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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Oct 03. 2020

물리학과 문학의 색다른 만남, 생각보다 어울리는 그맛

서평 시리즈 #55 : <우주를 만지다> by 권재술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기분이 좋다. 하루 종일 눈앞에서 불과 1m가 안 되는 벽과 물건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아무것도 방해될 것이 없는 까맣고 약간 뿌연 빛이 도는 도화지를 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든다. 물론,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도 나이가 조금 더 먹어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고향 마을에 내려가면 서울 하늘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 낮이고 밤이고 펼쳐진다. 특히 밤에는 집 바로 뒤에 있는 야트막한 산 너머로 별이 천만 개쯤은 박혀 있는 것 같다. 별빛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별빛이 출발하는 우주의 지평선 너머까지는 얼마나 오래 걸릴까? 초등학생일 때나 잠깐씩 상상하던 생각들을 밤하늘에 올려놓고 나면 마음은 '쿵'하고 내려앉아 문득 아득한 무서움과 경외로움이 함께 느껴진다. 우주를 생각하면 보통은 그렇다. 


<우주를 만지다>는 나와 같이 밤하늘을 올려다 보기를 좋아하는 물리학자가 우주라는 도화지에 문학이라는 커피향을 듬뿍 끼얹어 담아낸 에세이이다. 아름다운 밤하늘 너머 광활한 우주의 신비에 인간 존재의 덧없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필멸의 삶 속에서도 불멸의 진리를 찾아내려는 고귀한 노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책의 거의 마지막에 저자는 시간 여행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며 한 가지 물음을 던진다. 만약 과거에 물리교육과가 아니라 문예 창작과를 갔다면 자신은 시인이 되었을까? 물리학자가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저자가 짧은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끼워 놓은 멋들어진 '물리학 시(詩)'를 보고 저자는 어쩌면 정말 시인을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리학'과 '시'라는 다소 연결하기 어려운 개념들, 더구나 소위 '아름다운' 시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무지 채택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물리학이라는 주제와 그 속의 용어들을 아름답게 결합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주를 만지다>는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과학이 문학적으로 읽히는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릴 적 꿈이었을지도 모르는 '문예 창작'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중간중간 재미난 시를 많이 끼워놓았다. 그럼에도 이 책의 본질은 물리학이다. 그것도 특히 우주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다만 어려운 용어나 복잡한 수식, 불친절한 시각은 빼고 다정하게 쓰인 '산문' 같은 에세이이다. 결국 시와 산문을 모두 옮겨 놓은 작품인 것이다. 덕분에 우주의 탄생부터 우주의 끝없는 확장, 시간의 흐름과 빛의 속도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흥미로운 소재들을 보다 쉽게 느낄 수 있었다. 


■ 과거를 보다

현재란 무엇일까? 지금, 1초 전도 아니고, 1초 전의 1초 전도 아니고, 정확히 지금 이 순간이 현재인 것일까? 그렇다면 현재는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 것일까? 1초 전은 과거인 것일까? 사소해 보이지만 깊이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질 수도 있는 질문일 것이다. 두루뭉술하게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생각했을 때 '과거'는 아니지 않나? 하는 시점을 현재라고 가정해보자. '지금'이라는 표현을 쓰는 그 시점. 지금 밤하늘에 떠 있는 저 태양은 사실 8분 20초 전의 태양이다. '지금' 태양이 폭발해서 사라지면, 8분 20초 후에 지구에 다다르는 태양빛은 사라지고 만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빛은 1분 전의 달의 형상이다. 북쪽 하늘에 박혀서 나침반이 되어주는 북극성은 사실 400년 전에 출발한 빛이 도착한 모습이다. 이처럼 밤하늘은 과거의 모습이 촘촘히 박혀 있는 지도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천문학자들은 과거의 모습을 좇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밤하늘에서 과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의미를 찾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밤하늘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거의 책의 시작이나 다름없었던 '과거를 보다'라는 이야기는 <우주를 만지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가 되었다. 

■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가능한 우주

우주는 지금도 무한히 넓어지고 있다. 우주가 확장되는 속도는 더욱더 빨라져 우주의 끝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920억 년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단순히 138억 년 전에 빅뱅이 발생한 후 빛의 속도로 우주가 넓어지고 있다고 해서 138억 년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애초에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크기 또한 제한적이다. 이처럼 거의 무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우주에서는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상상의 수준에서 말이다. 어쩌면 정말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우주 공간에서도 발생할 수 없다고 한다. 시간을 역행하는 일을 의미한다. 수십 년 전부터 SF 영화의 단골 소재로 쓰였던 '시간 여행'. 특히나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특정 시점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들을 바꾸어 놓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어릴 때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특정 주식을 사두었더라면, 이런 유치하고 의미 없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우주에서도 이러한 일은 불가능하다. '시간'과 '공간'은 어쩌면 인간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대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인간은 시간이라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걸까?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가능한 우주에서도 시간을 되돌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러니 여태 후회했던 일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잘했던 일들을 계속 잘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 별 헤아리기

저자는 모든 과학은 '측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천문학도 별 사이의 거리를 재고 하늘의 별을 세는 것에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주에는 별이 얼마나 많을까? 인간이 눈으로 셀 수 있는 밤하늘의 별은 제한적이다. 대략 9000개가량 된다고 한다.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숫자는 대략 100만 개 정도이다. 하지만 우주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별이 있다. 특정 공간을 정해서 그 안의 별의 숫자를 센 다음 공간을 확장해서 별의 수를 추정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허나 우주는 이와 같은 방법을 쓸 수 있을 만큼 좁은 공간이 아니다. 별의 수를 추정하는 방법은, 우주의 질량을 이용하는 것이다. 은하 가장자리에 위치한 별의 움직임을 통해 은하의 질량을 추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평균적으로 나와 있는 별의 질량을 대입하여 우리 은하에 속한 항성의 수를 추정한 결과 대략적으로 3000억 개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주에는 이만한 수의 '은하'가 존재한다. 소름이 끼치는 숫자이다. 이처럼 별이 많은데, 이 드넓은 우주 속에는 생명체가 지구에만 존재할까? 어쩌면 외계의 생명과 마주하는 순간은 지구 문명이 지구에 발 딛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TV도 컴퓨터도 없는 시절에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던 것이 어린이 과학책이었다. 덕분에 과학자의 꿈을 꾸며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장래희망을 적어낼 때는 항상 과학자라고 당당하게 적어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 그 꿈을 흐려졌지만 여전히 과학이라는 세상은 내게 특별하다. 

동심으로 돌아가 우주를 잔뜩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학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위해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물리학과, 그리고 문학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다정하게 책을 펼쳐내었다. 덕분에 아주 기분 좋은 독서가 될 수 있었다. 우주라는 거대한 존재를 마주하면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많은 천문학자들이 스스로 생을 져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 또한 고작 100년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덧없음을 100억 년의 우주 앞에서 절절히 느끼곤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삶의 의미를 찾고 짧은 역사 속에 족적을 남길 수 있도록 아등바등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역사 속에도 자신의 이름과 흔적을 남긴 위인들은 존재하지 않는가.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픈 사람들이 '우주'를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우주의 시간 속에서 삶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 우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물리학에 문학을 곁들여 만나보는 우주, 그 깊은 맛. <우주를 만지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특별한서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https://pixabay.com/ko/photos/%ED%95%98-%EC%88%98-%EC%9A%B0%EC%A3%BC-%EC%82%AC%EB%9E%8C-%EB%B3%84-%EC%B0%BE%EA%B3%A0-1023340/

2) https://unsplash.com/photos/5Hl5reICevY?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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