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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구 Nov 03. 2024

게임으로 발견하는 새로운 자아

넷플릭스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2024) 리뷰

2014년, 2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벨린(ibelin)'이라는 노르웨이의 한 게이머가 있다. 2024년 넷플릭스에서는 이벨린의 20,000시간에 달하는 게임 인생을 다룬 영화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방영했다. (중독성 심하기로 악명 높은) 온라인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라 거부감이 들 수 있겠지만, 이 남자가 왜 게임에 인생을 바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납득하게 될 것이다.




마츠 '이벨린' 스테인

이벨린의 본명은 '마츠 스테인(Mats steen)'. 태어날 때부터 뒤셴병이라는 희귀병을 앓았다. 근육이 점점 위축되면서 생명도 서서히 사그라드는 병으로, 마츠는 죽는 날까지 휠체어에 의지해 살았다. 부모님은 아들이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특수 장비로 게임을 하는 마츠


하지만 마츠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이하 '와우')'라는 게임에서 '이벨린'이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만들어 부모님의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하려 한다.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한 가치를 게임 속에서나마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와우 속 세계가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휠체어에 앉아 특수 제작된 키보드로 이벨린을 조작했던 마츠는 게임 속에서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와 함께 플레이를 했던 유저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이다. 



이벨린(마츠)은 '스타라이트'라는 길드(게임 내 커뮤니티)에서 동료들과 함께 몬스터를 사냥하고, 채팅을 통해 (휠체어에 탔다는 걸 숨긴 채로) 일상을 공유하고, 때로는 게임 속 여성 유저들과 사랑을 나눴다.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을 게임 속에서 이뤄냈던 것이다. 




마츠의 (본모습을 알지 못하는) 동료 게이머들


하지만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마츠는 모니터 앞에 축 늘어져 있는 자신의 본모습이 알려질까 두려웠다. 게임 속 세계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이벨린을 조작하는 것이 힘들어지자 팀워크를 발휘하는 여러 상황에서 마츠는 잦은 실수를 범했다.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가상공간에서조차 자신이 괄시당할까 두려웠던 마츠는 유저들과 서서히 갈등을 빚기 시작한다.


레이케(제니아)와 이벨린(마츠)


그러던 중 마츠의 동료 유저인 레이케(제니아)가 한 마디를 건넨다. 


"너는 많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어." 


특히 자신에게는 아들과의 유대 관계를 회복하는 데 마츠의 존재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마츠는 자신이 게임 내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게임 속 친구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넨다. 그렇게 죽는 날까지 마츠는 와우에 약 20,000시간을 투자하며, 자신의 낭만 어린 여정을 을 블로그에 기록한다.


이벨린(마츠)의 죽음을 애도하는 게임 캐릭터(동료)들


마츠가 죽고 나서 그의 부모는 마츠가 사랑과 우정을 나눌 줄 몰랐다는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마츠의 선한 영향력이 알게 모르게 닿았던 동료 유저들이 마츠의 '비범했던 인생'을 기리며 영화는 끝난다.




(가끔씩 접속하기도 하지만) 한때 와우 골수 유저였던 나는 게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는다는 게 무엇인지 깊이 공감했다. 모험을 하면서 캐릭터가 점점 성장해 가는 걸 느끼고, 유저들과 힘을 합쳐 보다 더 어려운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소속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경쟁이 무한대로 치닫고, 외모지상주의와 세속적 가치가 우선시 되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감정들이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존중받기를 원할수록 '확장된 현실'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



이런 의미에서 와우(WOW)와 같이 유저를 기반으로 하는 역할 수행형 온라인 게임(MMORPG) 속 세계는 '현실 도피처'이자낯선 자아를 만날 수 있는 '외계 행성'이다. 게임 속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외형과 직업을 지닌 캐릭터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며 나의 가치를 끄집어내고 끊임없이 증명한다.





물론 나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게임을 하라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특히 와우는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절대로 추천하지 않는다) 다만, 게임이라는 것이 그저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 세계가 아니라, 외모나 경제력 등 현실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확장된 세계'로서 고려해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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