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잠시도 벗어날 수 없었다. 온통 뒤 섞인 향기는 읽는 내내 침침했다. 그리고 원할 때마다 향기로웠다. 오로지 성 밖으로 바람이 불 때였다. 흔적 없이 비롯된 사랑 흔적 없이 사라진 사랑 도무지 헤어 나오고 싶지 않은 타자들 어색한 시선과 단결된 모른 척과 암묵적 거리처럼 은밀했다. 단절된 자 들이 부여받은 사랑으로 사랑한 행위 그 후에 사랑받은 자들이 당당해진 그 처음과 원점 같은 끝. 머리에 안개가 낀 채로 무겁다. 태어난 그곳의 생선 비린내가 났다.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그르누이의 그것처럼.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한 줄 더 궁금했고 활자의 밀도에 숨 막혔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공기에 갇혀 빠져들었다. 예전에 읽은 책이 맞나 싶게 한 줄도 한 호흡도 같지 않았다. 줄곧 따라다니는 공기는 다시 꺼낸 빛바랜 책 같았다. 단 한 번이라도 진짜 모습 그대로인 사람 냄새가 간절해질수록 멀어지는 사이 동굴 바깥이 어두워졌다. 암튼 두서없이 읽을 책들이 쌓여도 좋다.
이어서 쓴다.
한숨 돌리고 다시 맡아봐야겠다고 했던 책을 다시 꺼내 열었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마치 그르누이의 그것인 것처럼 변질되지 않는 종이 그대로 활자는 오히려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였다. 종이에 무엇을 담았느냐에 따라 향기는 그토록 오래 배어들어 종이 존재를 먹어버린다. 저마다 존재는 위태로워 보이던 모습에서 벗어나 자유롭기를 갈망한다. 그것이 무엇이던 고유한 자신의 것이길 바라며 우리 모습 그대로 자신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소유한 그것으로 판단되는 사람과 소유하지 못한 그것으로 판단되는 것으로 나뉜다. 결코 타자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그럴 때마다 어떤 몸짓으로 웅크린다. 차마 드러내지 못한 판단의 몫을 누군가에게 맡겨둔 체 어설픈 변명처럼 자신을 비호하기에 이른다. 어처구니없는 현실 속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법칙, 그르누이에게 그것은 향기였다. 그 어떤 영혼을 달래는 숱한 달콤함이 아닌 자신을 증명해 낼 수 있는 어떤 자신만의 향기,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 향기를 맡지 못하는 비극을 맛보며 괴로워한다. 오직 한 길을 살아온 그에게 합당한 무엇은 무엇으로 이름해야 하는 것일까, 또한 그 합당함이라는 이름으로 비하되는 그 모든 소수의 특별함을 저울질하는 무리들의 집요함과 냉담함에 대한 증오는 합당한 것일까. 또한 그 증오는 누구를 향해 있는 것일까. 그것이 지향하는 인간의 본질과 본성 앞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연히 이끌렸던 누군가의 향기는 무엇에 대한 집착이었을까. 마치 세상 모든 냄새는 독한 악취가 전부인 줄 알았을 것이다. 태초의 질긴 삶의 염증에 대한 반전처럼 줄곧 따라다니는 어둠의 자식이라는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에게 향기가 없다는 것이 그토록 치명적인 실수였을까. 어쩜 생선 썩는 냄새에 찌든 탄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였을까. 악취에 사무쳐 태어난 아이에게 냄새란 치명적인 부정적 감정의 소환이었을지도 모르니까. 간곡하다. 향기에 대한 집착이 가져다준 자신에 대한 혐오는 무엇으로 반등시킬 것인지, 알 수 없는 웅크린 걸음이 사라지는 날 홀연히 나타나는 향기들. 그것은 죽음을 부르는 손길처럼 애가 탄다.
그러니 그 손길을 잡은 이는 그 향기를 가질 수 없이 죽어갔다. 비극처럼 가질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는 욕망의 민낯들이 허무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이곳에 사라지면 저곳에서 나타난다. 향기를 가지지 못한 자의 향기를 유독 눈독 들이는 자들의 깊은 저의와 음모를 무심한 죽음으로 남긴다. 다만 그 후 이상하리 만치 별다른 의문 없이 그들은 사라지고 만다. 마치 소수자에 대한 이상한 혐오와 사회 모순을 고발이라도 하듯 단정하다. 그 사이 그르누이는 자신의 향기에 접근한다. 갇히지 않는 향기는 그의 후각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에게 냄새가 나지 않음을 알게 된 어느 날, 사람이 가지고 있는 향기를 지니지 못한 그르누이는 사람의 냄새, 자신의 냄새를 만들기로 한다. 향기 없는 존재의 혐오는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지고 악취에 찌든 중세 유럽의 도시를 회복하기 위한 향수가 자신의 무취를 회복하기 위한 도구로 장착하기 시작했다. 끝내 누군가의 영혼을 뒤흔들 수 있다는 자신감은 오히려 자신에 대한 신념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가면이 두꺼워지면 힘이 든다. 그 힘 앞에 굴복하는 군중들이 사라지만 또 다른 가면을 찾는 것처럼 사정이 없다.
인간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순간들의 결과가 뜻밖에 인간성의 상실을 눈앞에서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토록 원하던 사람의 냄새가 났다. 많은 군중들이 그르누이 앞에 무릎을 굻고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은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상실감으로 괴로워한다. 가질 수 있으나 소유하지 못한 죄, 인간의 본질은 무엇일까. 보통의 누구처럼 평범한 삶이길 바라던 그르누이는 어쩌면 누군가의 간절한 사랑을 받고 싶었던 아닐까. 한순간도 버려지지 않은 삶은 없었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웅크렸던 그르누이의 삶은 오직 한 길이었다. 사람다움이 그리워 사람이길 원했고 그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아가길 바랐던 간절함이 전부였다. 그 진실이 왜곡당하거나 삭제당하는 순간 아무것도 없이 자신을 비웃는다. 자신은 여전히 껍데기였다는 사실을 처음 아는 사람처럼. 집착은 눈을 뜨고 눈을 가린다. 그리고 상실당했다.
광장에 서 있는 그르누이의 팔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이 무엇보다 평화로웠다. 아마도 기꺼이 자신의 증오에 대한 사람들의 증오로 보답받고 싶었을까. 사람다움이라고 여겼던 그 순간조차도 사람들은 자신을 상실시키는 순간으로 정지된다. 자신을 찾기 위한 그 모든 순간들이 순식간에 부정되는 공간을 떠나는 모습은 어떤 연민마저 느낀다. 남들과 같지 않다는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회복할 처방전이 필요했을 뿐이었을까. 그렇다고 죽음에 이르게 한 수많은 소녀들의 죽음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금도 여전히 재행 되는 소수자에 대한 어떤 불편한 시선으로 편 가르기 중인 현재를 떠올린다. 나와 틀리다는 입장은 어떤 입장의 중심에서 이루어지는지 그 시대가 규정한 담론의 중심축은 예측 가능한 사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 불행인 것처럼, 처음 만난 여인의 향기가 지독한 악취였다면 지독히도 집착하지 않았을까. 그의 외로움에서 치열하게 벗어나고자 했던 그 어떤 특별함에 대한 위로처럼 죽음을 담보한 향기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무엇에 열광하고 사그라들 것인가. 결국 냄새없이 태어난 그곳으로 돌아온 그르누이는 향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향수처럼 사라진다. 끝내 그루누이 자신일 수 없었다. 마지막 그르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집단성. 그리고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 순간의 한 사람과 어쩐지 서글픈 사람들과 사람. 그 헛됨.
어떤 책이던 마찬가지지만 이 책은 의외로 은유와 상징이 깊다. 마치 그르누이처럼 은둔자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은 통찰과 시선을 느낀다. 많은 페이지에 밑줄을 그었지만 그중 몇 페이지를 옮겨 쓴다. 궁금증을 자아낼 이야기, 함께 나눌 이야기들을 기다리며.
그 향기를 소유하는 일은 곧 향기의 상실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두 가지다 그냥 포기하는 것보다는 소유한 <후> 그것을 상실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더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제나 포기만 해왔었다. 무엇인가를 소유했다가 상실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지 않은가. 213쪽
그는 자신의 승리가 무서웠다. 왜냐하면 자신은 단 한순간도 그 승리를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평생 소유하기를 갈망해 왔던 향수, 2년에 걸쳐 만들어 낸, 사람들의 사랑을 획득할 수 있는 향수를 바르고 마차에서 햇살이 따사로운 광장으로 내려서던 순간......, 그 순간에 벌써 그는 향수가 저항할 수 없는 영향력으로 바람처럼 빠르게 퍼지면서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아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그의 내면에서 인간에 대한 역겨움이 되살아나 승리를 철저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기쁨은커녕 최소한의 만족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항상 갈망해 왔던 일,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일에 성공한 이 순간에 그 일이 참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은 그 향기를 사랑하기는커녕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갑자기, 자신은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증오 속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증오하고 증오받는 것에서, 263쪽
그러나 정작 사람들에 대한 그의 증오는 아무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이 순간 그가 사람들을 증오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더 그를 숭배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에게 단지 그가 연출한 분위기만 진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향기의 가면, 도둑질한 향기에 불과했다. 물론 이 향기는 숭배받아야 마땅할 정도로 훌륭했다. 263쪽
이제 그만할 수만 있다면 악취를 풍기는 이 멍청한 욕망 덩어리들을 이 땅에서 싹 쓸어버리고 싶었다. 칠흑 같은 어두운 영혼의 세계에서 낯선 냄새들을 섬멸했던 것처럼. 또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그들을 얼마나 증오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하게 진실한 감정인 이런 증오심에 대해 그들 역시 증오로 답해 오기를, 그래서 원래의 계획대로 자신을 처형시켜 주기를 그는 간절히 원했다. 그는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과 바보 같은 존경심을 보여 주듯이 그 역시 자신의 증오를 보여주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유일한 감정인 중오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64쪽
그런데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꼭 한 군데 있으니, 그곳이 바로 그르누이 바로 자신이다. 그는 이 사랑의 향기를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향수를 느낄 수가 없으니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세상과 자신, 그리고 향수를 비웃었다...... 이 향수가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하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이 향수가 얼마나 잘 < 만들어진> 것인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단지 그 향수에 굴복할 뿐이니까. 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