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누의 서재 Nov 30. 2020

실리콘밸리의 환상을 깨버릴 시간

서평 시리즈 #83 : <스타트업 웨이브> 알렉산드르 라자로 


뿔이 달린 아름다운 용마. 상상 속의 동물 유니콘은 스타트업계에서 자산 가치 1조 원 이상을 지닌 비상장 기업을 의미한다. 혁신을 통해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쥐고 싶은 스타트업계의 환상이자 삶의 원동력인 것이다. 가져본 적이 없어 가늠조차 할 수 없는 1조 원의 가치를 지닌 유니콘이 2020년 5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 무려 436개나 존재한다. 그중 200개가 넘는 기업이 미국에 위치한다. 대다수 다시 실리콘밸리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스타트업의 요람이자 4만 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꿈틀거리는 곳이었다. 견고할 것만 같던 실리콘밸리의 아성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중국의 테크 스타트업이 보여주는 기세는 놀랍다. 선전, 베이징, 중관촌 등을 중심으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유니콘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기세는 예상했다. 이제는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프런티어'에서 전에 없던 형식의 스타트업들이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스타트업 웨이브 - 델리에서 상파울루까지>는 스타트업의 요람이었던 실리콘밸리에서 변방으로 스타트업 생태계가 이동하고 있음을 관찰한 책이다. 30만 명이 넘는 엔지니어와 기술자를 품고, 1000개가 넘는 벤처캐피털은 실리콘밸리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케냐의 나이로비, 인도의 델리, 이스라엘의 텔 아비브에는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자원이 없었다. 몇몇은 스타트업계의 변방이 불려도 좋을 정도였다. '프런티어'라 불리는 그 변방에서 이제 유니콘이 탄생하고 있다. 사람도 찾기 힘들고, 돈을 구하기도 힘들고, 네트워크 환경은 꿈에도 꿀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거대한 스타트업이 태동할 수 있었을까? <스타트업 웨이브>는 실리콘밸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꽃피우는 스타트업을 조명한다. 

실리콘밸리는 '파괴'와 '와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에 사로잡혀 있었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명저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서 'Disrupt'라는 단어에 꽂혀버린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기존의 구식 질서를 끊고 박살 내고 파괴하 혁신을 향해 불도저처럼 돌진했다. '와해'에 대한 광기는 마치 오래도록 유지한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믿는 광신도를 보는 듯했다. 


어느 정도 도시화가 진행된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주소 체계, 4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주소'가 없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는가? 케냐의 나이로비에는 주소가 있는 건물이 2%에 불과하다. 파괴할 질서조차 없다. '프런티어'에 서식하는 스타트업은 '파괴'와 '와해'가 아닌 '창조'를 통해 생명을 얻는 창조자이다. 기술을 이용해 주소 체계를 부여함으로써 나이로비에는 새 바람이 불었다. 배송과 배달 서비스가 용이해졌다. 구급차를 부르면 2시간이 걸리면 참담한 환경을 마침내 조금씩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인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통한 통화 유통을 가져다준 '엠페사' 또한 창조의 바람이 깃든 작품이다. 눈을 조금 돌려보면 세상엔 '창조'가 필요한 곳이 많다. '프런티어'란 그런 곳을 의미한다. 

실리콘밸리에는 '린 스타트업'이라는 스타트업 방정식이 존재한다. 이들은 단 한 가지에만 집중한다. 벤처캐피털로부터 지원받은 든든한 총알을 태워가며 실리콘밸리의 기술적, 교육적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고 빼어난 인재를 영입하여 조금씩 발전하는 실험을 한다. 인도네시아나 브라질 같은 나라에 이와 같은 풍성한 인프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때문에 '프런티어'에서는 풀스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하부의 시스템을 함께 구축하며 리소스 인프라를 스스로 채워나가는 수직적 스택과 다양한 서비스 분야를 함께 진행하는 수평적 스택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비공식적인 사업이었던 데다가 규제도 규칙도 없었던 인도네시아의 오토바이 수송 서비스 '오젝'을 혁신한 '고젝'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고젝을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것이 많았다. 배차에 필요한 플랫폼이 필요했다. 결제와 대금 서비스도 필요했다. 고젝은 결제 서비스 회사를 인수하며 수직적 스택을 구축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길 원했다. 수송 서비스뿐만 아니라, 배달, 금융 서비스까지 자신의 수직적 인프라를 이용하여 수평적 스택까지 확장했다. '프런티어' 지역에서는 이와 같은 풀스택 전략이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게 하고 자금적으로, 산업적으로 '해자'를 놓는 격이 된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와는 전혀 다른 기조의 성장 방정식이 적용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는 '유니콘'이 산다. 자산 가치 100억 달러가 넘는 데카콘으로 진화한 유니콘도 산다. 실리콘밸리는 이처럼 환상 속의 동물이 사는 곳이다. 환상 속의 동물은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 과정 중에는 실리콘밸리 특유의 자금 공급 방식으로 인한 죽음의 계곡도 있다. 시리즈 A부터 E까지 등 투자금을 통해 자본금을 충당하는 스타트업은 돈을 받는다고 바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능성 하나만을 믿고 열심히 비용을 태워가며 버텨야 하는 '죽음의 계곡'이 존재한다. 오랜 시간 해당 과정을 버티면 수익이 하키 스틱처럼 솟는 밝은 날이 찾아온다. 

프런티어에는 유니콘이 살지 않는다. 대신 '낙타'가 산다. 아무리 척박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극한의 동물 낙타가 말이다. 가끔 먹는 영양분을 야금야금 혹 속에 지방으로 저장하여 무덥고 드넓은 사막을 물 없이 걸어갈 때에도 낙타는 버틸 수 있다. 프런티어의 '낙타'들은 유니콘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원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조금씩, 지속 가능한 성장을 꿈꾼다. 먹거리를 조금씩 확장하며 야금야금 사업을 확장한다. 혹서기를 견디기 위해 체력을 보충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낙타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동물이다. '프런티어'는 환경적인 측면에서 실리콘밸리보다 혹독한 곳이다. 낙타가 사막에서 몇천 년을 존재했듯 '프런티어'라는 땅에서는 낙타가 오래도록 존재할 것이다. 


'프런티어'에서는 다른 이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타가수분 하는 기업이 주목받는 것이다. 느리지만 끈질기게 걸어가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창조'를 하는 존재이기에 '파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을 걷지만 자신들이 만든 생태계에서 후발주자들이 함께 성장하며 공생을 시작한다.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겪고 있고 기본적인 것조차 충족되지 않는 '프런티어' 지역에 거대한 생태계가 형성되면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저마다의 꿈을 위해 스타트업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를 바꾸고 자신만의 운명을 억척스럽게 개척하기 위해 멋진 일을 꿈꾸는 것은 너무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모든 이들이 용기를 북돋아줘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미래가 미국식의, 실리콘밸리 중심의 신화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성공 스타트업 관련 사례가 실리콘밸리에서 출발했다.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멋진 자연환경과 기후를 가진 실리콘밸리가 전 세계 어디든 존재하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실리콘밸리식의 스타트업 사례가 아닌, 다양한 나라의 억척스러운 환경에 맞는 신선한 사례를 소개한 것만으로도 큰 충격이었다.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덕분에 스타트업 창업 환경이 녹록지 않은 이 땅에서 그 막연한 꿈을 꾸고 있는 내게도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준 책이다. 때문에 실리콘밸리 중심의 창업 사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한다. 세상에는 저마다 사연을 품고 있는 '프런티어'가 더욱 많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신화에서 억척스럽고 척박한 '프런티어'의 스타트업 신화로, <스타트업 웨이브>였습니다.




* 본 리뷰는 프리렉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https://unsplash.com/photos/GTdqs8v-WTA?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2) https://unsplash.com/photos/l90zRbWvCoE?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3) https://pixabay.com/ko/vectors/%EB%8F%99%EB%AC%BC-%EC%83%9D%EB%AC%BC-%EB%A7%90-%EA%B3%B5%EC%83%81-%ED%97%88%EA%B5%AC-2023216/

4) https://unsplash.com/photos/YAIGmqV4dFc?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매거진의 이전글 브랜딩과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두 거장의 대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