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마케팅 전략
국내 벤처와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흐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기술의 혁신성과 잠재력을 앞세워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사례는 해마다 늘고 있으며, 정부와 기관들도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벽은 생각보다 훨씬 두껍다.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좋은 기술만 있으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정작 해외 바이어와 만나면 기술적 스펙을 깊이 묻는 경우는 드물다.
바이어들의 첫 질문은 대부분 다르다. 가격 정책은 어떻게 되는지, 현지에서 판매 지원이 가능한지, 설치 이후에도 안정적인 A/S와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혹은 해당 제품이 현지 법규나 제도를 충족하는지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순간, 화려한 기술은 의미를 잃는다. 핵심은 기술적 우위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시장의 지불 능력, 현지 물가 수준, 경쟁사 대비 가격 경쟁력, 그리고 제도와 규제에 부합하는 모델 없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스타트업이 해외 시장에 진입할 때 가장 먼저 만나는 무대는 전시회다. 전시회는 새로운 바이어와 네트워크를 확보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빠른 통로이지만, 많은 기업들이 전시회를 단순히 ‘홍보나 세일즈의 장’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전시회는 홍보나 판매에만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곧 브랜드를 만들고, 영업을 전개하며, 협상을 진행하는 복합적인 무대다.
예를 들어 CES, IFA, MWC와 같은 범용 전시회는 시장의 흐름과 최신 트렌드를 확인하고, 업계 내 존재감을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서는 Award 수상, 기조연설, 미디어 인터뷰 등을 통해 기업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반면 INTERBATTERY, ADIPEC, COSMOPROF와 같은 전문 전시회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장이다. 기술력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 바이어들이 참여하고,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협상이 진행된다.
따라서 글로벌 진출을 노리는 스타트업이라면 범용 전시회와 전문 전시회를 함께 활용하는 이중 트랙 전략을 세워야 한다. 범용 전시회에서 인지도를 쌓고, 전문 전시회에서 신뢰를 증명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런 흐름을 통해 기업은 인지도에서 전문성으로, 전문성에서 신뢰로 이어지는 단계적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되는 시기에는, 전시회를 통해 핵심 시장을 공고히 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신흥 시장으로 다변화하는 전략적 접근이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전시회에 나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스타트업이 반드시 직시해야 하는 현실은 현지화다. 많은 기업들이 이를 단순히 언어 번역 정도로 생각하지만, 진정한 현지화는 훨씬 더 깊다. 규제, 문화, 계약 관행, 소비자 선호도까지 모두 현지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지 법규와 규정을 준수하지 못하면 시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CE, UL, ISO 같은 국제 인증이나, 최근에는 탄소저감 인증까지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현지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제품 설명서와 포장, 라벨링까지 현지 언어와 문화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 고객 서비스 역시 중요하다. 단순히 이메일 응대가 아니라, 다국어로 소통 가능한 콜센터, 현지 서비스 포인트, 그리고 구체적인 보증·보상 정책까지 체계적으로 준비돼야 한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현지 파트너십이다. 아무리 뛰어난 제품이라도 현지 대기업, 리셀러, R&D 기관과의 협력 없이 단독으로 시장에 안착하기는 어렵다. 현지 유통망과 판매 채널을 확보하지 못하면 소비자에게 도달할 수 없으며, 결국 현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파트너십이 시장 진출의 성패를 가른다.
현지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소통의 방식이다. 해외 바이어와의 대화에서는 기술적 설명보다도 명확한 스토리텔링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문제 → 솔루션 → 가치”의 구조로 설명할 때 바이어들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제품이 만들어내는 의미와 효과를 이해하게 된다. 왜 이 제품을 만들었는지, 무엇이 차별화되는지, 현지 시장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기업이 어떤 비전과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현지 미디어 홍보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한 제품 소개가 아니라 기업의 철학과 비전, 시장에 대한 이해를 담아내는 이야기가 현지 언론과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어낸다.
그러나 좋은 스토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시회에서 얻은 관심을 실제 계약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리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즉시 거래가 가능한 업체와 장기적으로 팔로업이 필요한 업체를 구분하고, 각각에 맞는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CEO가 직접 챙겨야 할 바이어, C-Level이 관리해야 할 바이어, 팀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관리해야 할 바이어를 나누는 체계적인 구분 없이는, 전시회에서 얻은 기회가 금세 사라지게 된다.
즉 글로벌 성공의 공식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신뢰, 현지화, 파트너십. 신뢰는 제품의 품질과 기업의 실행력에서 나오고, 현지화는 시장 적응 능력에서 나오며, 파트너십은 현지 네트워크와 협력 관계에서 나온다.
이런 내용은 2025 CES Award를 수상한 누비랩 역시 강조한 부분이다. “수상 경력은 초기 관심을 유도할 수 있지만, 장기적 파트너십은 제품의 품질과 서비스 실행력에 달려 있다.” 이 말은 곧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패가 단기적 홍보가 아닌 장기적 신뢰 구축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해외 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벤처와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철저하게 설계된 비즈니스 모델, 현지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십이 진정한 성패를 좌우한다. 전시회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진짜 승부는 그 이후의 실행, 현지화, 그리고 장기적인 협력 관계 속에서 갈린다.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지금, 이런 원칙은 더욱 중요해졌다.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비즈니스 모델과 실행력, 현지 적응력까지 함께할 때 비로소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다. 이것 이 바로 국내 스타트업이 성공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다.
* 이 글은 지난 8월 한국벤처캐피털협회의 초대로 발표한 ‘벤처 및 스타트업 해외시장 진출 마케팅’ 특강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