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누의 서재 Oct 03. 2020

꿈과 기호와 상징과 또다시 꿈

서평 시리즈 #54 : <존재와 상징> 칼 구스타프 융

정신분석학의 두 위대한 거장이 있다면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구스타프 융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무의식의 세계 속에 감춰진 욕망을 투영하는 '꿈'과 그에 얽힌 상징들을 통해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논의의 장으로 옮겨놓았다. 

프로이트와 융은 거의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 그럼에도 융은 그보다 20~30년가량 앞서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통해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프로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무의식과 내재된 욕망이 표출되는 놀이터인 꿈을 개괄적으로 정의하고 꿈속의 상징들을 상세하게 분석한 것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주장한 꿈에 대한 해석을 반박하는 부분도 상당히 존재한다.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건강하고 비판적으로 발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지금은 국어) 지문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었던 그 '융', 도무지 읽어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없었던 난해한 그의 사상. <존재와 상징>을 통해 칼 구스타프 융이 전하는 특별한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해석을 접할 수 있었다. 


프로이트의 책도 융의 책도 서점에서 지나가는 길에 살짝씩 접한 적은 있었다. 두 학자 모두 글을 친절하게 쓰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난해하고 어려운 문장들로 가득했다. 그 이유는 아마 '기호'와 '상징'이라는 개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융은 책의 전반에 걸쳐 인간의 삶에 가득한 기호와 상징을 이야기한다. 융에 따르면 기호는 UN, UNICEF 등의 약어나 상표, 이름, 배지 등이 될 수 있다. 이들은 그 자체로서는 무의미하지만 일반적인 쓰임새나 고안된 의도에 따라 쉽게 전달될 수 있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반면 상징은 용어나 이름, 이미지 가운데에서도 관습적인 의미 외에 특정한 함축을 내포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벌써 말이 어렵다. 상징은 내면의 깊은 곳에 단순한 의미 이상의 함축된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크레타섬의 기념비 중에는 쌍도끼라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고, 또한 모양과 용도 등을 잘 알고 있는 문양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는 파악을 해봐야 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국 교회에 황소와 사자, 매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영국 교회와 영국에 얽힌 역사적인, 종교적인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한 아메리카 원주민은 그저 영국이 동물을 숭배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동물들은 사실 사도의 상징이자 이집트의 태양신인 호르스와 관련이 깊다. 이처럼 '상징'은 내포된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파악하는 것에 애를 먹을 수 있다. 동시에 그렇기에 '꿈'이라는 무의식의 발현 속에 나타나는 여러 상징물들은 인간의 무의식에 접근하고 무의식을 해석하기 위해서 반드시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융은 무의식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꿈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다. 평소 충족되지 못했던 욕망이나 꿈의 경험자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고통, 행복, 긴장 등의 감정이 현실에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수준의 강렬함과 명확함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융은 동시에 그렇기에 꿈의 기능이 마음의 평형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는 꿈의 보상적 역할이라고 해석해도 괜찮을 것이다. 

꿈에 관한 기나긴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고대의 신화에 얽힌 여러 상징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종교적인 이야기부터 신화에 얽힌 부분까지 인간 세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인간 세계를 지배하는 이야기는 모두 특정한 상징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이카루스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높디높은 야망을 품은 젊은이의 꿈속에 이카루스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의 욕망과 현실의 괴리감에 나오는 깊은 좌절감이 투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이카루스 신화는 높은 이상과 이상주의에 끌려가는 청년기의 무의식이 담겨 있다. 하지만 융은 여전히 청년기에는 이와 같은 과감한 도전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이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높은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청년기와 장년기 사이에 놓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대 신화와 현대인'이라는 장에는 이와 같은 수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미녀와 야수' 동화를 통해 근친상간의 공포와 에로스적인 사랑에 대한 욕망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나온 인간의 수많은 욕망과 공포는 융이 내담한 환자들의 꿈을 들여다보며 그들을 치료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융은 수많은 이들의 꿈을 분석하면서 각자의 꿈이 각자의 삶과 무척이나 깊은 관계성을 지닌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기에 섣부른 정신 분석과 꿈의 해석은 지양해야 하는 행위라고도 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이 꿈 해몽을 하듯이 '돼지'와 '부'를 연관 짓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살아온 삶에 따라 꿈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상징물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꿈을 통해 무의식에 접근하기 전에 그 사람의 자세한 사항들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개인의 꿈은 특정한 양식이나 배열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개성화 과정'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개인의 심리 전반에 영향을 받아 심리가 변함에 따라 조금씩 변해간다. 개성화된 꿈을 통해 관찰자는 해당 인물의 심리 구조가 조직화된 기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1~2회의 정독으로도 내용의 절반가량은 여전히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다. '상징'과 '기호'를 통해 우리의 일상 속의 존재와 대상들을 한 번 더 파고들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1차원적인 이해가 힘들기에 발생하는 문제 같다. 개인적으로는 기호학이나 논리학, 언어학 등의 관련 학문을 공부하고 접한다면 보다 나은 이해가 가능할 것 같다. 

그럼에도 꿈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로 접근하고, 인간 세계 전반에 걸친 무의식 속 상징을 파헤쳐 보는 과정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고대의 영웅 신화들은 재미로만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었다. 더 풍요로워지고 하는, 더 안전해지고 하는, 더 재미를 느끼고자 하는 다양한 욕망들이 투영된 것이었다. 무의식 속에 담긴 수많은 강렬한 욕구들은 작은 설화를 만들고, 의미가 담긴 문양을 새기게 만들고, 종교까지도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을 꿈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여 개인의 꿈을 분석하는 것으로 끝내는 융의 확고한 철학이 눈에 보였다. 

여러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아니, 여러 번 읽어야 하는 책이다. 이제는 고전이라는 이유로 읽으려 하지 않았던 융의 사상 속에는 현대 정신분석학의 기원들이 깔려 있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대 사회에 점차 폭압적인 사건들이 늘어만 가고 공황 장애나 정신 질환 등을 앓는 이가 많아지는 현상은 어쩌면 융의 이야기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필살기 같은 말이 있다. 'Back to Basic'. 칼 구스타프 융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꿈과 기호와 상징과 또다시 꿈으로 돌아가는 시간, <존재와 상징>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글로벌콘텐츠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2) 

3) 

4) 


매거진의 이전글 투자시장의 승리자 : 지지 않는 것이 승리하는 길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