늘수록 전시회 규모는 커지고, 흥행 지표도 올라간다. 중국 기업들의 참가가 늘면 바이어 유치도 수월해진다. 하지만 이 성장의 이면에 국내 참가기업들이 치르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있다.


참가업체인가, 바이어인가


전시회에는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이 온다. 부스를 차리고 자사 제품을 알리는 참가업체(Exhibitor)와 제품을 보고 거래처를 찾는 바이어(Buyer) 다. 이 두 역할은 명확히 구분된다. 참가업체는 주최사에 상당한 참가비를 내고, 부스를 꾸미고, 자사를 홍보한다. 바이어는 전시장에 입장해 참가업체들을 돌아다닌다.

그런데 중국 기업들 중 일부는 이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 든다.

참가업체로 등록해 작은 부스를 차린 뒤, 정작 자기 부스는 직원 한두 명에게 맡기고, 핵심 인력들은 전시장 전체를 '바이어처럼' 돌아다닌다. 국내 기업 부스에서 제품 담당자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가격은 얼마인지, 어떤 원료를 쓰는지, 생산 공정은 어떻게 되는지, MOQ(최소주문수량)는 어느 정도인지. 부스 담당자 입장에선 진지한 바이어로 보이니 열심히 답한다.

그게 문제다.

전시 현장에서 오가는 이 대화들 속에 기업의 핵심 기술 정보, 가격 구조, 미공개 스펙이 그대로 담겨 있다. 명함 한 장 건네지 않아도, 계약서 한 줄 없어도, 정보는 이미 넘어간 것이다.


전시장은 원래 '열린 공간'이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전시회는 원래 공개된 자리 아닌가요? 보여주러 나온 거잖아요."

맞다. 전시회는 홍보의 장이고, 네트워킹의 장이다.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고, 시장을 탐색하는 곳이다. 중국 기업들이 한국 전시회에 참가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전시회에는 전 세계 기업이 참가하고, 그게 전시 산업의 본질이다.

그러나 '공개된 정보'와 '보호받아야 할 정보'는 다르다.

카탈로그에 실린 스펙, 일반 홍보용 가격표, 공개 특허 기반의 기술 설명—이건 공개된 정보다. 반면 아직 출시 전인 신제품의 내부 구조, 원가 기반의 실제 가격 구조, OEM 파트너 정보, 미공개 소재·공정 기술—이건 보호받아야 할 정보다.

문제는 부스에서 상담에 나선 직원들이 이 경계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질문에 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들


한 중소 화장품 기업의 전시 참가를 컨설팅하던 때였다. 부스 운영을 모니터링하다가 한 방문객 그룹이 눈에 띄었다. 세 명이 함께였는데, 한 명이 질문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제품을 이리저리 살피며 사진을 찍고, 나머지 한 명은 카탈로그를 꼼꼼히 챙겼다. 방문객 등록증에는 어느 중국 화장품 기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들이 떠난 뒤 부스 담당자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하셨어요?"

돌아온 답이 아찔했다. "원료 어디서 사는지, 성분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서 대충 말해줬어요. 진지하게 물어보길래 좋은 바이어인가 했죠."

또 다른 사례다. 국내 한 스타트업이 로봇 전시회에 처음 참가했다. 야심 차게 준비한 미공개 시제품을 부스에 전시했다. 전시 기간 중에 중국 로봇 기업 관계자들이 수차례 다녀갔고, 깊은 관심을 보이며 기술적 질문을 쏟아냈다. 그 스타트업은 수개월 뒤, 자사 제품과 매우 유사한 중국산 제품이 시장에 등장한 것을 목격했다. 물론 인과관계를 법적으로 증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조용히 당하고, 조용히 넘어가는 일이 전시장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전시 컨설턴트로서 당장 권고하는 것들


이 문제는 막을 수 있다. 완벽하게 막기는 어렵지만, 위험을 현저히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국내외 전시회 현장에서 목격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지금 당장 기업들이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을 제안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전시용 정보와 내부 정보를 분리하라.

부스에 내놓는 정보에는 '이것까지만'이라는 기준선을 미리 정해야 한다. 공개할 스펙과 공개하지 않을 스펙을 구분하고, 카탈로그에도 의도적으로 담지 않는 정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작업을 전시 준비 단계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 현장 직원들이 즉흥적으로 판단하게 두어선 안 된다.

둘째, 부스 직원 교육에 '정보보호 시나리오'를 넣어라.

전시 참가 준비를 하면서 부스 직원들에게 제품 설명 교육은 하면서,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가'에 대한 교육은 빠져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술적인 세부 사항은 공식 미팅을 통해 안내드립니다"라는 한 마디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어색하지 않게,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정보를 통제하는 화법은 연습이 필요하다.

셋째, 방문객 정보를 기록하라.

진지한 상담이 이뤄진 경우, 상대방의 명함이나 등록 정보를 반드시 확보하라. 명함을 주지 않으려 한다면 이미 의심할 이유가 있다. 상담 내용의 간략한 기록도 남겨라. 나중에 유사 제품이 등장했을 때 상황을 파악하는 데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넷째, 미공개 제품은 전시 방식을 달리하라.

아직 출시 전인 시제품이나 핵심 기술이 담긴 제품은 전면 공개 방식으로 전시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전 등록된 바이어에게만 별도 공간에서 시연하거나, 주요 기능만 보여주고 내부 구조는 노출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라. 유리 케이스 안에 넣거나 실물 대신 영상으로 대체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섯째, 촬영 제한 안내를 부스에 표시하라.

국내외 주요 전시회에서 일부 기업들은 이미 '무단 촬영 금지' 또는 '촬영 전 허락 요청' 안내를 부스에 부착하고 있다. 어색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기술력이 있는 기업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명백한 거부 의사 표시만으로도 억제 효과가 있다.


주최사와 유관기관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기업들이 보안을 철저히 한다 해도 기업들의 자구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시회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주최사,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정부·유관기관의 역할도 필요하다.

해외 주요 전시회들은 이미 참가업체와 바이어 등록 단계에서 기업 정보 검증 절차를 강화하고 있다. 독일 하노버 메세(Hannover Messe)나 프랑스의 주요 산업 전시회들은 참가업체 자격 심사에 상당한 기준을 두고 있다. 물론 개방성과 보안 사이의 균형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국내 전시 주최사들도 이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산업통상부, KOTRA, 중소기업중앙회, 각 산업별 협회, 그리고 민간 전시 주최자들이 참가기업을 대상으로 '전시 보안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시회 참가 지원금을 주면서 보안 교육은 빠져 있다면, 그건 반쪽짜리 지원이다.


개방과 보호, 두 가지를 동시에


물론 나는 전시회의 문을 닫자는 것이 아니다. 중국 기업들의 참가를 원천 봉쇄하자는 것도 아니다. 전시회는 국경 없는 비즈니스의 장이어야 하고, 그 개방성이 전시 산업의 힘이다. 다만 개방성이 무방비와 같은 말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수년,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기술과 노하우가 사흘짜리 전시회 현장에서 무방비 상태로 흘러나가고 있다면, 그건 전시회가 기업에게 독이 되는 상황이다. 전시회는 기업을 성장시키는 수단이어야지, 기술을 내주는 통로가 되어선 안 된다.

앞으로 클라이언트 기업들에게 이 이야기를 더 적극적으로 꺼낼 것이다. 부스 디자인, 동선 기획, 상담 스크립트만큼이나 '무엇을 보호할 것인가'가 전시 전략의 핵심이 되어야 할 때다.


전시장은 쇼윈도지만, 금고까지 열어 보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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