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말들 사이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언어의 숨소리를 듣는 것이다" 한 줄의 문장에서 오래도록 설레었다. 숨 막히듯 헤매다 숨이 쉬어지면 그 사이에서 서성였다. 책을 펼치고 처음 만난 문장 속에서 한 줄도 읽지 않고 단 한 줄에 붙들렸다. 강렬하지만 침착하게 감도는 침묵 속에 안주하지 않는 심히 갈망 같은 것들, 모든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모든 지나간 것들에 대한 태도를 느끼면 나의 침묵도 제자리를 맴돌다 어딘가 서성였다. 서걱거리던 이유를 찾지 못하나 서걱거려도 좋을 이유로 말미암아 그대로 두었다. 매 순간 전율이 일어났다. 시간의 살갗이 나의 살갗을 심하게 흔들었기 때문이다. 한참 침묵하게 만든 시간들이 한 일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으나 그 모두는 사랑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이 그녀의 언어로 왔다. 절뚝거리는 절반의 세상과 절반의 세상을 오가며. 그 여자가 책 속으로 들어왔다. 수천 번 말랐다가 다시 살아난 잉크색의 모든 순간과 모든 과거의 시간과 기억들과 그 사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 이 빛을 내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숨죽였다. 그 여자의 발 없는 몸짓이 너울대는 공간에 일시적인 침묵, 영원할 침묵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숨을 죽인다. 그 사이 침묵하고 있는 것들이 일제히 흐른다. 공기에도 영혼이 깃들면 사람은, 세계는 , 흰색의 기억들로 피어난다. 그곳에 존재하는 물질과 존재하지 않는 비물질 사이의 혼돈이었을지도 모른다. 경계에서 휘청이는 나날들 속에 안개처럼 바람이 불면 나부끼는 것들. 깃발, 어떤 열망도 어떤 절망도 무색이며 무취였다. 눈물과 한탄 속에 무거워진 공기를 가르며 걷는 여인의 모습이 현재를 걸어간다. 휙 떠다니며 형체 없이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다. 부유하며 이어지던 개별적 역사로부터 집단의 역사를 만진다. 아래로부터의 쓰인 역사의 행간을 더듬어보는 이들에게 말라버린 눈물자욱을 발견 한다. 이미 무미건조해진 공간에 빛이 오면 타자의 삶이 반영된다. 일시적인 단절과 일시적인 소통의 채널이 열리면 흩어지는 것들, 산산이 부저진 이름들이 허공을 맴돌다 떨어지면 별이 되었다. 같은 공간이 저물도록 지는 별과 떠오르는 별들 사이이 별들이 여전히 깜깜한 서쪽하늘에서 빛나도록 말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기쁨이 고스란하다. 만지면 부서져 버릴 듯한 먼지 같은 공기가 자욱하여도 점점이 먼지들이 날아간다. 부서진 것들이 텅 빈 소리 없이 살아 숨 쉬는 현재의 공기와 만난다. 어떤 영혼이 나갔다. 다 시들어오는 순간을 만난다. 영혼. 혼. 정신. 이 모두가 한결같이 나갔다. 그리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길 위의 맥없이 읊조리는 단어들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간절한 마음이 거기에 닿아 두 손 모으면 이루어지는 기도처럼 하나의 숨결을 이룬다. 이 책은 느낌으로 안는다. 맥락 없이 자주 그 사이에서 길을 잃었으나 홀로 된 언어는 나의 심장을 흔들어 놓았다. 어떤 한 줄도 넘길 수 없는 행간에서 머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보이는 것은 애달프게도 걸어간다. 종이 같은 몸짓이 출렁일 때마다 심하게 앓는다. 은밀한 것들, 사라지지 않은 수많은 엎드린 고독, 세계는 전진하고 하고 싶은 말은 공간에 막혀 차마 삼킨다. 그 언어를 만지는 사람들의 고요 속의 소란, 곁에 두고 오래 읽었다. 그럼에도 만질 수 있는 질감보다 스며드는 공기의 질감이 먼저 와 안긴다. 언어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심하게 흔들어 놓을 수 있는가 싶다. 아무튼 푹 빠졌다. 그리고 이 글을 풀어낸 김화영 님의 언어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특별한 빛으로 담겨서 좋았다. 어딘가 분주해지기 시작하는 걸 보면 봄이다. 바쁘게 움트는 것들 사이에서 단숨에 내려썼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니 느낌 투성이다. 그래도 손 안 대고 그냥 두고 싶다. 밑줄 그은 문장들은 책 속에 고이 남겨두며. 마법 같은 언어의 행간에서 침묵하다. 놀다. 그리고 어떤 생각보다 아무튼, 행간을 안는다. 그래서 사유하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을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