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회의를 넘어 도시의 일상이 살아 움직이는 베뉴 마케팅 노하우
"왜 굳이 거기까지 가야 하죠?"
베뉴와 전시 컨설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쉬웠다. "전시장에 가야 신제품을 직접 볼 수 있으니까요." "콘퍼런스장에 가야 전문가 강연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줌으로 회의하고, 유튜브로 세미나를 보고, 아마존에서 클릭 몇 번이면 제품을 구매한다. 심지어 CES나 MWC 같은 글로벌 전시회도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생중계된다. 그렇다면 이제 컨벤션센터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물리적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사람을 움직일 수 없다. 지난 20여 년간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내가 찾은 답은 명확했다.
컨벤션센터는 더 이상 '공간'이 아니라 '경험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작년 CES 2025에서 단체관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참가 기업 대표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성과는 '계약 체결'이나 '바이어 미팅 건수'가 아니었다.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 개발자와 이야기하다가 협업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경쟁사 부스를 돌아보며 우리 제품의 방향성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이들이 라스베이거스까지 간 진짜 이유는 온라인으로는 얻을 수 없는 우연한 만남과 직접 체험, 그리고 그 순간의 영감 때문이었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로 보면 더 명확해진다. 생존과 안전, 즉 가장 기본적인 정보 습득과 제품 판매는 이미 온라인이 충분히 채우고 있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인 사회적 교류와 체험, 자아실현은 오프라인 공간만이 제공할 수 있다.
결국 MICE 참가자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특정 장소로 이동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곳에서만 가능한 경험, 또는 온라인으로는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기억에 남는 무언가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컨벤션센터의 경쟁력은 전시 면적이나 최신 시설이 아니라 '그곳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지난 몇 년간 ICC 제주 등 여러 베뉴의 경쟁전략 컨설팅을 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다.
"전시장은 정말 잘 지었어요. 최신 설비에 규모도 충분하고."
맞다. 물리적 인프라는 기본이고 우리나라 컨벤션센터들의 하드웨어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시설이 좋다고 해서 자동으로 행사가 몰려오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다.
나는 항상 컨벤션센터의 활성화 전략을 수립할 때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이 있다.
첫째, 이 공간은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전시장이 아무리 훌륭해도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면 참가자들은 행사가 끝나자마자 떠난다. 컨벤션센터 반경 10분 내에 참가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둘째, 방문자는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
2시간 세미나 듣고 바로 떠나는 것과, 하루 더 머물며 도시를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제적 가치를 만든다.
셋째, 행사가 끝난 후 도시에 무엇이 남는가?
MICE가 지역 산업, 지역 상인, 지역 주민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행사는 일회성이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네트워크와 관계는 지속된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건물을 지어도 컨벤션센터는 결국 '행사만 열리는 장소'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즉 행사가 없으면 불 꺼지는 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복합리조트의 수익 구조를 보면 이 논리가 더 명확해진다. 라스베이거스의 대형 리조트들은 컨벤션센터 자체로 수익을 내지 않는다. 컨벤션이 사람을 끌어들이면, 실제 매출은 호텔, 레스토랑, 카지노, 쇼핑몰에서 발생한다. 핵심은 참가자들을 얼마나 오래 머물게 하느냐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패패부산 신발 산업 전시회와 인근 신발 산업과의 연계 사례를 보자. 단순히 전시회만 열었다면 참가자들은 하루 일정을 마치고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부산의 신발 제조 공장 투어, 신발 디자이너와의 만남, 로컬 신발 브랜드 쇼핑 프로그램을 결합하자 참가자들의 평균 체류시간이 늘어났다.
회의 2시간 듣고 바로 떠나면 지역 경제 효과는 거기서 끝이다. 하지만 하루 더 머물며 도시의 산업을 경험하고, 로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지역 숙박시설을 이용하면 그때부터 진짜 가치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내가 '베뉴 마케팅(Venue Marketing)'이라고 부르는 전략의 핵심이다. 공간을 파는 게 아니라 경험을 설계하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이 도시 전체로 확산되도록 만드는 것. MICE 산업의 성과는 이제 '몇 명이 왔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머물며 도시와 연결되었는가'로 측정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개념이 '타운 마이스(Town MICE)'다. 한림대학교 이화봉 교수가 주창한 이 개념은 컨벤션센터 하나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게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베뉴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기존 MICE는 수직적이었다. 하나의 건물 안에서 전시, 회의, 만찬, 네트워킹이 모두 이뤄졌다. 효율적이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참가자들은 건물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었고, 지역 커뮤니티와의 접점도 거의 없었다.
반면 타운 마이스는 수평적이다. 컨벤션센터는 허브가 되고, 유니크 베뉴, 로컬 산업, 지역 주민은 파트너가 된다. 개별 점(point)이 아니라 연결된 네트워크(line)로, 그리고 도시 단위의 면(area)으로 확장되는 구조다.
지난 몇 년간 경기도와 부산, 제주, 광주, 여수 등 여러 지역의 유니크 베뉴 활성화 전략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확신한 것이 있다. MICE는 더 이상 일부 전문가들만의 산업이 아니라는 것. 즉 지역 상인, 문화공간 운영자, 공예가, 요식업자, 심지어 일반 주민까지 모두가 MICE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때 컨벤션센터는 단순한 대관 시설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행사 주최자, 참가자, 지역 사회를 이어주는 허브. 그리고 그 연결이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까? 전주 컨벤션센터를 예로 들어보자.
1. 컨벤션센터 × 유니크 베뉴
전주 컨벤션센터는 도보 10분 내 접근 가능한 유니크 베뉴와의 연계가 가능하다. 회의는 컨벤션센터에서, 네트워킹과 체험은 한옥마을에서, 만찬은 전통 술 양조장에서 - 이는 오사카 국제회의장이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결합해 MICE 유치를 확장한 것처럼, 전주라는 도시 자산과의 결합으로 행사의 스토리를 만든다.
2. 컨벤션센터 × 로컬 산업
전시는 산업과 만날 때 생명력을 얻는다. 전주의 한지, 전통 음식, 공예품은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니라 비즈니스 투어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즉 벡스코가 부산 신발 산업과 연계해 산업형 MICE 모델을 만든 것처럼, 지역 산업은 컨벤션센터의 강력한 콘텐츠가 된다.
3. 컨벤션센터 × 지역 주민
마지막 연결 고리는 사람이다. 여수 유니크베뉴인 돌산 갓고을 센터는 갓김치 체험 프로그램의 강사로 지역 주민을 활용한다. 지역 주민이 직접 강사가 되고 삶의 이야기가 콘텐츠가 될 때 행사는 관광을 넘어 '기억'으로 전환된다. 이때 컨벤션센터는 단순한 공간 제공자가 아니라 지역 경험을 기획하는 프로듀서가 될 수 있다.
MICE는 사실상 단순히 '행사 당일'의 일정이 아니다. 실제로는 훨씬 긴 여정이다.
만나기 전의 기대(Anticipation)
참가 신청을 하는 순간부터 여정은 시작된다. "전주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 가면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까?" 이 기대감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단순히 "10,000㎡ 규모의 최신 전시장"이라는 스펙이 아니라 "한옥마을 한복 체험과 연계된 네트워킹 프로그램" 같은 구체적 경험을 미리 보여줘야 한다.
만나는 동안의 즐거움(Joy)
또한 회의장 안에서의 경험뿐 아니라 회의장 밖에서의 경험도 설계되어야 한다. 점심시간에 한옥 카페에서 전주 콩나물국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 경기전을 산책하고, 저녁에는 전동성당 근처 전통 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것. 이 모든 것이 '전주에서의 MICE 경험'이 된다.
만나고 난 후의 영감(Insight)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여정은 계속된다. "전주에서 만난 그 한지 공예가의 작품을 구매하고 싶다", "갓김치 레시피를 다시 보고 싶다", "내년에 또 전주에서 행사를 하면 좋겠다". 이런 연결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전국의 100개가 넘는 유니크베뉴 활성화 전략 컨설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진짜 성공적인 MICE는 참가자들이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주에서 이런 경험을 했어" 하고 사진을 보여주고 SNS에 올리고 동료에게 추천하는 것.
이 전체 여정을 설계할 수 있을 때, 컨벤션센터는 단순한 대관 시설이 아니라 도시 경험의 플랫폼이 된다.
앞으로 경쟁력 있는 컨벤션센터는 더 크고, 더 새롭고, 더 화려한 곳이 아니다. 도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사람과 산업을 엮어내며, 지역 커뮤니티의 일상을 작동시키는 공간이 미래의 컨벤션센터 모델이 될 것이다.
지난 경험을 통해 체험한 성공한 컨벤션센터들의 공통점은 명확했다. 건물의 스펙이 아니라 도시와의 연결성이었다.
나는 이 연결성을 단순 베뉴 컨설팅뿐 아니라 CES, IFA, GITEX 같은 글로벌 전시회의 한국관 컨설팅을 하면서도 같은 원리를 적용했다. 단순히 부스를 예쁘게 꾸미는 게 아니라 "왜 이 부스에 와야 하는가"라는 이유를 만드는 것. K-Startup 기업들이 글로벌 바이어들에게 기억되려면 제품 스펙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 기술 철학, 창업자의 스토리까지 연결돼야 한다.
컨벤션센터도 마찬가지다. 전시 면적 10,000㎡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공간이 도시의 어떤 자산과 연결되어 있고, 어떤 산업을 담아낼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때 컨벤션센터는 행사가 있을 때만 열리는 건물이 아니라 도시를 움직이는 엔진이 된다. 지역 상인에게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문화 기획자에게는 글로벌 관객을, 주민에게는 자부심과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플랫폼 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베뉴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역할이 있다. 공간을 파는 게 아니라 경험을 설계하고, 도시를 연결하고, 기억을 만드는 일.
결국 컨벤션센터가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는 방법은 하나다. 도시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가. 이것이 내가 지난 20년간 MICE 산업에서 찾은 답이다.
(이 글은 2026. 1. 27 전주 마이스 데이 주제발표 '컨벤션센터는 어떻게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는가' 발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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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 | VM Consulting 대표, 한림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브랜드를 살리는 전시 마케팅』, 『Venue Marketing as Strategy』
2024 UFI Award Best Practice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